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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Jul 15. 2021

이제는 친환경 가상화폐

21세기 친환경 코인에서 화폐 역사의 첫 페이지로.

최근 몇 달은 정말 가상화폐의 광풍이 불었다. 각종 뉴스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가상화폐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올랐느니 내렸느니, 을 벌었느니 잃었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 주위에서도 가상화폐 이야기는 종종 들렸다. 그중엔 어느 부서의 누가 몇백억을 벌고 퇴사를 했다더니 하는 구체적인 소문까지 나돌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가상화폐 하고는 영 인연이 없었다. 가상화폐를 사본 적도 팔아본 적도 없다. 비트코인이 주목받기 시작했던 2000년대 말쯤, 비트코인이라는 게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비트코인을 소개하는 논문을 읽어본 정도가 내가 가진 가상화폐 경험의 전부다.


.. 그때 비트코인을 10만 원 치만 샀었더라면? 그때는 한 10원 정도 했었나? 지금 비트코인이 4천만 원이니, 10만 원은 일, 십, 백, 천, 만,... 아무 의미 없는 셈인 줄 알지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본다. 사실 당시엔 논문을 이해도 못했거니와, 그때10만 원이라도 비트코인이라는 걸 살 정도로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비트코인 (그리고 다른 암호화폐)와 철저히 거리두기를 하며 지냈다.



과학 하나. 가상 화폐와 지구온난화


최근 쏟아지는  가상화폐에 관한 뉴스들 속에서 내 시선을 확 잡아끄는 뉴스가 있었다. 요컨대,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력이 사용되는데, 이들 전력을 생성하기 위해선 환경오염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 cointelegraph.com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기반하는데,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거래 정보를 분산해서 저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경희에게 100원을 주었다는 '거래기록'을 우리 가족과 친구들 모두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의 거래기록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누가 돈을 줬네 안 줬네하고 거짓말하긴 어려워진다.


여기서 가상화폐 이라는 과정은 가족과 친구들이 각자의 메모장에 '내가 경희에게 100원을 주었다'라고 기록을 추가하는 것이다 [1]. 문제는 이렇게 거래기록을 남기는 과정에 복잡한 컴퓨터 계산이 필요하고 이는 엄청난 전력 사용, 그리고 결국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뉴스 기사에 심심찮게 소개되는 외국의 채굴장 사진을 보면 수백, 수천 대의 컴퓨터가 밤새도록 쉬지 않고 열을 뿜으며 일 (채굴)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발표 [2]에 따르면,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데 사용하는 전력량이 인구 4,500만의 아르헨티나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실로 엄청난 양이다. 심지어 최근 뉴스에서는 미국의 한 호수가 가상화폐 채굴 때문에 온도가 높아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 가상화폐 채굴에 대해서 더 궁금하다면: 비트코인 채굴이란 무엇인가? (cointelegraph.com)

[2] '케임브리지 비트코인 전력 소비 지표' (Bitcoin consumes 'more electricity than Argentina' - BBC News)


가상화폐를 채굴하는데 이렇게 많은 컴퓨터를 연결해서 쓴다고 한다. © by Marco Krohn



상상 하나.

자연을 보호하는 산호코인


이놈의 가상화폐들. 세상에 도움되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건가? 그러다가 우연히 산호코인이라는 걸 찾았다. 이쁜 이름에 이끌려 산호코인 홈페이지에서 코인에 대해서 조금 더 찾아보았다.


산호코인의 제작자에 따르면 산호코인은 경보호를 장려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산호코인의 채굴 방식이었다. 기존의 다른 코인들처럼 환경을 해치며 컴퓨터로 채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보호를 통해서 코인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친환경 채굴'이라고?


제작자의 설명에 따르면, 쓰레기를 줍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올리고,  #산호코인과 #전자지갑 주소를 해시태그로 남겨놓으 채굴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 산호코인봇이 SNS에 올라온 사진과 동영상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산호코인을 내 계좌로 지급한단다.


최신 AI 기술을 이용해서 쓰레기 줍는 모습뿐 아니라 재활용품을 나눠 버리는 모습, 종이컵이나 비닐봉지 대신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모습도 인식한다고 했다. 쓰레기를 버리면 돈을 주는 로봇 [3]도 있다고 하니, 진짜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워낙 다양한 (그리고 믿기 어려운) 가상화폐가 범람하는 시국이라 의심의 눈초리를 쉬이 거두지 않고 산호코인에 대해서 조금 더 찾아보았다.


[3] [AI 실생활 체험기] 쓰레기 올바르게 버리면 돈 주는 재활용 로봇... 페트병인지 일반 쓰레기인지 어떻게 알지? 링크: http://www.a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981
예를 들어 이렇게 청소를 하는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코인을 얻을 수 있다. © by SparkFun Electronics @ Flickr


그러다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다. 실제 생활에서 쓰기 거의 불가능한 다른 코인들과는 달리 산호코인은 (아직 가맹점이  많지는 않았지만) 실제 사용처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오키나와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호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을 결제할 때 산호코인으로 지불이 가능하다고 했다. 호텔 홈페이지를 보니 재밌는 내용이 많았다. 스노클링 장비 대여는 산호코인 5개, 오키나와 맛집 추천은  코인 2개, 대리운전은 코인 10개였다. 산호코인.. 생각보다 꽤 쓸만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 둘.

