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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Feb 01. 2021

서울에서 저평가된 아파트를 찾는 방법

30대 부부. 영끌 막차를 타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 커플의 모든 에너지는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데 다 사용되었다.


서울에서 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예산으로 우리가 원하는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우리의 높은 눈이 문제일 수도 있고, 우리 눈높이에 비해 턱없이 낮은 예산이 문제일 수도 있다. 집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투기꾼들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성공하지 못한 부동산 정책 탓일 수도 있다. 그리고 누가 그랬듯이 "굳이" 서울에 살려고 마음먹은 우리의 의도가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서울에 우리가 들어갈만한 집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고, 우리의 에너지와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우리 손에는 항상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고, 우리는 틈이 날 때마다

부동산 어플에 올라온 매물들을 확인하였다. "살 수 있다"라고 희망차게 이름 지어진 핸드폰 바탕화면 폴더 안에는 호갱노노,  네이버 부동산, 청약 Home 등 부동산과 관련된 어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손바닥만한 화면을 보며 손바닥만한 집을 찾느라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X평대, Y억 이하, Z년 이하 아파트


집을 찾으면서 제일 자주한 일은 부동산 어플에서 이것저것 필터를 걸고 '조건 검색'을 한 것이다. 하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검색은 "해당 조건을 만족하는 매물 0개"라는 결과만 돌려줄 뿐이었다. 우리는 곧 깨달았다. 매물을 찾기 위해선 X는 내리고 Y와 Z는 올려야만 했다. 집 찾기의 예술은 이 XYZ를 잘 조율하여 제약조건 안에서 최적의 아파트를 찾는 것이었다. 공대생으로서 최적의 값을 찾는 것은 익숙했으나, 부동산 문제 풀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Z가 계란 한 판 정도의 나이가 될 때서야 X와 Y를 만족하는 매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세대의 아파트를 만나는 친근감보다 염려가 먼저 들었다.



호갱 No No? 호갱 Yes Yes!


우리가 집을 찾을 때 많이 사용한 어플 중 하나가 호갱노노라는 어플이다. 매물 검색도 도움이 되지만, 특히 호갱노노에서 제공하는 '이야기' 메뉴에서는 실제로 그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파트가 궁금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2년 전 우리가 지금 집을 알아볼 때도 실제 살면서 알게 되는 중요한 정보들, 예를 들어 분리수거는 언제 하고, 주차장 형편은 어떤지 등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호갱노노는 안본새 많이 변해 있었다. 실제 아파트의 장단점을 나누는 이야기보다는 어떻게든 아파트를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글이 더 많이 보였다. 예를 들어 호갱노노 '이야기'에 올라오는 글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는 저평가되어 있다. 아파트의 장점을 쓴 글에는 '그래서 이 아파트는 저평가예요'라는 댓글이 달렸고, 단점을 쓴 글에는 '사실 그런 단점은 없어요/안 그런 아파트 있나요. 그래서 이 아파트는 저평가예요'라는 같은 결론의 댓글이 달렸다. 그러니까 이 글의 제목에서 말한 서울에서 저평가된 아파트를 찾는 방법은 쉽다. 아무 아파트나 사면된다. 다들 저평가라고 하니 말이다.


그놈의 저평가. 밑도 끝도 없이 저평가를 외치는 댓글들을 보다 보니 속이 쓰렸다. 아니 부글부글 화가 났다. 집 한 채 없어서 속이 좁아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댓글들을 다는 사람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꽤 괜찮은 일 아닌가? 댓글을 열심히 달아서 아파트의 품위 (그리고 가격)을 지킬 수 있다면, 그로부터 얻는 심리적 그리고 재정적 이익은 꽤 클 것이다. 누군가는 조사할 수 있지 않을까? 저평가 글의 개수와 아파트값의 관계라던지 하는 것들을 말이다. 어쨌든 호갱노노의 "이야기"는 자정이 필요해 보였다. 믿도 끝도 없이 '저평가'를 외치는 이들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10억 이하로는 팔면 안 됩니다"라는 식의 담합은 못 올리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아파트 가격 담합은 신고 대상이다). 그런 글들은 호갱을 없애는게 아니라 더 늘리는 것일 테니.



집 값 사수 전투


호갱노노의 "이야기"에 올라온 많은 글들을 보다 보니 그 글을 쓰는 사람들의 부류와 패턴이 보였다. 제일 자주 눈에 띄는 사람들은 집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파트의 단점을 담은 글들이 올라오면 열심히 댓글을 달며 디펜스를 한다. 집 값을 지키는 이들은, 일종의 수비수인 셈이다. 각 아파트마다 눈에 띄는 수비수 - 고정닉들도 있다.


"이야기" 글들 속에서는 공격수도 보인다. 아파트의 명성에 흠집을 내어 집값을 떨어트리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매에 있어서 긍정적인 리뷰보다 부정적인 리뷰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공격수들은 실제 거주자 흉내를 내면서 아파트의 불편함, 단점을 남긴다. 가끔은 닉네임을 바꿔가면서 공격을 하다가 들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전투에서, 실제로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실제 거주자들의 이야기다. 보통 전세로 실제 거주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아파트의 장단점을 논리 정연하게 말해 준다. 보석만큼 소중한 글이고, 보석만큼 만나기 힘든 글이기도 하다.



공수 교대


그리고 지난 주말. 우리 부부의 영혼을 한껏 끌어모아 우리도 조그만 집을 구했다. 지하철역과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리 오래되지도 새것 같지도 않은 아파트이다. 요즘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영끌, 패닉 바잉 하는 30대'가 된 것이다. 이제 몇십년동안 빚 갚을 일만 남았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입장이 바뀌었다. 공격에서 수비로 넘어간 걸까. 집이 없을 때는 집값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직 중도금도 치르기 전이지만) 이젠 집값이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실거주니까 괜찮을 거야' 하고 서로 위로한다. 과연 우리 집이 똘똘한 한 채 일지, 띨띨한 한 채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선, 집을 가졌다는 안정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다짐을 한다. 우리는 호갱노노에 저평가 글을 쓰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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