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 안정감을 되살린다 (1)
드디어 본격적으로 12주 과정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매일 책을 보고 제시하는 숙제들을 충실히 이행해줘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매주 발행되는 글과 실제 과정 사이에는 대략 1주일 정도 오차가 발생하는 편이다.
대략 한 주 과정에 글을 2개 정도 발행하게 될 텐데, 첫 글이 각 과정을 시작하고 나서 2~3일 뒤에 쓰는 게 조금 더 좋은 것 같다. 나도 각 숙제와 책의 내용에 대해 묵상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10년 전이고 지금이고 첫 주의 요구사항들이 가장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번외 편에서 이야기했듯, 1회 차에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예 감조차도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면, 지금은 이 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쩌면 1회 차 보다도 더 나 자신에게 정직해져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저번에도 이야기했듯, 이것은 상담과 같다.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고 나를 파악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저 큰 용기가 필요할 뿐이지.
나는 여러분들이 실제로 책을 구해서 읽어보면서 나의 글을 읽게 되기를 바란다. 우선 그림자 아티스트니, 좌절한 예술가라든지 하는 정의들을 풀어내는 건 내 글의 목적이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 책의 진가는 그 창조성을 가로막는 ‘괴물‘의 존재를 내가 스스로 발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예술가의 씨앗을 모두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자기만족의 함정에 빠져서 불만족한 상태에서 인생을 허비하는 이유는 아주 명백하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나아가게 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자기 확신조차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확신이라는 보물은 세상에 흘러넘치는 자기 계발서를 읽는 것 만으로는 절대로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줄리아 여사께서는 시간여행을 통해 나의 창조성을 가로막는 생각들의 뿌리를 찾아 나서기를 조언하셨는데, 오히려 1회 차에는 그 작업이 꽤나 쉬운 편이었다. 그냥 머릿속에서 걸려 나오는 인물들과 그에 관련된 사건들을 써 내려가기만 해도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었거든.
2회 차를 시작하는 지금은 문제가 더 복잡한데, 지난 10여 년 동안 물고기씨도 그저 시간가는대로 놀고 있던 것만은 아니어서 1회 차에서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았었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 결과 실제 어머니와 나는 지금은 어느 정도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까지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뤄낸 편이다. 물론 이 과정 또한 굉장한 도전이었지만 지금 글에선 다루지 않겠다.
창조성을 가로막는 사건을 제공한 인물들을 세 명 떠올려보고, 그 사건을 겪을 당시 내가 느꼈던 느낌을 기록해 보기 바란다.
이번에도 첫 두 명(혹은 한 무리와 한 명)은 아주 쉽게 등장했다 - 저번 직장에서 마주친 디렉터와 동료. 그리고 예전에 날 정말로 못살게 굴었던 친구 하나의 이름.
심지어 그들이 나에게 했던 문제적인 행동과 말 또한 꽤나 쉽게 기억나는 것이다.
첫 번째 무리들은 자기들이 사람들의 창조성을 짓밟으면서도 자기 직장에서 사람들이 자기 가능성을 활짝 꽃 피우기를 바라는 무리들이었지.
“아, 난 네가 여기 오고 나서 네가 뭔가 더 발전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 네가 여기 오고 나서 더 불행하다고 느껴지더라고.” - 날 1년 만에 쫓아내면서 디렉터라는 사람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불행하다고 느꼈다면 그건 옳게 본 것이다. 정말 악몽 같은 기간이었으니까. 그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진실이다.
애초에 자기들이 알고 있는 음악들만 듣기를 원하고, 나중에는 몇 시간이고 음악가보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플레이-스톱 버튼을 누르기를 바라시면서 발전을 바라시다니, 무슨 발전인가? 자기들에게 행복하다고 거짓말하는 연기의 발전인가?
미안하지만 물고기는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을 아주 혐오한다.
