아티스트웨이 다시 따라가기

4. 1주 차 시작하기 전 - 똑같은 점, 달라진 점

by 물고기

오늘 오랜만에 요리를 해서 돼지고기 고추장 볶음을 해 먹었다. 고기를 재우는 양념을 만드는데 고추장에 이태리산 토마토소스를 살짝 부어 넣고 만들어봤다. 설탕의 단맛과 비교하면 토마토의 산미가 들어간 감칠맛은 또 다른 맛이 있으니까요.

외국에 산지 10년이 넘어가면 좋든 싫든 가끔은 한국사람다운 음식을 먹어줘야 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 그런 경우는 소위 말하는 ‘기가 빠져서’ 이유 없이 피곤함을 느낄 때 그런 식으로 특정 음식에 대한 끌림으로 나타난다.


저번 글에서 아티스트 데이트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요리를 좋아한다면 요리를 만들고 기쁘게 먹는 그 모든 과정은 훌륭한 아티스트 데이트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가끔은 양파들 썰면서 강제로 펑펑 울기도 하지만 양파는 잘만 조리하면 깊은 단맛의 원천이 될 수 있죠. 나를 위해 만든 음식을 스스로 맛있게 먹으면서 느껴지는 만족감은 플러스고.


자, 이렇게나 나를 위한 시간을 충실히 보낸 이유는 무엇이냐면, 본격적인 회복의 과정을 밟아가기 전에 아티스트웨이 1회 차를 실행하던 그 당시에 대해 떠올려보고, 이번에는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정하기 위해서이다.




아티스트웨이를 처음으로 접하고 진지하게 이 책에서 말하는 창조성 회복의 과정을 걷게 된 때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에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꽤 심각한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 상태였다.


내 유학시절 학생생활은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가능한데, 그중에서 심각한 이야기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나름 선생복은 있었지만 그다음이 없었다

2. 학생시절 내내 돈과 씨름해야 했고, 그 와중에 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어머니와의 갈등은 보너스.


대략 이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다.




나름 선생복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좀 풀어보자면, 누가 봐도 물고기씨는 꽤 훌륭한 제자이지만 고집이 세다보니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제자이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선생님이 아예 말로 못할 정도로 존경스러워서 제자 자신이 마음을 내서 선생님의 말을 듣게 만드는 게 포인트다. 하지만 2012년 당시에 배우던 선생님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었지.

좋게 말하면 그 선생과 내가 안 맞았던 것이었는데, 처음부터 조금씩 삐걱거릴 때부터 알아봤었어야 했는데. 나중에는 선생이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마음에 안 들어하고 제자를 우격다짐으로 복종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시더란다. 하, 10년이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나오는 게, 차라리 당신이 존경할만한 모습을 스스로 보여줬다면 내가 알아서 따르고 존경했을 텐데... 어쩌겠는가. 이렇게도 다양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세상인 것을.


그 당시에는 1주일에 한번 돌아오는 레슨시간조차도 두려움에 떨면서 가야 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해서 날 흔들어놓으시려나. 이번에는 또 무슨 참신한 방법으로 날 공격하시려나.


어느 날은 학교에 가는 길인데, 학교 가는 길목에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매우 추운 어떤 겨울날이었는데 햇빛도 없어서 그야말로 회색빛 칙칙한 하늘 그 자체였다. 그때 그 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저 강에 빠지면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나?‘ 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알았지. 지금 내 상태는 정상이 아니구나.


물고기씨는 지금 그 학교에서 반주자로 일하고 있으니 거의 유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이 학교에 붙박이로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거 아시는가?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미래의 불안함은 없지만 응당 누려야 할 것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작은 성공이 보장된 편안한 길을 택한다.

내 평생을 걸쳐서 깨닫는 이야기 중 하나는, 용기라는 덕목은 재능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덕목이라는 사실이다.


물고기씨는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난 피아노를 꽤나 잘 치는 사람이다. 그저 용기가 없었지.


이제는 그 용기가 없었던 이유 또한 다뤄보고자 한다. 바로 두 번째 이야기, 돈과 부모님이다.




