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서서 생각하기
돈밖에 모르던 악덕 사장이 사전 통보도 없이 나를 해고했다.
그날 이후,
이력서를 들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지만 평생 컴퓨터 디자인 일만 하고 글 쓰며 기자를 했던, 한때는 고액 연봉을 받던 나를 선뜻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나이 든 디자이너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그러다 지인의 권유로 ‘배달의 민족’이라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내가 이 일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닐 때는 출퇴근 시간을 맞추는 것 자체가 늘 숨 막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배달은 프리랜서였다.
내가 원할 때,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면 됐다.
지인이 타던 오토바이를 샀고 나는 그렇게 배달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일은 단순했다. 앱을 깔고 가입하고, 소정의 교육만 받으면 됐다.
앱이 알려주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픽업하고, 다시 앱이 알려주는 곳에 전달하면 끝이었다.
처음에는 가게 찾는 것도, 네비를 보며 주소를 찾는 것도 버거웠다.
가끔은 전달지를 착각해 오배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일이니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도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
그것만 빼면 크게 불평할 일은 없었다.
두 달쯤 혼자 배달을 하다가 오토바이 센터에서
배달대행사 대표를 만나게 됐고 그 인연으로 대행사에 소속됐다.
몇십 명의 라이더들이 모여 있는 ‘플러스’라는 곳이었다.
소속이 되니 배달 단가도 조금 올라갔고 콜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정보가 공유되니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사실 처음엔 편견이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딸배’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양아치 같고, 질 나쁜 젊은 사람들만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든 사회가 만든 오해였다.
대표부터가 그랬다.
30대의 젊은 사람이었고 인성도 좋고 예의도 바르며 학력도 있는 두 달 된 아기를 둔 아주 성실한 가장이었다.
또한 직장을 다니며 결혼 준비를 위해 밤에 배달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경기가 어려워 편의점을 운영하며 부업으로 배달을 하는 사장님도 있었다.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에 들어온 사람도 많았고, 젊을 때 더 벌어두려고 밤낮없이 달리는 청년도 있었고, 70이 넘었지만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어 배달을 하는 어르신도 계셨다.
내가 상상하던 ‘딸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몇 달 해보니 알겠다.
하루 10만 원 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만, 30만 원 버는 라이더도 많았다.
체력만 허락하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회사 다닐 때 받던 월급과 비슷한 수입은 충분히 가능했다.
나 역시 그렇다.
다만 가끔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잠시 멈춰 서게 된다.
조만간 내 작업실을 만들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학원도 다녀야 하고, 어머니 병원도 모셔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이 일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배달을 하다 보면 라이더들끼리는 유난히 친절하다.
양보도 잘하고, 픽업 가게를 몰라 물어보면 다들 자세히 알려준다.
아마도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지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나도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뒷방 늙은이로 살고 싶지 않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공부를 하고, 공방을 만들 생각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은 아니어도 저녁 시간에는 계속 배달을 할 생각이다.
조금 더 편하게 타기 위해 오토바이도 조금 큰 걸로 바꿀 계획이다.
“살면서 별일 다 해본다.”
라고 말하던 우리 엄마도 처음엔 위험하다며 반대했지만, 내 수입을 알고 나서는 “조심히, 천천히 타라.”라고 하신다.
나는 빠른 배달을 위해 위반을 하기도 하지만 과속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마음에 새긴다.
매너와 예의만은 잃지 말자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이 무사고로 일한 만큼의 수입을 정당하게 가져가길 바란다.
그리고 배달 일을 한다고 해서 무식하거나 양아치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위험을 감수하며 각자의 사정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돈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최고다.
오늘도 도로 위에서 애쓰는 라이더님들,
부디 무사히 달리시길 그리고
쿠팡과 배달의 민족 담당자님들께 이말 꼭 전하고 싶다.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사는 라이더들이 일한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배달 단가 깎지 말고 올려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