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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29. 2021

배가 아파요

21살, 반려병이 생겼다

새벽에 심상치 않은 복통을 느껴 잠에서 깼다. 흉곽부터 배꼽 아래까지 볼록하게 부풀어 있었다. ‘아, 또 이러네’하고 배에 손을 올려 대충 시계방향으로 쓰다듬었다. 보통은 길어도 한 시간이면 가라앉는데,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기는커녕 배가 더 아파왔다. 퀸 사이즈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한증막 안에서도 땀을 흘리지 않는 내 몸에도 정수리부터 발가락까지 두드러기처럼 땀이 올라왔다. 땀이 빠르게 식어 오한이 들었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도 침대 밑으로 툭, 떨어 트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배가 아픈 이유는 전날 밤, 치즈가 듬뿍 들어간 피자를 먹어서였다. 위장에서 피자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뱃속에 가스가 가득 찬 탓이었다. 일부러 쌀로 만든 피자를 골랐는데 억울하네. 그렇지만 과식을 하긴 했다.


사람들은 내게 “자극적인 음식 좀 먹었다고, 과식 좀 했다고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배가 아프다고?” 하고 놀라 묻지만, 내겐 일상적인 일이다. 밀가루, 우유, 과식에 치명적인 난,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다.


처음으로 심한 복통을 느낀 건 8년 전,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난 잠도, 밥도 포기하고 공모전을 준비했다. 집에도 가지 않고 과실의 지박령을 자처했다. 자정에 가까운 밤이 되어서야 숨 돌릴 겸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 시간에 먹을 수 있는 건 편의점 음식이나 배달 안주뿐이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불닭볶음면, 매운 갈비찜 같은 맵고 짠 음식을 주식처럼 먹었다. 고등학생 때엔 아침마다 종종 배가 딱딱하게 굳어, 등교 준비를 하다 말고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입시가 끝나면서 그 원인불명의 통증은 싹 사라졌는데, 그렇다고 너무도 안심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약한 위장의 소유자였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때 난 반려인도 반려동물도 아닌 반려병을 얻었다.




불닭볶음면과 매운 갈비찜으로 기어코 고장나버린 위장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이젠 등교가 아닌 출근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더 심해졌다. 당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외근과 사무실 복귀, 마감을 날마다 반복하는 게 일상이었다. 늘 시간 단위로 일정표를 보고 다니면서도 배꼽시계까지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았다. 밥을 챙겨 먹는다 해도, 밖에서 사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 뿐이었다.


회사에서 달마다 한번 있는 팀 점심 회식을 앞두고 ‘이번 메뉴는 뭘까, 또 매드포갈릭 가려나? 거긴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없는데···.’ 하고 늘 긴장했다. 내가 회식 장소를 정하는 당번일 때엔 조금 이기심을 부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 위주로 음식점 후보를 정했지만, 그건 일 년에 한 번뿐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늘 배가 아픈 나를 위해 친구들은 먹고 싶던 곱창, 파스타, 닭발도 포기했다. 친구들이 밥을 먹다가 맥주, 막걸리를 캬~ 들이키며 목을 축일 때에도 난 그 옆에서 마른 밥알을 입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무작정 내게 배려를 하는 친구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서 난, 보고 싶은 친구들과의 약속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이직을 할 때마다, 첫 출근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하는 일 역시 회사 근방의 본죽 위치를 찾아두는 것이었다. 배가 또 언제 아파질지 모르니까.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갔다. 동네 소아과, 내시경 전문 병원, 대학병원 할 것 없이, 복통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을 때까지 이 동네 저 동네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위, 대장 내시경은 물론 복부 ct에 혈액 검사까지 했지만 특별한 병명이나 원인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일주일치 약만 처방받아서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는다고 나아지진 않았다. 3년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친절하고 열정적인 의사가 있다는 병원을 소개받았다. 집에서 40분이 걸리는 먼 거리지만, 내겐 대충 약만 쥐어주는 곳 말고, 당장 내 배를 낫게 하진 못하더라도 내 통증에 대해 잘 이해하고, 실낱같은 해결 방법이라도 함께 찾아줄 의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었다.



“요즘은 좀 어때요? 지난번에 처방받은 약 먹고선 괜찮아졌어요?”


“네, 괜찮았는데·· 좀 괜찮은 것 같아서 어제 치킨을 몇 조각 먹었는데, 그다음부터 통증이 심해졌어요. 복부 팽만감이 심해서 등까지 너무 아파요. 치킨 먹기 전엔 정상이었는데···.”


“치킨 먹어서 배가 아프다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치킨 좀 먹었다고 해서 이 정도로 배가 아프진 않아요.”


“선생님, 전 그럼 왜 아픈 건가요?”


“체질이에요. 위장 자체가 약한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10 정도에서 고통을 느낀다면,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들은 3,4 정도만 돼도 고통을 느끼는 거예요. 장기가 예민한 거죠. 일단 약을 바꿔볼게요. 위장약도 오래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서, 본인한테 잘 맞는 약을 찾고, 천천히 약을 줄여가야 해요. 어떤 분은 약 먹고 나아져서 반년 동안 병원에 안 오다가, 다시 아파져서 약 받으러 오거나 완전히 나아져서 안 오는 분도 있어요. 잠은 좀 자요?”


“제가 잠을 잘 못 자요.”


“아이고, 잠을 좀 잘 자야 장도 나아질 텐데.”


“··· “

 


벌써 그와 4년 동안 30번은 넘게 만나며 이런 대화들을 했다. 성격도 예민한데 장기들까지 예민하다니 정말 울화가 치밀었다. 내 통증의 원인은 역류성 식도염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 했다. 명확한 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통증이 지속되는 증상의 병명엔 ‘증후군’이 붙는다고 한다. 고로 난 아프지 않아도 되는데 아픈 상황.


내가 허락도 안 했는데 어느덧 8년째 내 몸에 빌붙어 사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이제는 쫓아내고 싶다. 내 일상을 갉아먹는 기생충 같은 놈···. 퇴사와 동시에 시간적 여유가 생긴 요즘은 기생충 퇴치 작업에 한창이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내게 좋다는 식재료 위주로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다. 가능하면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물은 하루에 최소 1.5L를 마시려 노력한다. 이젠 반려병을 내 삶에서 성공적으로 떼어내기 위해 반려병 퇴치 작업에 대해 기록도 함께 해보려 한다.



P.S 위장은 한 번 병이 들고 나면 이전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 힘들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부디 조심 또 조심하여 먹는 행복을 평생 즐기길 바라며, 한탄 99%의 글을 마친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29일 차 _ 배가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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