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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12. 2021

색깔 있는 사람

난 어떤 색깔일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날 보면 노란색이 떠오른데!”

“그래? 노란색은 어떤 이미지인데?”

“밝음!”


학원에서 색채학 수업을 마치고 온 미술 선생님 친구가 신이 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도 물었다. 그럼 넌 날 보면 무슨 색이 떠오르냐고. 노란색 친구는 하얀 눈자위를 잠시 하늘로 올렸다가 짧은 고민 끝에 답했다.


“음··· 하늘색? 밝은 파랑 계열?”

“오, 파란색은 신뢰를 의미한다던데. 그래서 은행 로고가 대부분 파랑 계열이잖아. 아닌 곳도 많지만.”


내 말을 들은 친구는 ‘그래, 그건 맞는데, 너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색깔에 나를 빗대어 본 것은 이 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본인을 브랜드에 빗댄다면 어떤 브랜드와 같다고 생각하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주변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나요?”

“좋아하는 가수/작가가 있나요?”


어느 라이프스타일 잡지사의 에디터 면접 후기글에 ‘면접에서 편집장님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라는 말과 함께 올라온 질문들이었다. 나 역시 그 잡지사에서의 에디터 면접을 며칠 앞두고, 브런치, 인스타그램에 그곳의 면접 후기를 검색해본 것이었다.


그곳에서 선호하는 인간상은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명확한 취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색깔 있는 사람.’ 그래서 그를 파악하기 위해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음악은 뉴에이지 혹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매된 가요(산울림, 양수경, 자전거 탄 풍경 등의 음악), 책은 일본 소설, 좋아하는 브랜드는 심플함을 슬로건으로 둔 무인양품. 내가 좋아하는 건 분명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취향이나 색깔이 될 순 없었다. 그 카테고리 안에서도 누구에게 ‘이 음악 좋아, 너도 한번 들어봐’하고 추천할 만큼의 많은 경험과 깊이가 내겐 없기 때문이었다. 취향이라 말하기 애매한 나의 취향처럼, 난 그냥 애매하기만 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렇다고 면접에서 “전 애매한 사람이에요.”라고 할 순 없었다. 자존심이었다. 빠르게 생각의 회로를 돌렸다. 생각의 회로는 나를 빗댈 수 있는 도형, 색깔까지 닿았다.


난 어떤 색깔일까?

먼저 주변을 둘러봤다. 누가 봐도 밝고 긍정적인 성격에 아기자기한 취향을 지닌 노란색 친구처럼 빨강, 파랑, 검정, 하양 등의 원색부터, 고명도저채도, 저명도고채도, 무채색까지.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색을 지니고 있었다. 난 원색은 절대 아니구나, 생각했다. 원색은 어디에 있어도 존재가 잘 드러나지만, 난 어디에 있어도 소수만 알아봐 주는 사람이었기에.


타인에게서 시선을 떼어 나를 봤다. 내가 실제로 지닌 색을 둘러봤다. 옷장을 열었다. 파스텔 톤의 향연이었다. 테이블을 둘러봤다. 파스텔 톤의 향연이었다. 핸드폰 배경화면도, 대략 다섯 개의 파우치 중 내 손을 가장 많이 탄 파우치도, 여러 색상이 모인 포스트잇 모둠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색상 역시 파스텔 톤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파스텔 톤을 좋아했나, 생각했다. 원래 나는 검은색 인간이었다. 옷도 대부분 검은색 아니면 흰색만 입었다. 단호하고, 분명해 보이는 검은색이 좋았다. 그러다 불현듯 우울감이 지속되던 어느 날, ‘왜 이렇게 우울하지? 밝게 살고 싶은데. 아, 옷이라도 밝게 입어볼까? 내 눈에 보이는 색이 밝아지면 혹시 기분도 맑아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후로 여러 색을 찾아 입었다. 빨간색을 입어봤다. 어울리지 않았다. 짙은 녹색을 입어봤다. 어울리지 않았다. 샛노란색을 입어봤다. 역시 어울리지 않았다. 옷이 내게서 붕붕 떴다. 옅은 노란색을 입었다. 어울렸다. 코랄빛을 입었다. 내가 맑아 보였다. 그렇게 스스로 파스텔 인간이 되었다. 막상 입어보니, 그 애매한 파스텔 톤이 내게 딱 어울렸던 거다.


또 생각했다. ‘나는 그럼 파스텔 톤 같은 사람인 건가? 베이피 핑크, 레몬 옐로우, 라벤더, 스카이 블루··· 파스텔 톤이 얼마나 다양한데, 흰색을 콕 조금만 더 찍어 넣어도, 덜 찍어 넣어도 분명 다른 색이 되어버리는걸. 파스텔을 하나의 색이라고 할 순 없잖아···.’

난 수많은 파스텔 톤 중 '민트'를 골랐다.

신뢰가 연상되는 파랑과 차분함이 연상되는 초록이 섞인 색, ‘민트’. 민트색 역시 파스텔 톤의 대명사이며, 원색은 아니어서 단번에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색과 섞였을 때 묻히지 않는, 게다가 원색만큼이나 고유의 색처럼 느껴지는 존재감이 딱 마음에 들었다. ‘민트색이 사람이라면 단호함과 부드러움이 적절히 섞인 차분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 이런 이미지의 사람이 되자. 내가 무슨 색인지 모르겠다면, 되고 싶은 색을 골라 그 이미지를 따라가면 되는 거야.'



‘어쩌면 검은색이었던 내가 다른 색을 찾게 된 배경엔, 어쩔 수 없이 다른 색과 섞여야 하는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나도 모르게 남들과 섞이고 싶어 지면서, 혹은 섞여야만 더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가 다른 색과 섞였을 때 좀 더 맑고 잘 보이는 색이 되고 싶어서였던 걸까?’ 하고 또 공상을 펼쳤다 접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 아직 민트색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넌 무슨 색이니?” 하고 묻는다면 긴 고민 없이 바로 이렇게 답할 테다.


“저는요, 아직 제가 무슨 색인지 모르지만, 민트색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 저는, 민트색 같은 것들을 찾아, 닮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12일 차 _ 색깔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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