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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Feb 16. 2021

차고 온 깡통에도 정이 들어서

미련한 사람이 아닌 특별히 정 많은 사람.

몇 해 전 방영한 tvn 드라마 ‘또 오해영’.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에 대해 입을 모아 말한다. "드라마 속 해영이가 꼭 나와 같아서··"

해영은 정이 많다. 그리고 자신이 정을 느끼는 대상에게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있는 대로 감정을 표현한다. 만약 그 결과가 상처로 돌아와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음껏 아파한다. 그리곤 금세 일어난다.

어느 날 해영은 그의 연인에게 화가 잔뜩 났다. 서로에게 마음을 100씩 주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어째 해영 혼자서만 100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 뭐라 화를 낼 수도 없는 해영은 길가에 버려진 깡통만 애꿎게 찬다.

그의 연인 도경은 입술을 쭉 뺀 얼굴로 연신 깡통을 차며 걷는 해영을 귀엽게 바라보고, 해영은 바닥의 깡통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에게 말한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


"어려서, 학교 끝나고 깡통 차면서 집에 오다 보면, 깡통에 정이 들어 그냥 두고 집에 못 들어갔어.

'그냥 깡통이다, 깡통일 뿐이다', 그러고 들어 갔다가도, 다시 나와서 주워 들고 들어갔어.”

"예뻤다.”


나 역시 ‘또 오해영’ 속 해영에게 동감의 연민을 느낀다. 어느 한 조각은 나와 닮은 해영에게 정이 들어, 심심할 때면 또 오해영을 재생하기 일쑤였고, 다시 보기로 정주행을 4번쯤 한 후, 유독 기억에 남은 장면은 바로 이 ‘깡통 씬’이었다. 정 많은 해영과 그런 해영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장면이었다. 보통은 하등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도 정이 드는 해영의 모습에 난, ‘헉-’하고 소리 없이 공감을 표했다. 그리곤 나의 정에 대해서도 곰곰 떠올려봤다.




미대 입시를 위해 미술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선생님을 유독 좋아했다. 21살의 대학생 선생님이었던 그는 어리숙한 모습 속에 친절함과 따뜻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잘 생겼었다. 난 욕심 많은 학생이었고, 종종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썼다. 금세 내 표정을 읽은 그가 나긋한 말투로 조언을 하나 던지고 가면, 나는 바로 의지가 샘솟았다.


그런 그가 군대에 가기 위해 학원을 떠날 때, 다른 친구들은 그에게 손편지를 건네거나, 선생님 가지 마요~ 라며 장난스레 그의 앞치마를 힘껏 붙잡았다. 난 친구들이 떠나고 그의 주위가 조금 한산해지고서야 다가갔다. 아쉬움을 담아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그는 자신의 사물함에서 무언갈 한 주먹 꺼내 내게 주었다. 내 손에 올라온 건 자두맛 사탕이었다. 난 그 사탕을 고대로 집으로 가져와 내가 가장 아끼는 것만 담아 두는 서랍에 넣었다. 사탕을 아끼고 아껴, 그가 그리울 때 하나씩 꺼내 먹었다. 해가 바뀌고 예비반(2학년)에 올라갈 때 까지도 사탕은 대부분 남아있었다. 혹시 그가 이 글을 본다면 헉하고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겠다··

잘생긴 선생님이 있다는 걸 떠나서도, 난 학원에 가는 것 자체를 정말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고, 내 그림을 평가받고, 물감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입고서 친구들과 학원가를 활보하는 것도, 늦은 밤 수업이 끝난 후에 친구들과 걸어서 집에 오는 것도 모두 좋았다. 그래서 입시가 끝나고 학원에서 내 3년 치 짐을 싸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땐 입시가 끝났다는 후련함보다 아쉬움이 훨씬 컸다. 그때 집에 들고 온 화구 통과 물감통, 모서리가 닳은 지우개 더미, 연필, 때가 잔뜩 묻은 앞치마 모두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다.

태어나 13년간 살던 집을 떠나 새 집으로 이사를 할 때에도 집 안 구석구석의 모습을 내 조그만 핸드폰에 용량이 꽉 차도록 담고서야 집에서 발을 뗐다. 좋아하는 공간, 사람과 멀어질 때면 꼭 이렇게 미련 덩어리처럼 굴었다.

