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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Jun 08. 2021

싫어하는 걸 해보기로 했다

“굳이 왜?” 라구요?

내가 지닌 기질 중 가장 뚜렷한 건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것. 그 비율이 딱 5:5로 나뉜다면 별 문제없겠지만, 나는 2:8 정도의 비율을 지닌 사람이다. 싫어하는 게 너무도 많다는 거다. 뚜렷한 취향 없이 여러 친구와 이곳저곳을 탐험하던 학창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완 달리, 비교적 취향과 정체성이 또렷해진 지금은 무언갈 싫어하는 마음도 더 단단하게, 빠르게 자라난다.


격렬히 싫어하는 것은 가만히 있기, 인공적인 향이나 큰 소리가 감도는 공간. 음식은 말할 것도 없다. 고수나 바질 등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 멍게나 성게알 등 바다향이 많이 나는 해산물, 오징어나 문어 등 오래 씹어야 하는 해산물,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서 조리한 즉석떡볶이, 통조림 햄이 잔뜩 들어간 부대찌개,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양념한 제육볶음이나 김치볶음···.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에 못 먹는 음식까지 더한다면 음식 이름으로 A4용지 반 장은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쓰면서도, ‘이런 거 다 안 먹으면 도대체 뭘 먹고사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만 해도 혹자는 이미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젠 내가 싫어하는  경험하고 싶어 졌다. 무언가에 불호였던 마음이 갑자기 호로 바뀌어서는 아니다.  번째 이유는 이렇다. 그동안 누군가 내게 “이건  싫어해?”하고 물으면  “그냥~.” 하고 말았다. 싫어하는 이유야  있었지만, 타인에게 설명할  있을 정도의 명확함이 없었다. 그냥 겉보기에 싫다는 이유로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니, 그런 내 모습이 적어도 내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은 아니었다. 무언갈 받아들이기엔 마음의 크기가 작고 아집이 많은 사람임을 방증하는 것이니까. 적어도 내가 인공적인 향을 왜 싫어하는지, 정확히 어떤 향을 싫어하는지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가능하다면 그 향에 함유된 성분 중 어떤 게 내게 맞지 않는지도 알고 싶다.


두 번째론, 세상만사 탐구하는 것이 숙명인 에디터라는 직업을 희망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극소수의 것에만 관심을 두는 모순이 심히 부끄럽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무언가에 대해 ‘왜’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 들여 보다 보면, 그 시간 자체로 다양한 문화에 대한 깊은 경험의 축적이 될 거라 기대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계기도 어떤 경험에 있다. 싫어하는 음식을 시도한 경험, 심지어는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하는 내가 ‘움직임 없이 생각조차 비우는 것’이 핵심인 명상을 시도한 경험.


한 예로, 한식집의 배추김치처럼 일식집에서 없으면 섭섭한 반찬이 있다. 바로 락교와 초생강이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중 일식을 가장 좋아하는 나지만 락교를 먹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마늘도 아니고 파도 아닌 것이(파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게 어쩐지 못마땅했다. 락교를 입에 넣고 오도독 토독 거리며 음미하는 친구의 강한 권유에 못 이긴 것이 내 첫 경험이었다. 입속에 그득히 들어있던 퍽퍽한 돈가스를 단번에 넘겨주는 개운함과 여러 겹이 한 겹 한 겹 이빨에 닿으며 씹힐 때마다 느껴지는 파삭한 식감. 이젠 락교 없는 일식은 케찹 없이 먹는 핫도그와 같다.


또 내가 비싼 한식집에서 반찬으로 나온 전복구이, 전골에 들어있는 전복 역시 마다할 때마다 옆사람은 “이렇게 좋은걸 왜~” 하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어느 계기인진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는 전복의 풍미를 알아버린 나도 전복을 한 점 더 먹기 위해 눈치 싸움에 참전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어쩌면 난 음식은 물론 수많은 문화의 깊은 맛을 영영 모른 채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내 앞에서 락교를 맛있게 씹던 그 친구는 나완 반대로 좋고 싫음의 비율이 8:2인 사람이다. 그 옆에는 좋고 싫음 사이에 ‘보통’도 끼어있어 5:3:2 정도의 비율을 지닌 친구도 있다. 좋고 싫음의 비율이 2:8이라는 건 경험한 바와 경험하지 못한 바 역시 2:8이라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내 경험의 비율은 좋은 의미로 한쪽에 치우치게 되지 않을까. 이 비율을 바로잡기 위해 난 싫어하는 것도 기꺼이 해보려 한다. 이름도 정했다. 싫어하는 것 탐구 챌린지.



첫 시도는 ‘명상’이다. 다음 글에선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72일 차 _ 싫어하는 걸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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