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강아지 아이보 (aibo). Credits: Sony
과학 하나
로봇 강아지 아이보 (aibo)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요컨대, 아이보가 현관에서 주인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진짜" 강아지들처럼 아이보도 주인을 기다렸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업데이트가 아닐까?
참 재밌는 생각이다. 나를 기다리는 로봇이란 콘셉트라니. 마치 아이보가 '그리움', '보고 싶음'이란 감정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걸까? 강아지를 다루는 다큐에서 집을 비운 사이 강아지의 행동을 보여주듯, 집을 비운 사이 아이보의 행동도 보여주면 어떨까? 주인이 떠난 현관에 멍하니 앉아있다던지, 주인을 찾아 안절부절못한다던지 (이건 좀 슬프기도 하고, 에너지 절약 관점에서도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기사에 따르면 특정 장소 (예를 들어 현관)에서 기다리라고 로봇에게 가르치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한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대문으로 뛰어나와 나를 반겨주는 우리 집 강아지 나리. 나는 단 한 번도 나리에게 대문에서 나를 기다리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우리 집 강아지 자랑이 아니라, 사실 그 누구도 강아지에게 현관에서 기다리라고 가르친 적은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가르친 대로 아이보가 현관에서 날 기다린다고 한들 그게 정말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질까?
"현관에 있다"라는 아이보의 행동이 "나를 기다린다"로 해석되기 위해선, 로봇이 왜 그런 (현관에 있는)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의도 추론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내가 들어오는 대문으로 왜 뛰쳐나왔는지, 난 강아지로부터 직접 답을 들을 수 없다 (강형욱 님은 가능하려나). 그저, '내가 보고 싶어서 뛰쳐나왔구나' 하고 추론할 뿐이지.
따라서 로봇에게 현관에서 나를 기다려라고 가르치는 행위는, 로봇의 행동에 대한 나의 자유로운 추론을 제한한다. 현관에 있는 로봇을 본다한들 "쟤가 나를 기다렸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아 저번에 내가 현관으로 이동해서 정지해 있도록 프로그래밍했으니까"라는, 로봇의 행동에 대한 완벽한 해석, 정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개발자라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상상 두 개 without technical details
내가 아이보 개발자가 아니니까, 로봇의 기다림이라는 감정에 관한 허튼 생각, 상상 두 개를 끄적여본다.
상상 하나. 주인을 만날 확률이 높은 곳으로 가도록 하기
결국 기다림이란 로봇의 감정은.. 로봇의 행동을 보고 내가 해석한 결론이다. 그러니 로봇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주인이 "정답"을 알 수 없도록 로봇 스스로 행동을 만들어 내면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현관 앞에서 기다리기"라고 프로그래밍하는 대신 주인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가도록 로봇의 행동을 가이드하는 것이다 (주인 얼굴이 로봇의 카메라에 포착될 확률 p를 maximize하라). 이런 방식으로 학습을 하다 보면, 주인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주인을 마지막으로 본 곳 -현관-이 될 테니, 로봇은 이제 그런 장소로 가서 기다리는 거다. 엉뚱한 장소에서 기다릴 수도 있으니, 집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인식해서 소리가 나면 현관으로 오게 하는 방법도 추가할 수 있겠다.
만약 이런 방법이 실제로 잘 구현된다면, 사용자가 가는 곳마다, 집으로 돌아오면 현관 앞에 로봇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로봇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사용자는 로봇의 행동에 대한 추론을 할 것이고..
hopefully '로봇이 날 좋아하네' 혹은 '로봇이 날 기다렸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상상 둘. 주인 없인 못살게 만들기
한걸음 더 생각해봤다. 도대체 로봇이 왜 주인을 기다리고, 만나려고 애써야 할까? 왜 로봇은 주인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매야 할까? 로봇의 동기 (motivation)에 관한 내용인데,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 (Antonio Damasio)의 주장 [1]을 바탕으로 "로봇의 주인에 대한 사랑, 그리움"을 구현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주인을 만나는 것이 로봇의 항상성 (homeostasis) 유지에 좋기 때문이다"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쉽게 말해서, 주인을 쫓아다니면 먹고 살기 편해지는 거다. 주인을 만나면 배도 부르고 (배터리 충전), 감정적으로도 안정되고 (터치 센서를 통한 쓰다듬기 인식) 등. 그래서 주인을 잘 쫓아다니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다.
그러면 주인을 보고 싶어 하지 않고, 주인에게 비싸게(?) 구는 로봇들은 살아남지 못할까? 주인을 집사로 만들어서, 자기가 주인을 찾는 게 아니라 주인이 자기를 찾도록 하는 로봇 고양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남지만.. 뭐 내가 만드는 거 아니니깐 그냥 넘어가겠다.
[1] Damasio, A., & Carvalho, G. B. (2013). The nature of feelings: evolutionary and neurobiological origins.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4(2), 143-152.
그런데.. 소비자의 관점에선?
그런데 그냥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무슨 알고리즘으로 구현하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감정에 대한 철학이 담긴 복잡한 알고리즘이든, 자극-반응과 같은 단순한 알고리즘이든, 사용자가 보는 것은 똑같은 "현관에서 기다리는 행동" 일 텐데. 그렇다 하더라도 애완 로봇이라면 autonomous 해서 로봇의 행동을 내가 해석하는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로봇의 그리움에 대한 허튼 생각을 마친다.
관련 기사:
그리고 마침 퇴고를 하다가 이 글과 연관된 글을 브런치에서 발견했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brunch.co.kr)
"북스토랑" 님이 철학 논문을 리뷰하면서 로봇, 인공지능의 감정에 대해 쓴 글인데 재밌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