돈이라는 주제는 예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이다. 사실은 물고기씨도 아주 자주 생각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 자신과 내 동급생, 내 선배들, 나중에는 내 학생들까지 정말 오만가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깨닫는 점은,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주의할 것 : 난 지금 차별이나 열등감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아주 빠르게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인생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다고들 하지? 공평한 건 맞다. 하지만 출발선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거의 10년을 써야 했다.


사람에게 주어진 재능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똑같은 원리로 사람에게 주어진 인생의 출발선 또한 공평하지 않다.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우리가 태어날 때 부모의 통장을 보고 태어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이게 꽤나 골치 아픈 요소가 된 것은, 한국이건 프랑스건 어디건 (심지어 옛날이건 지금이건 똑같다) 예술가가 처음 자라나는 환경이 어떻냐에 따라서 그 예술가의 미래가 결정되는 일이 꽤나 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예술가들의 첫 번째 후원자는 부모가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후원의 여파들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나중에는 인생의 궤적 자체를 바꿔버리는 상황까지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물론 개천에서 용 나는 상황 또한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 경우에도 부모님께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는 상황이어야 그다음 스텝이 조금 더 수월한 것.

유럽과 아시아의 교육시스템의 차이는 이야기하지도 말자. 이것 또한 내가 미리 보고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


대부분의 어린 친구들이 그러하듯 물고기씨도 물고기씨가 처한 상황을 더 나아 보이는 사람들의 상황과 비교하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을 매우 힘들게 했었다. 나중에는 거하게 사건사고도 쳤었고 - 이 얘기를 여기서 자세히 하진 않겠지만, 사람의 작은 생각 하나가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배운 인생의 수업 중 하나였지.


조금 머리가 크고 나서 재빠르게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물고기씨는 물고기씨의 상황에서는 나름 최고로 좋은 후원을 받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유학의 길을 선택한 것은 나름 모두를 위한 결정이었는데, 그 문제의 사건사고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부모님과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면 - 특히 어머니와 나의 사이는 그 당시에 엄청나게 심각했었다 - 둘은 같이 지낼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배를 빌려서 태어났지만 나는 어머니와 같은 듯하면서도 너무나 다른 존재였다.

어머니는 숫자에 강하지만 나는 활자에 강했고, 내가 그림과 음악을 좋아했다면 어머니께서는 운동을 좋아하셨었다. 나는 어머니의 테니스에 대한 중독적 집착을 이해하지 못했었고 어머니는 당신이 보기엔 노력도 안 하는 딸이 온갖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지.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도 순탄하고 행복하기만 한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하필이면 어머니의 인생의 숙제가 아버지와 나였던 것뿐이었다. 내 인생의 숙제 중 하나가 어머니였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돈에 대한 문제에서는 그야말로 트라우마의 연속이었는데 (이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학생시절 내내 내 상황은 좋게 말하려 해도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나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초반 2년은 그야말로 현실에 나타난 고난주간이 이것인가 싶어질 지경이었지.

심지어 그 돈을 어머니에게서 받는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고통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내가 나중에 처음으로 계약직 반주자로 일하게 되었을 때 난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는 매월 통장을 지켜보면서 마음 졸일 필요가 없어져서. 유학오기 전에 한국에서 벌어들이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쥐꼬리만 한 월급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고.


이런 경우, 객관적인 측면에서 나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이러한 경로를 거치면서 포기와 체념 같은 것들이 더 익숙해진 나의 행동양식을 따져보는 게 더 효율적이다 : 불확실한 결과에 대해 용기를 내는 대신에 ‘아, 어차피 말해봐야 아무도 듣지 않을 거... 그냥 내가 참아야지. 딱히 내가 잘한 것도 없는거...’ 라고 마음먹고 포기하는 게 관성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은 안다. 한번 관성으로 자리 잡은 것을 바꾸는 건 그야말로 인생의 물줄기를 바꾸는 정도의 변화라는 것.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2012년 초반에 들어왔을 때에는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라며 그야말로 길 잃은 어린양 한 마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티스트웨이란 책을 접한 것인데, 아무리 나 자신의 의욕이 강하다 한들 이 책에서 요구하는 정도로 나를 정확히 응시하고 마주 보는 용기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지금도 기억난다. 처음 몇 주가 정말 끔찍했다는 것.


