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순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영 Sep 11. 2021

휴가와 잠 냄새

며칠간 상상해온 순간에 와있다. 보드랍고 하얀 이불에 파묻혀 여러 번의 단잠에 빠진다. 그러다 언제 눈을 떠도 언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 휴가 둘째  아침이다. 창밖으론 고요한 백사장 위로 파도가 바쁘게 오가며 흔적을 남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숙소는 해변가 끝에 위치하며 창문의 방향이 해변을 옆에서 안은  바라보고 있는 덕에 침대에서 고개만 들어도 해변의 전체가 보인다. 해변에는 비바람에 너울성 파도 주의보에도 서핑 보드를 들고 나온 서퍼 3명뿐. 그리고  주말 내내 정신없이 일한 덕에 마음이 완벽히 가벼운 상태.  없이 찰싹이는 파도를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고 한다. 내가 바쁜 나날을 지내는 내내 바다를 떠올렸던 것도, 마침내 도시를 떠나 바다로 온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그런데 지금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다. 정확히는 사라질 생각이 없다. 파도에게 바라는  없이 그저 파도의 격정적인 움직임을 관조할 . 좋다. ‘해변에 나가 새로운   들이켜볼까?’ 하다가 진짜 낯선   공간에 있다는  안다. 낯선 공간에서 눈을  때마다  느껴온 . 이곳에서 가장 낯선  이불의 촉감도 천장의 조명도 벽지의 무늬도 가구의 모양도 내가  공간에 있다는 것도 아닌 ‘ 냄새’.  잠이던 단잠이던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가 뱉어낸 숨이 모여  냄새를 만든다.  냄새는 너무도 포근해서 마치  구운 빵을 트레이에 가득 올려놓은 빵집 주방에  있는 듯하다. 내가  밤을 들여 구워낸 아침 냄새. 그런데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고 나면  ‘ 냄새 느껴지지 않는 거다.  생활이 쌓인 곳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나의 흔적이 없는 곳이라면  숨도 남지 않고 바로 휘발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게 숙박업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생활을 잠시 잊고 이곳으로 떠나올 누군가를 위해, 그에게 낯설기만  공간이 되어주기 위해 그가 습관처럼 쌓을 흔적까지 빠르게 지워주는 . 자신의 생활이 묻지 않은 완벽히 낯선 공간에서야 아무런 생각 없이    있을 테니까. 무념의 상태 그로 인한 평온은 파도를 마주하지 않고도 만날  있는 거였다.


- 2021년 9월 7일 화요일 아침 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남다르다’는 다정한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