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영 Mar 11. 2021

내게 굴러와 준 동그라미 친구들에게

나를 마모시켜주어 고맙다고

날 도형에 빗댄다면? 난 어떤 도형에 가까울까?

예전엔 내가 세모라고 생각했다. 둥글둥글하지 않은 성격에, 왠지 날카로워 보이는 외모. 내게 그저 토닥임 받고 싶은 마음으로 한탄을 쏟아내는 친구에게, ‘이 부분은 네가 잘못했네, 그 사람이 기분 나쁠 만했네’하며 구태여 시시비비를 따져 말하는 뾰족함까지.



세모인 내가 좋았다. 외부에 관심이 없고,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단단함과 뾰족함.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하고 좋아해 주는 이들도 있었다. 굳이 둥글해지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 틈에서도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은 모두 동그라미 기질의 소유자였다. 나완 반대로 동글동글하고 유연한 성격에,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부드러운 성향이 외모에서도 드러나는 사람.


세모는 잘 굴러가지 않았다. 애초에 제 힘으로 굴러가기 힘든 모양이고, 세모의 마음이 엄청나게 동해 스스로 큰 힘을 내지 않는 이상, 누군가 힘을 들여 밀어야만 어딘가로 굴러갈 수 있었다. 내 곁엔 동그라미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늘 내게 굴러오거나 나를 어딘가로 굴려주었다. 굳이 스스로 굴러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동그라미 친구들을 뒤에 두고, 그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편하게 굴러다녔다.

동그라미 : 안녕?
동그라미 : 저기 재밌는 게 있어. 같이 가자.


그런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진짜 어른의 사회에 들어간 후론, 각기 다른 도형들과 섞여야만 했다. 세모인 나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곳이 있는 반면, 동그라미가 아니면 지내기 힘든 환경도 있었다. 아는 도형이 많거나, 다른 도형 틈에서도 잘 굴러다녀야만 재미난 기회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 세계였으므로. 처음으로 스스로 힘을 내어 다른 도형에게 굴러가야 하는 순간이었다.


동그라미가 되고 싶어 졌다. 그치만 세모가 갑자기 동그라미가 되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난 왜 애초에 동그라미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아닌데, 어렸을 땐 분명 동그라미였는데, 내가 세모가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자책하며 슬퍼했다.


뒤를 돌아봤다. 그동안 나를 굴려주던 몇 동그라미 친구들은 어딘가로 떠나고 없었다. 남은 동그라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동그라미가 될 수 있느냐고.


그들은 말했다. 네가 굳이 동그라미가 되지 않아도 되며, 네가 조금만 힘을 내어 굴러가면, 그걸 본 다른 팔각형, 동그라미 친구들도 너에게 굴러와 줄 거라고. 세모인 너도 충분히 좋은 도형이라고. 


그때, 어른들의 사회에서는 동그라미라도 아무 데나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동그란 구슬도 평평하고 좋은 땅을 찾으면 자리를 잡고 가만히 있기도 하는 것처럼. 동그라미의 마음이 동해야 움직인다는 것을.  


동그라미 모양을 한 친구들도, 처음부터 동그라미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각형, 팔각형, 어쩌면 나와 같은 삼각형이었는데, 힘을 내어 다른 도형들에게 굴러가고 부딪히고 마모되는 과정에서 동그라미가 된 것이라고. 그들도 자세히 보면 엄청난 개수의 각으로 이루어진 다각형이며, 각이 많은 덕분에 멀리서 보면 동그라미로 보이는 것이라고. 각의 개수는 곧 타인과 다른 세계를 허용하는 마음의 깊이를 상징하는 척도였다고. 




내 뾰족한 각에 찔려가며 나를 밀어준 동그라미 친구들과 지난 시간 덕분에 이제는 나도 오각형 정도는 된 것 같다. 동그라미처럼 데구르르 굴러가는 것은 여전히 힘들지만, 중간중간 쉬기도 하면서 천천히 힘을 내어 굴러간다.


역시 타인에게 마모되는 과정은,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세계로 굴러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었다. 스스로 굴러간 세계에는 내게 더 맞는 것, 재밌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내가 세모의 모습으로 한 세계에만 머물지 않도록, 나를 열심히 굴려준 동그라미 친구들에게.


나를 마모시켜 주어 고맙다고. 덕분에 이젠 스스로도 다른 세계로 굴러갈 수 있게 되었다고. 내게도 이젠 다른 도형을 이끌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오각형이 된 세모 : 고마워, 동그라미 친구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1일 차 _ 내게 굴러와 준 동그라미 친구들에게

매거진의 이전글 차고 온 깡통에도 정이 들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