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명상
5월의 어느 날, 종로로 향했다. 쨍한 볕이 내리쬐고, 복사열로 인해 아스팔트 위에 아지랑이가 피기 시작한 날이었다. 이른 더위를 느끼며 명상 교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활짝 열린 한옥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루 위론 미닫이 유리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우측 기둥에 달린 하얀색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얼굴의 명상가 선생님이 차분한 몸짓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오세요~ 선영님?”
미리 손님의 이름을 외워둔 그의 배려 덕분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살짝 편안해졌다.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랐다. 2m*3m 정도 되어 보이는 소담한 거실, 거실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작은 방과 화장실이 하나씩 있고, 거실 전면에는 기다란 후정이 있는 구조였다. 초록색 잔디 사이에 햇빛이 내리고, 꼬마 나무 사이로 작은 새들이 통통통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정원 세명의 수업인데 내가 방문한 시간엔 나 혼자인 듯했다. 거실에 일렬로 나열된 세 개의 매트 중 가운데 매트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았다. 선생님과는 2m 거리를 두고 마주 봤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첫 대화는 이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명상은 해본 적 있는지, 왜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명상에 관심은 있었지만, 왠지 어려울 것 같아 시도도 안 해봤어요. 얼마 전엔 피크닉을 갔는데요, 남자 친구는 가만히 누워서 하늘 구경하고 새도 보면서 풍경을 느끼는데, 전 가만히 있질 못하는 거예요. 전 항상 엉덩이가 붕붕 뜨거든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던 그가 다시 물었다.
“왜 가만히 있고 싶어요? 가만히 안 있어도 되잖아요.”
목소리 높낮이의 폭이 좁고, 무언가에 크게 놀라거나 흥분하는 일도 거의 없는 사람. 이런 내게 주변 사람들은 ‘차분하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놀란다. “내가 차분하다고?” 겉으론 차분해 보일지라도, 난 늘 머릿속 여러 개의 줄에서 어느 현을 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한 개의 현에서 안정적으로 리듬을 탄 후 다음 현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난 이 현 저 현을 조리 없이 오가다 길을 잃고 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런 내 머릿속 사정을 알게 된 친한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겉으론 다도를 하고 있는데, 머릿속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군요.”
내가 명상가 선생님을 찾아간 이유 역시 ‘늘 복잡하기만 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선생님은 또다시 물었다.
“그랬군요. 그런데 선영님, 사람이 하루에 몇 개의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음··· 100개는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하루에 7만 개 이상의 생각을 한대요. 가볍게 떠오르는 생각까지요. 그중에 대부분은 사는 데 필요 없는 것들이고요. 그러니 생각이 많은 게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본인이 생각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많은 생각을 툭툭 털어내지 못하고 붙잡아 두거나 생각을 더 키우는 거일 뿐이에요. 어떤 생각이 들면 ‘어? 나 이런 생각하네?’ 하고 마는 연습을 하면 조금 편안해질 거예요.”
“아···.”
“잘 찾아오셨어요. 선영님에겐 명상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웃음). 그럼 이제 해볼까요?”
그의 안내에 따라 엉덩이와 무릎을 고르며 자세를 바로 잡고, 양 무릎에 손을 툭 올렸다. 그리고 살포시 눈을 감았다. 내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외부 소리, 불편한 몸이 느껴지거나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에 빠지지 않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게 바로 명상의 가장 기본인 ‘알아차림’이라고. 선생님은 나긋하고 명료한 톤으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안내했다. 그가 호흡에 집중하라 하면 내 콧구멍에 집중했고, 정수리를 느껴보라 하면 정수리를 느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좋아요, 어때요?”
“음··· 자꾸 딴생각이 들었어요.”
“괜찮아요(웃음). 그렇게 알아차림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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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엔 팔다리를 대자로 펼치고 누워 눈을 감았다. 엄지발가락부터 새끼발가락-발바닥-발등-아래 종아리-오금-바닥에 닿아 있는 윗등-어깨 아래-윗 어깨-뒷목-바닥에 닿아있는 머리까지. 그가 읊는 순서에 따라 전신의 부분 부분을 느꼈다. 참 신기했다. 엄지발가락에 집중하면 엄지발가락이 찌릿찌릿 느껴졌고, 다른 손가락에 비해 쓰임이 없어 평소 잘 느끼지 못하던 네 번째 손가락도 잘 느껴졌다. 바닥에 닿은 손등을 느끼면 손의 무게가 느껴졌고, 바닥에 닿은 윗 등을 느끼니 내 몸의 무게가 느껴졌다. 잊고 있던 몸의 감각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바닥에 펼쳐놓은 몸을 일으키는 일에도 내 몸에 친절한 방법을 택했다. 그는 몸을 둥글게 말아 바닥에 한 손 한 손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급한 성미에 나도 모르게 몸을 휙 일으켜버리는 탓에 선생님을 살짝 당황시키기도 했다.
“좋아요, 이번엔 어땠어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느낀 난, 마치 불 위에서 격정적으로 끓다가 냄비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찌개처럼, 감상을 마구 쏟아내었다.
“그럼 감정은요? 지금은 어떤 감정이에요?”
난 한참 고민했다. 내가 느낀 것을 내가 아는 감정의 말 중 어느 것에도 대입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감정의 종류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음··· 잘 모르겠어요. 감정이 없는 상태? 였던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런데 선영님, 감정의 종류는 생각보다 참 많아요. 불편한 것, 아무 생각이 안 드는 것, 잠이 오는 것 모두 감정이 될 수 있어요.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내가 아는 감정의 종류를 막 적어보세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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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한 순간만큼은 마음의 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무 현에 오르지 않아도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다. 이런 감정을 말로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에 혼자서 크게 뻘쭘했다. 사소한 일상, 그 안에서 느낀 여러 모양의 감정들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는 내가 감정 표현법에 서툴렀다는 것에.
또 명상을 통해 내게 크게 와닿은 알아차림도 있었다. 난 지금껏 스스로를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거나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서 방법을 찾고 실행했다는 것. 사실은 나의 깊은 내면 어딘가에 박힌 단단함이 나를 돌보는 일에 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는 것. 고로 난 마냥 물렁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나의 동력에 감사하고, 나의 동력을 발견하게 해 준 명상가 선생님에게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