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줄였더니 삶이 보였다

-물구나무서서 생각하기

by 물구나무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는 늘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살았다.
회사에선 사장에게 까이고, 상사에게 까이고,
거래처에 가선 데드라인 맞춰달라고 손바닥 비비며 아부를 했다.
말이 안 통하면 싸우기도 했고,
저녁엔 접대 때문에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마셨다.
술 취한 사람들 비위 맞추는 것도 내 일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잠들었다.
그게 하루의 끝이었다.
접대가 없는 날엔 각종 모임에 나갔다.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불편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사회생활”이니까 참고 어울렸다.
그게 정상인 줄 알았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영종도로 들어왔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의민족 배달을 하는 일이다.
휴대폰에 뜨는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픽업하고,
알려주는 집에 갖다 주면 끝이다.
가끔 오배달로 본사에서 연락 오는 것 말고는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식당에선 “안녕하세요” 정도면 충분하다.
배달하는 동안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고,
눈치 볼 일도 없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으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모임도 다 끊었다.
사람 만나는 생활도 그만뒀다.
매주 일요일엔 교회를 가지만
맨 뒤에 앉아 조용히 기도하고,
점심 먹고 나오면 그만이다.
굳이 억지로 친해질 필요도 없다.
지금 나는
같이 술 마실 사람도 없고,
자주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롭기보단 여유가 생겼다.
내 시간이 생겼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SNS를 보고,
이렇게 글을 쓸 시간도 생겼다.
어떤 사람은 묻는다.
“사람들 안 만나고 살면 외롭지 않아요?”
“세상은 그렇게 혼자 살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나도 생각해 봤다.
사람들 안 만나고,
모임 안 나가고,
친구들이랑 술 안 마시면
정말 실패한 인생일까?
내 시간, 내 돈, 내 건강을 써가며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고
억지로 술 마시는 사람들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나는 하나도 아쉽지 않다.
싱글 모임, 동호회 안 나가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술이 마시고 싶으면
혼자 마셔도 되고,
그녀와 좋은 음악 틀어놓고 마시면 된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인맥이 쌓이고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고들 말하지만,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내가 능력 있고 실력 있으면
굳이 접대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된다.
이익만을 위해 이어진 인연은
이익이 사라지면
아주 쉽게 끝나더라.
회사 다닐 때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두 명이다.
쓸데없는 지출도 줄었고,
모임에 쓰던 에너지를
이젠 그녀와 여행 가는 데 쓴다.
혼자 다니던
‘야인시대’의 시라소니가
왜 그랬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부하를 많이 거느리면
그만큼 신경 쓸 일도,
문제도 많아진다.
혼자가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사는 지금,
나는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그 시간만큼의 여유를 얻었고,
같이 술 마셔주고
같이 여행 가줄 그녀가 있고,
그리고
나에겐
귀여운 시츄 강아지,
쪼꼬가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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