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상상해온 순간에 와있다. 보드랍고 하얀 이불에 파묻혀 여러 번의 단잠에 빠진다. 그러다 언제 눈을 떠도 언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 휴가 둘째 날 아침이다. 창밖으론 고요한 백사장 위로 파도가 바쁘게 오가며 흔적을 남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숙소는 해변가 끝에 위치하며 창문의 방향이 해변을 옆에서 안은 듯 바라보고 있는 덕에 침대에서 고개만 들어도 해변의 전체가 보인다. 해변에는 비바람에 너울성 파도 주의보에도 서핑 보드를 들고 나온 서퍼 3명뿐. 그리고 난 주말 내내 정신없이 일한 덕에 마음이 완벽히 가벼운 상태. 쉼 없이 찰싹이는 파도를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고 한다. 내가 바쁜 나날을 지내는 내내 바다를 떠올렸던 것도, 마침내 도시를 떠나 바다로 온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그런데 지금 난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다. 정확히는 사라질 생각이 없다. 파도에게 바라는 바 없이 그저 파도의 격정적인 움직임을 관조할 뿐. 좋다. ‘해변에 나가 새로운 숨 좀 들이켜볼까?’ 하다가 진짜 낯선 건 이 공간에 있다는 걸 안다.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뜰 때마다 늘 느껴온 것. 이곳에서 가장 낯선 건 이불의 촉감도 천장의 조명도 벽지의 무늬도 가구의 모양도 내가 이 공간에 있다는 것도 아닌 ‘잠 냄새’. 긴 잠이던 단잠이던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가 뱉어낸 숨이 모여 잠 냄새를 만든다. 그 냄새는 너무도 포근해서 마치 갓 구운 빵을 트레이에 가득 올려놓은 빵집 주방에 와 있는 듯하다. 내가 긴 밤을 들여 구워낸 아침 냄새. 그런데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고 나면 이 ‘잠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거다. 내 생활이 쌓인 곳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나의 흔적이 없는 곳이라면 내 숨도 남지 않고 바로 휘발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게 숙박업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생활을 잠시 잊고 이곳으로 떠나올 누군가를 위해, 그에게 낯설기만 한 공간이 되어주기 위해 그가 습관처럼 쌓을 흔적까지 빠르게 지워주는 것. 자신의 생활이 묻지 않은 완벽히 낯선 공간에서야 아무런 생각 없이 푹 쉴 수 있을 테니까. 무념의 상태 그로 인한 평온은 파도를 마주하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거였다.
- 2021년 9월 7일 화요일 아침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