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 안정감을 되살린다 (2)
1주 차 첫 글과 이번 글 사이에는 대략 2-3주 간의 격차가 있는데, 그동안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고통스러운 기간이었다.
몸은 12월부터 시름시름 앓던 게 기어이 독감으로 터져 나와서 1주일을 꼬박 혼자 끙끙대며 앓았고, 몸이 그러고 있으니 마음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 와중에 야옹님께서는 밥도 안 먹고 몸무게가 한 달 만에 300그램이 빠져나갔으니 집사 된 입장에서 걱정이 안 될 수도 없다. 야옹씨 제발 내후년까지 건강하게 살아줘. 우리 시베리아 횡단열차 같이 타기로 했잖아.
1주 차의 쟁점은 ‘안정감을 되살린다‘ 라는 제목에 걸맞게 자신의 과거를 정확하게 보고 내가 서서히 고쳐나갈 것과 내가 간직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간을 두고 고쳐나가야 할 것을 저번 글에서 살펴봤다면, 나의 강점으로서 간직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을 이번 글에서 살펴보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이번 글에서 다룰 숙제는 역시나 시간여행인데, 이번에는 나의 창조성에 도움이 될 만한 사건을 찾는 것이다.
시간여행을 한다. 당신의 창조성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세 명 적는다. 여기는 당신의 창조성 회복 노력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옹호자의 전당이다. 자세히 써야 한다. 무엇이든 격려가 되는 말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당신이 믿지 않는 칭찬이라도 적어둔다. 나중에 사실이 될지도 모르니까.
다행히도 이번 숙제도 꽤나 빠르게 대답이 떠오르는 편이다.
1번은 내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인데, 이 친구는 미술을 하는 친구이다.
굉장한 재능을 가진 친구이고 지금도 활발하게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전시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물고기씨도 어쩌다가 이 친구의 작업에 음악을 제공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었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도 날 인정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그 기쁨은 그 어떤 보상보다도 굉장한 만족감을 주는 법 아니겠는가.
사실 고등학교 때 친해지게 된 것은 내가 좀 웃긴 계기들을 만들어서 작업(?)을 친 것도 없지 않아 있는데, 음악과 학생이 저 멀리 미술과 학생한테 지우개 같은 거 빌리러 가는 건 꽤나 웃긴 일이긴 하지. 지금 생각하면 ‘음, 아주 적극적인 물고기씨였군.’ 싶기도 하다. 가끔 그렇게 소심 돋는 내향인답지 않게 치밀하게 작업을 쳐서 사람들과 친해질 때가 있곤 하더라고.
이 친구가 나에게 어떤 굉장한 계기를 줬는가?
사실 이 친구가 나에게 어떠한 말 한마디로 땅 파고 있던 물고기씨를 단숨에 끌어올려줬다거나 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사실 물고기씨가 나이가 들수록 과거 기억들이 사라져 가는 건 좀 문제 이긴 하다)
몇 년 전이었던가, 코로나 시국 때 모두들 집안에 갇혀있던 시절, 갑자기 이 친구가 나에게 시간 되냐고 물어보는 거다.
참고로 그때가 여기 시간으로 새벽 2-3시였다. 한밤중이었지. 한국은 오전시간이었고. 알고 보니 이 친구가 간단한 초상화 프로젝트로 영상을 찍는 작업을 하는데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잠도 안 오니까 바로 선선하게 승낙하고서 거의 두 시간을 넘게 줌 영상회의를 통해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 친구의 영상에 나중에 음악도 같이 제공해 줬는데, 정말 별거 아닌 시간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지금 그 사건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이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든든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서로의 이야기를 격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하늘 아래에 존재한다는 그런 다행스러운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내 얘기를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친구 한둘이 그렇게나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친구야, 한국 가면 보자.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보는데 서로 첫마디가 “아이고 교수님이시네요 안녕하세요” - “아이고 화백님이 다 되셨네요 안녕하신가요” :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으니 꺼낼 수 있는 웃긴 인사다. 모르는 사람이 그랬으면 표정부터 구겼을 테지.
혹시나 저 작업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첫 번째부터 글이 좀 길어지는데, 두 번째는 내 프랑스 은사님이시다. 내 유학시절 첫 번째 선생님. 날 여러 번 구해주시고 기어이 프랑스에서 살게 해 주신 은혜로운 분들 중 한 분이다. 사실 내 은사님에게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아예 없지 않은 게, 내 은사님은 날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의 예술가라고 평가해 주셨거든.
지금 내 모습이 최고의 예술가에 걸맞냐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지금의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분이 활동하던 시절과 나의 시절은 한참 달라졌고, 그분이 나를 위해 분통을 터뜨리더라도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엄연히 존재하는 유리천장은 어떻게 하기 힘든걸.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도 파리 CNSM출신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엘리트주의에 머물러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란 학생을 제자로 받아들일 수 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편안한 길을 박차고 나간 덕분에 당신이 마땅히 누렸어야 마땅한 피아니스트로서의 영예를 충분히 누리지는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내 유학시절 내내 학교 총장으로서 서류더미에 파묻혀서 가끔 내가 안부 여쭈러 찾아갈 때마다 “C'est le sale boulot 이건 정말 더러운 일이야.” 라며 한숨 섞인 이야기부터 꺼내셨으니.
마지막으로 뵈었던 것은 모나코로 가기 직전이었는데, 그때 그분이 그러셨었지.
“물고기. 그거 아니? 난 지금도 Aldo 선생님이 너에게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다고. 최소한 나한테 있어선 너는 최고의 음악가야.”
그날 그 얘기를 듣고 나와서 마음 놓고 펑펑 울지도 못하고 굉장히 심각한 기분에 잠겨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고의 음악가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멋진 음악가로 살면 되지.