맨 처음에야 당연히 제자 다룰 줄 모르는 우매한 선생이나 내가 원하는 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님 탓을 하면 그만이지만, 그다음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과정은... 그 모든 상황에서 “선생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 혹은 “엄마, 엄마도 힘든 거 이해하는데 나도 너무나 힘들어.” 라고 용기 내서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받아들임과 수용의 과정이 정말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저 짧은 두 문장을 쓰는 내내 식은땀이 흐르고 신경이 곤두섰다. 전형적인 불안증 증상이지.


부모님이나 선생님, 혹은 예전에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친구나 연인 등, 그 모든 사람들 또한 나에게 그렇게 대한 나름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 설마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생각 외로 많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우선 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고, 나에게 걸맞는 사랑을 충분히 보여줘야 한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보여주는 사랑이 그나마 무조건적인 사랑에 가장 근접한 형태지만, 그조차도 영속적인 것은 아니다. 나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설령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님에게서 내가 원하는 만큼을 못 받았다고 느끼더라도 사실은 상관없다. 내가 나를 그만큼 더 사랑하면 되니까.

이 모든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담담하게 풀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내 1회 차 아티스트웨이의 쟁점은,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작아져버렸던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찾아서 키우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면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나의 욕망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저 당시에는 애초에 내 욕망이니 뭐니 하는 꽤나 뻔해 보이는 요소조차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했던 상황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에겐 어떤 것이 어울리고 어떤 것이 안 어울리는지,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서 분노하는지 등등. 이 모든 것들을 다 찾아나가야 했었다. 심지어 12주 만에 다 찾아지지도 않았다. 진정으로 나를 위해 용기를 내서 적극적으로 싸우는 법을 익힌 것은 최근 몇 년 간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럼 2회 차에는 무엇을 개선할 것인가?


이번에는 세상이 여러 형태로 나를 포함한 모두들에게 덮어씌운 편견들을 밝혀보고자 한다.

왜 세상이 덮어씌운 거라고 표현하냐면, 우리가 갓난아기인 시절부터 자기를 못살게 굴고 자기를 낮추는 방법을 이미 안 상태에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하는 생각에 아주 약간의 의구심이라도 든다면, 내가 2-3살 어린아이였을 때에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라고 돌이켜 생각해 보라.

물론 어린아이가 건강에 좋지 않은 단 것에 빠져서 무조건적으로 요구하는 그런 것들 또한 당연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애초에 그들이 칭얼댈 때 건강에 좋지도 않은 단 것을 쥐어주고 그것이 기분 관리에 좋은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알려준 것이 누구였는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본능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들 중 상당수마저도 후천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모나코에 있던 시절에 물고기씨가 최고로 우울해했던 것은, 그 무용학교에서 피아노 치는 사람은 계층 피라미드 가운데서 최하위에 위치한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피아노를 치는 것과 그냥 컴퓨터 전원 켜고 플레이어에 플레이 버튼을 클릭하면 음악 나오는 거랑 다른 게 뭐지? 나중에 공연 준비하면서 오후 내내 컴퓨터 옆에 붙어 앉아서 음악 틀어주는 나날이 반복될 때 물고기씨의 불만게이지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 이 상태로는 여기 계속 있는 건 불가능해.


차라리 그들이 날 쫓아내 준 게 천운이다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그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지만, 최소한 지금은 여기에 그 시절 이야기를 어느 정도 감정을 달래 가며 여러분들에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수준의 발전인지 여러분들은 짐작이 가시려나...


2회 차에는 바로 이런 종류의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 편견들을 발견하고 나 자신에게서 그것을 벗겨내는 작업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실은 1회 차보다도 더 힘들 것만 같다.

상담사에게 한동안 상담받으러 갈 때도 가장 힘들었던 게 바로 저런 종류의 생각의 틀을 나 스스로 상담사에게 보여주고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쳐다보기도 싫고 들춰보기도 싫은 어떤 면이 있다면 그 측면은 오히려 나에게 있어 가장 처음으로 다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정말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들의 마음은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니었던 이러저러한 생각에 휘둘려서 스스로 바보같이 사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거든.


하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가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깨닫기 전까지 인생의 숙제들은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꿔서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러 의미에서 줄리아 여사님의 말씀처럼, 인생은 나선형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 맞다.


우리는 부정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긍정적인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배워왔다. - 수잔 제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