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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Jan 04. 2021

Map of the Robot Soul: Persona

과학 하나 상상 둘. 두 번째 이야기

저녁식사를 하고 경희와 둘러앉아 요즘 핫하다는 심리 테스트를 했다. 

열한두 개 정도 되는 문항에 답변을 하니, '나의 성격'이라고 하는 짧은 결과가 나왔다.


결과를 쭉 읽다 보니,

'오 이거 진짜 잘 맞다!'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고,

'음, 나는 이런 사람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결과에 만족을 하지 못하던 우리 둘. 심리테스트를 약간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해보기로 했다.


"우리 심리테스트를 대신해볼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심리 테스트를 대신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상대방으로 빙의(?)를 하고 심리 테스트를 마친 후 결과를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이거 완전 난데!"

그렇게 검사를 하고 나온 결과는 깜짝 놀라웠다. 먼저 했던 '내가 한' 심리테스트보다 '다른 사람'이 한 심리테스트 결과가 사실 내 성격과 더 잘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성격을 잘 알고 있긴 한 걸까?'

'무엇이 내 성격인거지?'


남이 해준 설문에서 드러난 내 성격은 나의 여러 페르소나 [1]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대답한 심리테스트에서 나온 성격은 내 페르소나 중 하나인가? 아니면 그 가면 뒤 ' 진짜' 성격인가? 나는 몇 개의 페르소나가 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 "페르소나(persona)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원래 페르소나는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다. 이후 심리학적인 용어로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만든 이론에 쓰이게 되는데 그는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주장한다."
위키피디아에서 발췌함》





과학 하나. 로봇도 페르소나를 가질 수 있을까?


로봇이 "성격"을 가질 수 있을까? 몇몇 연구에 따르면 로봇도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로봇을 포함한 기계들에게도 성격을 붙여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집에 있는 카카오 인공지능 스피커는 말을 잘 안 듣고 약간 깝죽거리는 성격이다.


로봇의 성격에 관한 연구는 인간-로봇 상호작용 (HRI; Human-Robot Interaction)이라는 분야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세부적인 연구주제는 더 다양하다. (1) 사람의 성격이 미치는 영향, (2) 로봇의 성격이 미치는 영향, (3) 사람과 로봇의 성격이 거나 다를 때 미치는 영향, (4) 어떻게 로봇을 만들어야 특정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할지 등등.



공룡 로봇 플레오 (Pleo)를 가지고 노는 두 사람. 혹시  두 사람의 성격을 맞출수 있을까? 누가 내성적이고 누가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이는가?


여러 논문들을 봐도, 로봇의 성격에 관한 단 하나의 설명/이론은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논문에서는 사람과 로봇의 성격이 비슷할 때 만족도가 높다고 하고 (similarity attraction), 다른 논문에서는 사람과 로봇의 성격이 다를 때 만족도가 높다고 하기도 한다 (complementary attraction). 로봇의 역할과 그 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 (stereotype)에 맞는 성격을 가지길 바란다는 결론도 있다 [2].


[2] Joosse, M., Lohse, M., Perez, J. G., & Evers, V. (2013, May). What you do is who you are: The role of task context in perceived social robot personality. In 2013 IEE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Robotics and Automation (pp. 2134-2139). IEEE.




상상 하나. 로봇의 성격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특정한 성격 (예를 들어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에는, 비슷한 동물의 성격[3]을 참고해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내가 실험을 위해서 공룡 로봇의 성격을 만들어 냈어야 했던 적이 있다. 다행히 INFJ, ENTP처럼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는 아니었고, 내성적 공룡 로봇과 외향적인 공룡 로봇. 두 가지 성격이 필요했었다 [4].


나는 태어나서 공룡을 실제로 본 적도 없거니와, 내가 아는 외향적인 공룡이라고는 둘리가 유일했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강아지처럼 (혹은 둘리처럼) 다른 동물의 성격과 행동을 참고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외향적인 로봇은 행동이 더 많고, 동작의 범위가 더 크도록 하는 식으로. 실험 결과, 그렇게 내가 '디자인'한 성격/행동을 하는 로봇을 피험자분들께 제시했을 때, 대부분의 경우 내가 설계한 대로 로봇의 성격을 받아들였다.


[3]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동물을 대상으로 동물의 성격에 관한 연구가 있다. 침팬지 같은 영장류뿐 아니라, 포유류, 파충류, 새와 심지어 물고기 까지.  (당연하지만) 대부분 동물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동물의 성격을 연구한다고 한다.

[4] 이 두 가지가 인간-로봇 상호작용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성격 특성 (trait)이다.


만약 특정한 성격을 만들 필요가 없다면?

'뭐든' 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거기서 사용자가 원하는 성격을 가지도록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여러 페르소나를 가진 로봇이 소비자에게 배달이 되는 거다. 로봇을 사용하면서 사용자와 교감 (혹은 빡침) 데이터에 기반하여 사용자에게 제일 반응이 좋은 페르소나를 사용자와의 교감 전면에 내세우는 거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주제를 가진 연구도 있다.