500,000,000,000 x KRW100


이미 눈치챘겠지만, 위에서 소개한 산호코인은 나의 짧은 코인 제작 경험에 기반하여 만들어 낸 이야기다. 놀랍게도 가상화폐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4]. 화폐를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 중 10분 만에 코인 만들기가 가능한 곳이 있어서 그걸 이용해 보기로 했다 (실제론 5분도 안걸렸다).

[4] 정확히 구분하자면 가상 코인 (coin)과 토큰 (token)은 다르지만, 여기서는 코인으로 표현했다. 이 둘의 차이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코인은 자기의 블록체인 네트워크 (거래장부) 위에서 돌아간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있고, 이더리움은 이더리움의 네트워크가 있다 (서로 다른 거래장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에 반해, 토큰은 자기 고유의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없고, 대신 다른 코인의 블록체인 위에서 돌아간다. 예를 들어 내가 만든 산호코인도 이더리움 위에서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즉, 산호코인을 위한 거래장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만들게 아니면, 다른 코인의 거래장부를 빌려 쓰는 게 쉬운 선택이다.


몇 번의 클릭으로 가상화폐를 만들 수 있는 홈페이지. 10분도 안되는 사이에 나의 가상화폐를 만들 수 있다.


홈페이지를 들어가니 정말 직관적이었다. 첫 단계는 먼저 화폐 이름을 정하는 것이다.

이름을 뭘로 할까?

돈의 이름을 내가 고를 수 있다니. 소설가, 각본가 혹은 소수 정치인 (독재자?) 말고는 누가 그런 고민을 해볼까?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자연보호를 상징하는 뜻으로 산호코인으로 정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산호가 더 잘 보호될 수 있도록, 산호를 위한, 산호에 사는 생명들을 위한 코인!


다음 선택은 코인을 얼마나 발행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돈을 얼마나 찍어낼지 내 맘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화면에 보이는 빈칸에 0을 두드려 넣는 만큼 돈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다.


이름이 이름인 만큼 전 세계 산호의 수만큼 발행하기로 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산호가 있을까? 때마침 세계 최초로 산호 군락의 수를 조사한 논문이 올해 나왔다. 논문을 읽어보니 태평양에는 약 5천억 개나 되는 산호군락이 있다고 한다. 아마존에 있는 나무들 만큼 그 수가 많다고 하니 아마존도 그렇고 태평양도 그렇고, 참 큰가 보다. (그리고 그 큰 자연을 이렇게 빨리 해치는 인간도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다).


홈페이지에서 나머지 자잘한 설정을 해주고 나니.. 잔! '산호코인'이라는 것이 세상에 탄생했다. 그것도 오천억 개나. 물론 당장은 가치가 0에 불과한 코인이지만, 만약에, 진짜 만약에 산호코인이 잘돼서 코인 하나가 1원의 가치를 가진다면? 그러면 난 5천억의 자산가가 되는 거다. 만약 100원의 가치를  가진다면? 난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다 [5].


[5] 2021년 기준 한국 최고 부자의 재산이 14조 정도라고 한다.


By Toby Hudson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137678



그런데 말입니다..


만들어진 산호코인을 내 전자지갑으로 보내려고 하니 약간의 수수료 [6]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렇게 만들어진 산호코인이 실제 사용자들 사이에서 통용되기 위해선 결국 블록체인 (거래기록대장) 위에서 돌아가야 하고, 이들 블록체인을 돌리기 위해서 수수료가 필요한 것이다. 이 수수료는 다른 사람들에게 채굴의 대가로 지급된다. 수백, 수천 대의 컴퓨터로 나의 거래기록을 기록해주며, 동시에 엄청난 전기를 쓰는 그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렇다. 아무리 친환경을 표현 한다한들, 결국 블록체인이라는 것 위에서 돌아가야 하는 가상화폐는 수많은 컴퓨터의 사용, 그리고 환경오염에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환경오염을 예방하려고 만든 코인인데, 결국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6] 가스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허탈했다. 자연을 보호하는 코인은 없는 건가? 대안은 없을까?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가상화폐가 나오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자연을 보호한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나의 고민을 듣고 있던 경희가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조개껍데기를 준비해서, 자연보호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것이다.


고대에서부터 조개는 화폐 역할을 많이 했다고 한다. 화폐 (貨幣)라는 단어에도 조개 패(貝)자가 들어간다. © 국립중앙박물관


멋지다! 조개 화폐라니. 최신 암호화폐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화폐 역사의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호기롭게 시작한 나의 친환경 코인 프로젝트는 (가상화폐의 동작에 대한 무지 덕분에) 21세기 블록체인 기술에서 기원전 30세기 조개화폐로, 약 5천 년을 돌아가고 말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렇게 끝났지만, (친환경 블록체인의 형태든 조개의 형태든) 자연을 보호하는 산호코인이 실제로 세상에 나오는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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