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다. 브런치북.
이제 나도 브런치작가다.
드디어 책이 나왔다. 오키나와에서의 신혼생활에 대하여 나와 경희가 하나씩 브런치 매거진에 쓰던 글들이 모여 책 (브런치북)이 된 것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일과 함께 시작했던 우리 부부의 글쓰기 프로젝트. 그로부터 벌써 1년이 지났다. 1년의 신혼생활을 담는데 1년이 꼬박 걸린 셈이다.
'느긋하게 쓰지 뭐'라는 이유를 대며 차일피일 책의 완성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우리를 채찍질하는 기회(?)였다. 늘어지게 글을 쓰던 습관을 잠시 멈추고, 공모전 일정에 맞추어 부지런하게 글을 모으고 다듬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응모하기'를 누름으로써 길고 길었던 우리의 글쓰기가 일단락되었다.
'썼던 글을 모으기만 하면 책이 되는 건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책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이었다. 나름 '에디터'를 자처하며 책의 편집을 맡았는데, 자유롭게 발산하던 우리의 이야기를 하나의 틀에 맞춰 엮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공대 대학원에서 쓰던 글 (논문)의 스타일이 아직 남아 있는지, 건조하고 딱딱하기 그지없던 나의 글을, 경희의 부드러운 글과 함께 버무려 상에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브런치북을 준비하면서 또 많이 했던 고민은 우리의 글이 '일기'로 끝나지 않고 '에세이'로 가상의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처음, 우리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예상 독자층이 (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우리 주위 가족,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넓은 독자층을 생각하며, 우리를 아는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일기에서 끝나지 않도록, 우리가 느꼈던 재미가 다른 독자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도록 신경을 더 써보기도 했다 (전달에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엔 희망과 좌절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작가로서의 삶을 사는 거야!'라는 희망과 기대가 부풀어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브런치에 넘쳐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의 글을 보고 '우린 안될 거야'라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브런치북이 거의 완성되어 갈 쯤에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 작품을 엿보기도 했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응모했다니'. 어디서 본 글이 생각났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라고. 그렇게 우리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났다.
그래도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재미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해올 수도 없었을 거다. 우리가 오키나와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깜박거리는 커서를 따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난 추억들이 거실에 놓인 글쓰기 작업용 식탁 위로 날것의 음식재료처럼 쏟아졌다. 우리는 맛있는 주제를 앞다투어 선점해가며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쓰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했지만, 그 과정도 좋았다. 그 과정 끝에 내 마음을 잘 표현해줄 문장을 만날 때면 더.
우리가 흔히 아는 손에 잡히는 형태의 책은 아니지만, '우리의 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이 작은 프로젝트가 1년의 과정을 지난 끝에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 보람차다. 하지만 더 즐거웠던 것은 글을 쓰고 다듬는 기간 동안, 경희와 그때의 추억을 같이 돌이켜 보며 옅어져 가던 오키나와의 추억에 다시 짙은 칠을 덧댄 것,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라는 말처럼 "읽고 싶은 글을 쓰자"란 생각으로 준비해보았지만, 여전히 우리끼리만 재밌는 책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다. 읽어야 할게 많고, 봐야 할게 넘쳐나는 세상에, 이렇게 또 하나의 읽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괜스레 송구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래도, 다소 부족한 글솜씨지만, '오키나와에 사는 건 어떤 거야?'라는 궁금함이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책이 다가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길 바란다.
People will read again!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 나왔던 People will read again! (사람들은 다시 책을 읽을 것이다!)란 구절로 이 글을 맺는다. 숏폼, 스낵 컬처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언젠가 그런 시대가 오길 바라며.
>> 브런치북 주소: https://brunch.co.kr/brunchbook/love-in-okina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