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확천금의 꿈만은 아니었음을
29년을 살면서 아빠 심부름을 제외하고 직접 로또를 사본 건 단 두 번. 그 두 번도 나와는 그리 가깝지 않은 누군가가 로또 1등에 당첨되어 아파트를 샀다는 소식을 건너 듣게 된 후다. 그 이후 별안간 ‘혹시, 나도?’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로 인해 복권 판매점에 발걸음 한 것이다. 결과는 뭐.. 내가 단 두 번 만에 일확천금을 손에 넣었다면 이 글을 쓸 일도 없었겠지.
난 오랜 시간 아니 살아온 거의 모든 날에 로또와 같이 돈을 걸고 하는 게임을 불신해왔다. 철저히 ‘운’을 거는 것뿐인데 불신할 것 까지야 있겠느냐만, 주기적으로 로또를 사서 당첨 번호와 본인의 로또 종이를 연신 번갈아보며 몇몇 숫자 위에 동그라미를 치다가 “에라이, 에이씨”하고 헛웃음 치며 종이를 구기는 아빠를 보면서, QR 코드로 단 1초면 당첨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우리 아빤 아직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한다. 어쩔 땐 한 손에 볼펜을 꽉 쥔 것이 무안할 정도로 동그라미를 단 한 개도 치지 못하는 아빠를 보면서, 올리브영이나 소품샵에서 창고정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랜덤박스를 사 언박싱을 하다가 “뭐야, 쓰잘데기 없는 것만 들어있네. 돈 아까워!” 하고 인상을 쓰는 친구를 보면서 성공 확률 낮은 게임엔 절대 시선을 두지 않았다.
일본 여행에서 낮이고 밤이고 늘 화려한 불빛이 이는 파친코 앞을 지나면서도 마카오 여행에서 호텔 1층에 있는 카지노를 통로로 이용하면서도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투자한 돈 이상의 수익을 거둬서 애써 미소를 감추며 기뻐하는 사람은 본 적도 없고, 대게 요란하게 생긴 기계를 앞에 두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될 때까지 해보자’하는 듯한 무서운 기운을 풍기는 사람들뿐이었기에.
“내가 만약 당첨이 안 되면, 내 5000원을 누군가가 가져가는 거잖아? 그건 좀 억울한데? 난 그냥 그 5000원으로 스벅 가서 자몽허니블랙티 마실래.”
마찬가지로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로또에 만원씩 투자하는 연인에게 난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 내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에이~ 그렇게 생각하면 로또를 사면 안 되는 거지.”
월요일 출근길에 로또를 사서 평일 내내 ‘만약 내가 1등에 당첨된다면?’을 떠올리며 행복 회로를 굴리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오후 8시까지, 그들은 어떤 것을 소망하며 6일을 보낼까? 로마 시대 때 최초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도 1947년에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성황 하는 복권 시장을 보면, 그간 로또와 함께한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리고 이젠 나도 로또 사는 사람들의 심리는 알 것 같다. 흔히 로또 하면 ‘일확천금’을 떠올리지만 반대로 우리가 로또를 떠올리는 순간은 현재 삶의 답답한 부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부자가 될 거야!’ 하는 것보단 지금 생활의 어느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은 순간에 나도 모르게 로또를 떠올린다. 난 아직 부모님 집에서 얹혀 사는데,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 편도 1시간 30분에 달하는 거리에 지쳐 ‘이제는 진짜 독립해야겠다’ 싶어서 직방으로 서울 원룸 가격을 알아봤을 때, 엄청 큰 항아리에 고사리손으로 모래를 한 줌 두 줌 넣는 듯 잔잔히 모아 온 내 소박한 결혼 자금을 보면서 ‘도대체 이래서 언제 결혼할 수 있을까’ 막막할 때, 엄마 아빠한테 주기적으로 100만 원씩 용돈을 드리고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등 ‘나도 이젠 돈으로 효도하고 싶다’ 생각들 때가 그렇다. 그럴 때면 ‘역시 답은 로또뿐인 건가’하고 로또가 머릿속을 휙 스친다.
하지만 여전히 로또에 기대 심리가 낮고 성미 급한 나는 토요일 저녁이 아니면 로또를 사지 않는다. 만약 당첨되더라도 예상치 못한 일확천금의 소식이 난 더 기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요일이 되면 자꾸 까먹어 버리는 탓에 아직 두 번 밖에 사지 못했다.
아, 이번 주 토요일엔 잊지 말고 꼭 로또 사야지. 독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앞당겨보자. 뭐, 혹시 모르니까.
+ 네이버에 ‘일확천금’이라 검색하니 이런 게 보였다. 너무도 건조하고 송곳 같은 답변에 괜히 내가 씁쓸해졌다 ···.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64일 차 _ 로또 사는 사람들의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