마지막 분은 좀아까 살짝 등장하신 Aldo 선생님.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라면 “설마...“ 하실 그분 맞다. Aldo Ciccolini 알도 치콜리니.
이태리 출신으로 프랑스 피아니스트들 중 톱클래스에 들어가는 분들 중 한 분이었다. 내 프랑스 은사님이 이분의 제자였고 나중에는 이분의 파리 CNSM 클래스에서 조교로 일한 그런 인연이 있지. 은사님께서 어느 날 이 얘기를 풀 스토리로 얘기해 주셨는데, 참 은사님이 천재셨지... 싶으니 질투 같은 웃긴 마음조차도 일어나지 않더라고.
이분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내 은사님께서 당신의 선생님을 우리 학교에 초대해서 거하게 공개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는데, 그 큰 학교 연주홀이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었었지.
그때 각 피아노 클래스마다 학생 한 명씩 뽑혀서 연주하는데, 물고기씨도 그 사이에 끼는 영광을 누렸었지 (지금이야 이러고 재미없게 살지만 물고기씨는 피아노를 못 치지 않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학생 하나당 5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첫 곡으로 베토벤 소나타를 쳤었다. 쭈욱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으시더니, 대뜸 나보고 “다른 곡은 없니?” 이러시는 거다.
그 당시 슈만의 유모레스크를 연습하고 있었어서 그 곡을 얘기했더니 그 곡을 쳐보란다. 거의 30분짜리 굉장한 곡인데 또 그 곡을 쭉 들으시는 거다. 뭐 그냥 연주를 시켜주신 것.
그러더니 (중간에 뭐라고 하셨었는데 정작 나는 기억이 안 난다 - 그 당시 물고기씨 불어실력이 썩 좋진 않았거든) 이러저러한 멋진 말씀 후에 “여기 굉장한 예술가가 하나 있습니다.” 라는 훌륭한 칭찬으로 당신의 말씀을 끝내셨다.
재미있는 사실은, 난 마지막 칭찬 빼고는 단 한구절도 기억하지 못하는 알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내 은사님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다 기억하고 있더라는 것. 내 은사님은 굉장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긴 하지.
그 얘기를 몇 년 전에서야 듣게 되었는데, 은사님께서 알도 선생님의 초상화를 보여주시면서 “얘 이거 사진 찍어가” 라고 말씀하시더니만...
“너 그때 선생님께서 너한테 뭐라고 얘기했었는지 기억나니?” 기억이 날 리가 없죠. 10년도 더 된 그 시절 프랑스어도 다 알아듣지도 못하던 애가 기억해 낼 리가.
“너 같은 재능을 지닌 사람은 그 재능에 대해 마땅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었어.”
아, 이런.
진심으로 가슴에다 누가 큰 돌덩이 하나 쿵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어떤 누가 나에게 이런 무시무시한 칭찬과 이런 무시무시한 숙제를 던져놓고 가실 수 있겠는가. 또 그 얘기를 기억해두고 계셨던 나의 은사님은 또 무엇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그리 훌륭한 재능을 가진 우리 프랑스 은사님은 피아노가 아닌 책상 앞에서 서류더미와 온갖 험담들에 깔려서 질식사하기 직전이시고, 알도선생님께서 책임감이란 단어까지 꺼내가면서 높이 평가한 물고기씨는 지금 창조성이란 것을 되살리겠다며 아등바등하고 있는 꽤나 재미없는 상태다.
오랜만에 알도선생님께서 연주하신 생상스 피아노협주곡 5번을 듣는데, 그걸 듣다가 가슴이 북받쳐서 몇 년 만에 소리 내어서 엉엉 울고야 말았다.
“알도선생님 죄송합니다” 라면서 아무도 없는 방 한구석에서 한밤중에 펑펑 울고 나서 지쳐서 잠들려는데, 꿈속이었던가. 할아버지께서 등장하신 것 같은 것이다. 물고기씨에게 이런 말을 건넨 것은 기억난다.
“네 인생이 나의 축원대로 당장 흘러가지 않는다고 내가 너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할 리가 있겠니? 네가 네 음악에 당당하고 그 음악이 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살려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넌 훌륭한 예술가인 것이야.”
그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그분께 기원했다.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당신이 말씀하신 나의 재능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지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내 음악을 계속 닦아나가겠다고.
세상을 떠나신 지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시지만, 이런 때에는 그분의 영혼 같은 것이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해서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에게 아직도 울림을 주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비주의적이고 허무맹랑하다고? 예술이란 건 원래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오죽하면 예술하는 사람들이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던가, 혹은 미쳐서 죽어버린다던가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오늘 오랜만에 베토벤 소나타 ‘열정’ 을 쳐보는데, 물론 한참 연습하던 때만큼 모든 것이 매끄럽게 굴러가진 않지만 그 곡을 끌고 가는 중요한 느낌은 여전히 살아있더라고.
역시 신비한 음악의 세계란.
그것 아는가? 최소한 피아니스트에게 있어서 일용할 양식 중 하나는 베토벤 소나타가 맞다. 신약 구약성경 비유는 조금 멀리 나간 것 같지만, 정말 그 피아노에 필요한 모든 것이 베토벤 선생님의 소나타에 다 녹아들어 있다. 테크닉이고 음악이고.
내 한국 은사님께서는 그러셨었지. 피아노 공부하기엔 베토벤 선생님 곡들이 최적이라고. 흠, 정말 슈만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음악가의 일용할 양식’ 이란 표현이 옳은 것 같기도 하다.
다음 편은 ‘자기 정체성을 회복한다’ 의 2주 차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자신이 마음속으로 그렸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클로드 M. 브리스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