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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23. 2021

추억에 사는 사람

매일 같이 글을 쓴다. 오늘로 23일 차다. 오늘 치 글도 어떻게든 써내기 위해 아이패드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 시점엔 22개의 글이 쌓여 있다. 22개의 글을 둘러봤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 명확한 주제도 없고. 그럼 일단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쓰자, 무작정 쓰다 보면 내 글의 결이 보이겠지. 그다음에 그 결과 어울리는 주제를 찾아보자. 그렇게 엮어보면 어찌 됐든 나도 책이라는 걸 만들 수 있을 거야’하고 생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거다. 소박하지만 내가 천천히 쌓은 22개의 글에서도 예상대로 주된 주제가 보인다. 다름 아닌 ‘추억’. 어린 시절 있었던 일,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어린 나와 어른이 된 지금의 나를 비교해본 것, 누군가와 있었던 일에서 혼자 생각한 것들. 아직 어딘가에 오픈하지 않은 글을 포함하면 많은 글의 주제가 이렇다.


연인과 손을 붙잡고 걸을 때도, 난 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뱉어냈다. 어느 날, 또 어린 나를 떠올려가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너 되게, 추억에 사는 사람이네.” 그 말을 들은 나의 얼굴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스스로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 같다 느꼈다. 내 글의 주된 주제가 과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도 그렇다.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감정을 쓰고, 그걸 계속해서 글로 적어내는 내가 별안간 부끄러워진다. 또 내가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옛날을 떠올리는 걸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 맞아, 나 옛날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지. 그때 아마 시 같은 걸 썼던 것 같아’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3년째 줄기차게 사용하는 메모 앱, 심플노트를 열었다. 앱 상단, 돋보기가 그려진 텍스트 박스에 ‘추억’이라 검색했다. 18년 어느 겨울에 써둔 시(?)가 보였다. 제목도 지었었네. 추억 82라고.


우리 모두 과거에 살며,

미래에 살 현재를 짓고 있다.


18.11.18


속생각 많은 내가 이 날은 메모장에 딱 한 줄만 써둔 것, 그것도 물음표나 말줄임표가 아닌 확실한 온점으로 글을 끝냈다는 점에서 어떤 단호함이 보였다. 그 날의 나는 많은 생각 끝에 ‘뭐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건 누구나 하잖아. 난 그걸 좀 자주 할 뿐이고, 그냥 추억이 많은 사람인가 보지’라고 생각을 정리했을 거다. 오래전 정리해둔 생각 덕분에, 오늘 내 글을 보고 잠시 부끄러웠던 마음도 정리가 된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23일 차 _ 추억에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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