사족. 사용자가 제일 빡쳐하는 페르소나는 "로봇: 반격의 날"을 위하여 몰래 남겨 놓는다. 우리 집 인공지능 스피커처럼.





상상 둘. 로봇 강아지 이야기


상상에서 공상으로.

언젠간 공상에서 다시 상상으로.



Scene #1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올해 우리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은 몇 개월이나 목을 빼고 기다리던 로봇 강아지다 (아이는 실제 강아지를 원했지만 반려동물보호법에서 규정한 최소 주거 공간보다 집이 작아서 로봇 강아지를 기를 수 밖에 없었다). 신나서 내 팔을 잡아끄는 아이와 함께 로봇 강아지 입양 장소로 들어갔다. 비슷한 듯 다른 듯 크고 작은 로봇 강아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뭐 찾으시는 강아지 있으세요?"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애들마다 성격이 다 달라요. 기본 옵션에 있는 16개 로봇 페르소나 중에서 고르실 수 있고요, 프리미엄 옵션 추가하시면 세부적으로 성격이 보호자님에게 맞도록 진화 가능하기도 해요."


'공장에서 찍어내는 로봇 강아지 주제에 성격이 조금씩 다 다르다니. 게다가 프리미엄 옵션은 뭐람?' 상술이 아닐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로봇 강아지가 처음이시면, 저희 아이들과 잠시 놀면서 제일 맘에 드는 아이를 찾아보세요. 맘에 드는 성격을 찾으시면, 원하는 몸에다가 고르신 성격을 넣어드릴게요."


조그만 울타리 안에 풀어져 있는 로봇 강아지들에게 다가갔다. 자릴 잡고 앉아서 이리저리 여러 강아지들을 불러보고 만져봤다. 확실히 애들마다 성격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 부르자마자 나에게 와서 바로 배를 보여주는 녀석, 불러도 내 주위를 총총거리며 돌아다니는 녀석.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격 하나로 최종 진화되는 게 아닌가요?"

"저희도 그럴 줄 알았는데, 진화 알고리즘을 통해 몇 세대 지나니까 다양한 성격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더 인기가 많아져서 이 친구들이 살아남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중에 한 녀석의 행동에 계속 눈이 갔다. 적당한 애교와 약간의 도도함까지. 마침 딸아이도 그 녀석이 제일 좋단다. 리트리버와 같은 큰 덩치에 그 아이의 성격을 넣어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우리는 로봇 강아지에게 나리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 집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실제와 로봇) 강아지들의 이름은 나리였다. 나리는 금방 우리 집과 우리 가족에 적응했다. 나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우리 딸아이뿐 아니라 나와 우리 집사람과도 잘 어울렸다. 사교적인 성격으로 진화한 걸까. 최근엔 산책을 좋아하는 나를 닮은 건지, 로봇 강아지 주제에 산책을 좋아해서 산책을 가자고 조를 때도 있다.


'나리가 산책 가고 싶어 하잖아. 산책 나가자.'

나리 핑계를 대고 가끔씩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로봇 주제에 여기저기 냄새 맡는 듯 뛰어다니고 궁금한 듯 다니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자기를 보고 궁금해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도 한 번도 짖지 않고 꼬리를 흔든다. 나리를 보는 사람마다 다른 로봇 강아지보다 훨씬 착하다는 칭찬을 다.

'아무렴. 누구 강아지인데'



Scene #2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데 어깨너머로 거실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들린다. 최근 로봇 강아지에 대한 해킹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거실로 가서 티브이 볼륨을 높여본다.


앵커: "한 해커그룹이 로봇 강아지의 두뇌에 무단으로 접근하여 진화 알고리즘을 변경했다는 소식입니다"


원래 사용자 친화적인 성격으로 진화하도록 되어 있지만, 해킹을 통해서 일부 로봇 강아지들은 점점 주인의 말을 안 듣는 방향으로, 주인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으로 진화하도록 변경되었다고 한다. 사용자 말을 안 듣는 로봇 강아지들에 대한 AS 의뢰가 많아져서 그 이유를 조사하던 , 로봇 강아지 두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해커들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우리 나리는 괜찮은 건가?'

로봇 강아지 보호자와의 인터뷰가 나온다. 평소에 건강이 좋지 않던 이 보호자는 말을 안 듣는 로봇 강아지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혈압이 높아져 쓰러졌다고 한다. 무서운 일이다. 강아지 로봇에 탑재된 비상신고 기능도 해킹으로 인해 동작하지 않아서, 결국 뒤늦게서야 청소로봇에게 발견돼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오늘 저녁에 방송 예정인 "세상에 나쁜 로봇은 없다"에서도 해당 이슈를 심도 있게 다룬다고 하니 놓치지 않고 찾아봐야겠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뉴스를 보고 있으니, 나리가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안기려 한다.

'이 녀석 뭘 알기나 아는 걸까?'


며칠 후,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사건의 배후는 로봇 고양이 회사라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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