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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24. 2021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노래

감정을 한 없이 건드리는 노래를 좋아한다. 얼굴과 윗옷의 양 어깨가 젖을 정도로 눈물을 한껏 쏟은 후에,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소리 없는 울음을 하며 힘에 부친 몸, 그렇지만 감정만은 조금 정리된 상태. 이런 상태에서 자신의 정리된 마음에 적당한 리듬을 실어 담담히 고백하는 듯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짙은, 빌리어코스티, 김창완, 토이의 음악이 그렇다. 그들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까지도 내게 전해지는 것만 같은 노래.


이런 노래를 들을 때면, 내가 꼭 누군가의 서랍에 들어있는 빛바랜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나를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회상 속에, 길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내 모습이 흐릿하게 띄워질 것만 같다. 난 이런 기분을 즐긴다. 길을 걷다가,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종종 에어팟을 끼고 이들의 음악을 크게 튼다.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즐긴다. 혼자만의 재미난 놀이다.


내가 왜 이런 놀이를 즐기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어느 누구는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봄날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걷는 듯한 분위기의 음악, 또 어느 누구는 손 발이 꽁꽁 어는 시린 겨울이 떠오르는 음악 등, 이렇게 나뿐 아니라 음악을 즐기는 모든 이들에겐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음악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이미 주인공으로 살아가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 세상 속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니까. 신기한 것은 공상하기 좋아하는 내가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내던 때엔 내 플레이리스트엔 뉴에이지 음악, 프랑스 가수의 노래, 하우스 음악만 가득 들어있었다. 가사가 없거나 가사를 내가 알아들을 수 없어 멜로디의 리듬감만 느껴지는, 내 감정을 절대 건드릴 일이 없는 음악. 그런데 매일 같이 글을 쓰며 하루에도 여러 감정을 꺼내 쓰는 지금은 하나같이 절절한 가사가 담긴 노래만 듣는다는 것.


‘노래를 통해 주인공 되기’ 놀이를 고안한 후론, “음악 취향은 어떤 건가요?”라는 누군가의 질문을 난, “당신을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음악은 무엇인가요?”로 듣는다.



P.S 추억을 떠올리는 것을 즐기는 요즘의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노래는 빌리어코스티의 ‘보통의 겨울’. 완연한 봄이 된 지금도 매일 재생한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오래 전의 아스라한 추억도 생생히 기억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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