심지어 타악기로 반주하는 걸 듣고 싶다며 타악기를 들고 오라 하더니, 이틀뒤에는 “아 이제 됐고, 피아노 쳐봐.” 라고 말하는 것까지 듣고 나면 생각이 정말로 많아지지. 내가 하고 싶은걸 하지도 못하게 하면서 내가 발전하지 않는 거 같다니. 허허허, 나한테 뭐라도 맡겨놨냐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 때 만나서 대학시절까지 함께 했던 옛날 친구였다. 피아노를 참 잘 쳤던 친구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물고기씨에게 굉장한 자격지심이 있던 친구였다. 온갖 방법으로 공들여 가스라이팅을 시전 했었는데, 세상물정 모르던 물고기씨는 친구를 너무나 덮어놓고 믿었었다.
“넌 반주로는 성공할 텐데 독주로는 힘들 거야. “
지금 생각하면 역시 어이가 없는 이야기인데, 그 당시의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었지. 막말로 당신이 내가 피아노공부하는데 실제적인 도움을 쥐어준 것도 아니고 내 레슨을 실제로 따라가서 보고들은 것조차 아닌데 뭘 보고 나를 판단한 거지?
그 친구는 내가 프랑스로 유학오기 1년 전에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어떻게도 그 친구의 말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그에게 증명할 방법이 없다.
애초에 증명이 필요한 문제인가?
세 번째 사람은 정말 종이에 쓰기 힘들었다.
나 자신이었거든.
이런 종류의 자기 탐험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정직함이라고 예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정직함이라는 덕목은 가끔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데, 특히 부정적인 상황에서 더 그렇다.
당연하지. 어느 누구도 알고 보니 자신이 그 상황을 어그러뜨렸다는 걸, 알고 보니 자신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는 걸, 알고 보니 자신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신을 학대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느 누가 기꺼이 인생의 악역을 맡겠는가?
하지만 나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그 인생을 바꾸겠다고 결심할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는 데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충분히 나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았으며 어떤 면에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를 못살게 구는 역할을 자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는 나 스스로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읊어대면서 나의 생각을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넌 너무 늦었어. 벌써 30대도 한참 전에 넘어갔는데 독주자로 뭘 해보겠다고 하는 거지?”
“네가 얼마나 끈기가 없으면 직업을 여러 번 바꾸면서도 그렇게나 한 군데에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어떤 이야기들은 외부에서 실제로 들은 기억조차도 없는 이야기들이다. 얼마나 조직적으로 날 괴롭히는 게 나 자신인가를 생각해 보면 정말로 놀라울 지경이다.
온갖 부정적인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줄리아 여사의 조언대로 그 부정적인 말들을 긍정문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 부정적인 말들을 나 자신이 내뱉는 이유를 잘 살펴보고, 그것을 해결해야 진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난 시크릿이나 끌어당김의 법칙, 혹은 자기 암시의 힘 같은 등등의 이야기들을 지금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20대에 아무것도 모를 때에야 당연히 ‘오, 내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니!’ 라며 이것저것 해보는 거야 당연하지만, 아주 빠르게 그 한계점 또한 보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을 무턱대고 끌어오기만 해서는 그것은 나에게 오지 않는다. 심지어 내 마음속에서 ‘그건 나에게 오지 않을거야‘ 라고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세상은 굉장히 논리적인 인과율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것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의도에 충돌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럼 그런 바른 생각과 의도를 어떻게 만드냐고?
우선, 나 자신을 제대로 보고 내가 실제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실제로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왜 창조성 회복 과정에서 꺼냈냐면, 내가 마음속에 “난 너무 늦은 게 분명해“ 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 내가 아무리 내 머리로 ”아냐,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어“ 같은 이야기를 신나게 반복재생해줘 봐야 그 긍정문은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억지로 긍정문을 세뇌시키는 것보다는 예전에 실제로 이뤄낸 성공이라던가, 존경할만한 사람들의 격려의 말을 떠올리면서 그 느낌을 되새기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편인데,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