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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Dec 28. 2020

콜라 섞은 보드카 한잔

프라하 기차에서 만난 러시안 부부와의 취중 만담기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술과 함께한 경험 중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다. 요즘 같이 코끝이 시린 계절엔 콜라 섞은 보드카 한 잔이 생각난다.

첫 회사에서 퇴사하고 무작정 떠난 유럽 여행에서, 또 머물던 도시가 지겨워져 별안간 다른 도시로 떠나기 위해 올라탄 기차 안에서였다. 나는 사람 없는 방을 골라 창가에 앉아 있었고, 곧 러시안 부부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눈인사를 했다.(유럽 영화에서처럼, 기차 한 칸에 네 개 정도의 방이 있고 방 문을 열면 양쪽으로 좌석이 3개씩 마주 보게 배치된 구조였다).


윗 머리와 이마가 유난히 반짝거리고, 호기심 많은 성격이 붉은 두 볼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아저씨와, 금발의 윤기 나는 머릿결을 지닌 그의 아내. 그들은 홀로 창가에 앉아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유독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작은 체구에 살짝 곱슬거리는 새까만 단발머리, 앳된 얼굴에 하얀 피부,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 만 듯 이목구비가 흐릿한 동양인 여자. 이런 나의 외모는 고국에선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모습이기만 하다. 하지만 동양인에 비해 큰 골격과 뚜렷한 이목구비, 밝은 머리색을 지닌 현지인 틈에 섞여있을 때만큼은 내가 보기에도 나는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나를 향한 부부의 눈빛 역시, 자신과는 다른 외모에 자연스레 느껴지는 신기함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아무튼, 아저씨가 내게 “사진을 찍어주겠다”하여 그에게 카메라를 건넨 것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들은 그저 나홀로 여행객인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러시아에서는 혼자 여행하는 경우가 드물고, 보통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돌이켜보면 그렇게 이야기하던 그들의 눈빛엔 왠지 응원의 마음이 섞여있었던 것 같다. 본인이 머물던 곳에서부터 지구 반 바퀴 거리인 이곳으로 홀로 떠나온 것 자체가, 아이를 둔 부모이기도 한 그들에겐 기특하기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행복 가득한 러시안 부부와 나홀로 여행객

옹알이 수준의 영어 실력이던 나와, 외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던 아내, 영어를 꽤 구사하던 아저씨. 이렇게 셋은 무언갈 누르기만 하면 일단 버퍼링이 1분은 걸리던 각자의 핸드폰 속 파파고에 기대어, 여기에 온갖 의성어와 몸짓을 보태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주고받은 이야기 중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너희 나라 여성 대통령”, “너희 국민들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아저씨의 질문(대통령이었던 그녀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난 ‘아 내가 영어 못해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며 “그녀는 지금 감옥에 가 있다”, “북한은 무섭다. 왜냐, 피슝~빵! 핵이 있으니까! 덜덜”라는 몸짓과 말로 대충 얼버부리고 넘어갔지(‘핵’조차 영어로 뭔지 몰라서 이것 역시 파파고에 찾아보던 나.. 정말 창피하다).

2017.04 프라하-플젠행 기차 안에서

그렇게 온 감각을 사용해 열심히 대화하는 사이, 내 손엔 부부에게서 받은 콜라 섞은 보드카 한 잔이 들려있었다. 난 술을 즐기진 않지만, 어쨌든 베풂을 받았으니 맛있게 먹는 게 미덕이라 생각하고 한 모금 크게 꿀꺽했다. 그리곤 목이 타 들어가듯 높은 도수에 깜짝 놀랐다. 그런 날 보고 부부는 “오호? 우리에게 이 정도는 음료수인데?”라며 호탕하게 웃었고, 난 어색하게 웃으며 속으론 '아 이런 게 러시안의 술부심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때도, 돌이켜보는 지금도 여행 배낭에 40 몇 도짜리 큰 보드카 한 병과 2L짜리 콜라병, 종이컵 한 줄을 넣고 다닌 그들이 너무나 신기하기만 하다.  

기차가 플젠을 향해 달려가는 두 시간 내내, 한 평짜리 좁은 방 안은 찐한 보드카 향기와 함께 콩글리쉬와 잉글리쉬, 러시안이 난데없이 섞여 방 안을 가득 채웠고, 기차에서 내릴 때쯤 난 취기에 눈앞이 흐려졌다. 대략 6년 전 영어 시험 듣기 평가 때만큼의 집중력을 다해 대화한 결과,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이 쑤시기까지 했고.

플젠에 내려선 취기에 헤롱 거리며 어찌어찌 필스너 우르겔 맥주 공장 투어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 일정이었던 맥주 스파샵(물 대신 맥주가 넘치듯 담긴 욕조에서 맥주를 무제한으로 마시며 스파 할 수 있는 곳이었다)으로 향했다.


스파샵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몇 명만 느린 걸음으로 다니는 인적 드문 동네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버스가 다니지 않고, 가로등도 몇 개 없는 후미진 골목 끝의 어느 호텔 안에 있는 곳이었다. 호텔은 오래된 산장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호텔에 도착해 프론트에서 안내를 받고 스파샵에 들어갔다. 그런데 샵에 직원이 없고, 20분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날 맥주가 흘러넘치는 스파로 데려가지 않았다.


창 밖을 보니 기다리던 새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리곤 ‘나 술 취했는데, 해까지 저버리면 안 되는데! 가로등 없는 저 길을 어떻게 걸어가지!’하는 걱정에 별안간 심장이 벌렁거렸다. 한 3분(?)을 더 기다리다가 ‘그래, 난 이만큼 기다렸는데! 너네가 안 나왔잖아! 내가 그냥 가버려도 내 탓 아냐!’라는 무대뽀 마인드가 치솟아버렸고, 곧 스파샵을 박차고 나왔다. 도망치듯 나오는 틈에도 호텔 프론트에 들러 이곳의 관광 필수 기념품이라는 맥주 비누와 맥주 샴푸를 구매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다행히 그곳은 예약만 온라인으로 미리 받고, 결제는 현장에서 하는 시스템에, 예약 취소 시 위약금도 없었다. 그치만 난 이미 예약을 해뒀었기에 그들의 시간을 붙잡아 둔 셈이었는데.. 나 아니었으면 손님 한 명 더 받았을 텐데.. 그 샵에 정말 미안하다.)

플젠-프라하행 밤 기차 안에서

그렇게 금방 깜깜해질 듯 어둑한 시골길을 혼자 걸어 버스를 타고, 또 버스표를 잘못 구입했던 터라 버스에서 살짝 창피도 당하고, 기차역에 도착해서는 저녁밥으로 샌드위치를 사서 기차를 기다렸는데, 내 샌드위치를 탐내어 내게 손을 뻗는 노숙인을 어찌어찌 떨쳐내고, 승객이 10명도 채 되지 않는 밤 기차를 타고 프라하의 숙소로 돌아갔다.


어찌 보면 계획했던 일정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취기 섞인 대범함으로 위험천만한 일을 자처한 나홀로 여행객이었기에 최악의 하루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론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의 보드카 한 잔과, 러시안 부부와의 대화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아마 이젠 홀로 낯선 이들과 술을 마시거나, 타국의 밤길을 거니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론 없을 일이기에 더욱 생각이 나는 그날의 하루. (플젠 역에 도착해선 취기에 헤롱 대며 러시안 부부와 대충 작별 인사를 한 턱에 , 그 흔한 이메일 주소조차 받아두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도 후회된다. 하지만 지금 후회한들 어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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