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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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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Jan 05. 2021

오늘 오후엔 햇빛 냄새가 났다

햇빛 냄새가 뭐냐구요? 음..

해가 정수리 위에 떠 있는 오후 12시 30분.

고막을 깊게 때리는 초인종 소리에 놀라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분명 외출복으로 샀지만, 언젠가부터 잠옷으로 전락한 후줄근한 반팔, 반바지 차림 위에 패딩 조끼를 걸치고 마스크를 쓰고 서둘러 현관으로 나갔다. 집배원이 내게 건네는 우편을 비몽사몽 중에 받아 들고, 그가 이어서 건넨 기계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손으로 악필 서명을 했다. 우편 봉지에 적힌 발신처를 대충 훑어보곤 방으로 들어와 책상 어딘가에 우편을 던지듯 놓았다.


방 안에선 포근한 잠 냄새가 풍겼다. 어질러진 침대에서 시선을 옮겨 창 밖을 봤다. 날이 참 좋았다. ‘해가 쨍쨍’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방 안을 아늑하게 데우던 잠 냄새는 밖으로 나가고, 햇살 냄새가 방으로 살포시 들어왔다.


평소 해가 쨍쨍한 날, 내가 종종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음~ 햇빛 냄새~”라고 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치만 분명 그런 냄새가 있다. 너무 차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의, 코를 살짝 스쳐만 가는 가벼운 바람, 그 바람에 섞인 풀냄새 일지 먼지 냄새 일지 모르게 나는 희미한 냄새.


봄이면 이런 냄새가 자주 난다. 한파가 왔다던 오늘, 오후엔 봄이 잠시 지나갔나 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노을이 지고 있다. 노을이 질 땐 무슨 냄새가 날까 싶어 창문을 다시 활짝 열었다. 그새 차가워진 바람에 콧 속이 시리고 머리털이 한 올 한 올 바짝 섰다. 얼른 창문을 꽝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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