그림 김선영


‘또 오해영’에서 차고 온 깡통에도 정이 들어, 깡통을 집까지 가지고 들어가는 해영을 보곤, 나의 정 역시 공간과 사람뿐 아닌 사물(혹은 그 무언가)에도 향한다는 것을 짙게 알게 되었다.

유년기에 아빠가 선물해준 곰돌이 인형, 중학생 때부터 입어 구멍이 잔뜩 난 잠옷 윗도리는 물론이고, 길게 자란 손톱에도 정리 들어 자르지 못한다. 생활 속에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손톱이 어딘 가에 부딪혀 잘리기라도 하면 잘린 손톱에도 정이 들어서 버리지 못하고, 입고 있던 옷 주머니에 넣어둔다. 어느 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무언가 딱딱하고 뾰족한 것에 찔리면 그 무언가는 늘 손톱이었다. 언니는 이런 날 볼 때면 질색팔색을 했다.

해영은 원래부터 버려진 물건이었지만 자신의 발에 차여 자신과 함께 길을 걸었다는 이유로 깡통에도 정이 들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마음이 다 한 후엔 냉정하게 돌아설 줄도 안다. 반면 오늘도 옷 주머니 어딘가에 들어 있을 나의 손톱들과, 지나간 사람들을 구태여 떠올려가며 ‘그때 더 잘해줄걸. 왜 그렇게밖에 못 했을까,,’하고 후회하는 나의 마음이 방증하듯, 해영과 달리 난 돌아설 줄도, 버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덕분에 내 방은 언젠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쌓여 창고가 되어 있다. 큰 마음먹고 방 정리를 시작해도 버리게 되는 물건은 열개 중에 두세 개쯤. 이제는 보내줄까, 싶어 손에 들었다가도 물건들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나 정말 버릴 거야? 나랑 이런 일이 있었잖아~ 나 정말 버리는 거야? :( ’


내가 잘린 손톱에도 정을 느낀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던, 공간이던, 물건이던 너무 쉽게 정이 들고 정을 떼지도 못하는 내가 부끄럽고 창피했다. 이런 모습을 들키면 지나는 것에 연연하고, 미련한 사람처럼만 보일까 싶어 꽁꽁 숨겼다.

그래서 차고 온 깡통에도 정이 들었다는 해영의 말에 “예뻤다.”라고 말 해준 도경을 보곤 용기가 났다. '창피한 일이 아니고, 난 그냥 특별히 정이 많은 사람일 뿐이구나. 해영처럼 마음껏 정을 표현하기는커녕, 난 그저 마음만 꽁꽁 숨기다가 관계의 끝에서 남은 것을 가지고 혼자서만 추억했구나.' 마음껏 주고 난 후에야 돌아설 수도 있다는 걸 난 이 드라마를 보고 배웠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조직 변경으로 인해 내가 속한 셀이 없어지고, 셀원 모두 다른 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적이 있다. 난 그동안 함께 일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의미로 그들에게 쿠키 한 박스씩을 선물했다. 쿠키 박스에 그들을 닮은 귀여운 그림도 그렸다. 세 명 중 두 명은 놀랐고, 한 명은 “선영님, 주는 사람이었군요?” 하며 웃었다.


사람들에게 마음껏 표현하겠다고 다짐을 한지는 오래지만, 난 어쩔 수 없는 숫기 없는 사람이라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마음을 대변할 선물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종종 "제 꺼 사러 갔다가, 같이 샀어요~"하며 동료의 테이블에 그 사람이 자주 마시는 음료를 올려두기도 하고, 자취를 시작한 친구에게 새벽 배송으로 당근즙을 보내기도 하고, 굳이 새벽 배송이 아니어도 되지만, 친구가 아침에 출근하려고 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에 선물이 도착해있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엄마에겐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동료가 내게 한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난 주는 사람, 주는 사람,’ 이 말이 지금까지도 기분 좋은 이유는, 적어도 이 말을 한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거니까, 내 노력은 꽤 성공인 셈이다.


그래도.. 통장이 텅장이 되어버리기 전에, 선물 대신 평상시에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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