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픔 수치 기록부터 포드맵 공부까지
"보통 사람들은 10 정도에서 고통을 느낀다면,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들은 3,4 정도만 돼도 고통을 느끼는 거예요."
어느 날 또 배가 아파 병원에 갔고, 통증의 원인을 몰라 답답해하는 내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난 통증 범위 3,4 이하의 음식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대충 안다고 해도··· 그걸 따르고 싶진 않았다. 맨날 닭가슴살에 양배추만 먹고살 순 없으니까. 그래서 매일 같이 음식을 먹고서, 위장의 신호를 기다렸다. 배아픔 수치 10점 만점에 10점이면 곧바로 병원행이라는 기준 하에, 무언가를 먹고서 배가 아플 때마다 나름의 점수를 매겼다. 우유는 배아픔 수치 7, 요거트 8, 크림이 들어간 양식 요리 10, 중국집 일반 탕수육 8, 찹쌀 탕수육 7, 고추기름으로 조리한 사천 탕수육이나 깐풍기 10.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음식’이라는데, 내게 밥을 먹는 행위란 마치 임상실험과도 같았다.
잠을 잘 못 자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엄마표 슴슴한 된장찌개만 먹어도 배아픔 수치가 7에 달했다. 그럴 때마다 뱃속의 장기들을 차례로 꺼내어 앉혀놓고 사정하고 싶었다. ‘장기들아, 난 비록 입이 짧지만 식탐은 많은 사람이야. 나도 남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맛있는 음식으로 느낄 수 있는 그 소소한 행복을 더 이상 뺏어가지 말아 줘, 제발. 너네도 힘들지 않니?’
배아픔 수치를 기록하고, 몸 컨디션에 따라 음식을 가려먹는다고 해서 아픈 배가 나아지진 않았다. 짜고 맵고 튀기거나, 우유가 들어간 음식만 안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통증이 자라지만 않을 뿐, 회복되진 않았다. 이젠 배가 아프지 않은 느낌이 어떤 건지조차 까먹었다. 평생 그런 음식을 안 먹고 살 수도 없었다. 식사에 많은 제약이 있으면 데이트, 직장 생활에도 어려움이 있고, 무엇보다 배가 아프기 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튀김 요리와 요거트, 우유였으니까···.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직접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다. 식단을 조절하기에 정말 좋은 기회였다. 유튜브로 <서정아의 건강밥상> 같은 건강식단 요리 채널을 보며 공부했다. 위, 대장병 환자도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많았다. 하지만 요리 초보인 나는 정작 레시피대로 따라 해도, 같은 비주얼과 맛이 나오진 않았다. 그래서 금방 때려치웠다.
애초에 역류성 식도염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동시에 갖고 있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도 많지 않다. 식초가 들어간 음식이나 신 과일을 먹으면 위산이 많이 분비되어 속이 쓰리고, 바나나나 유제품을 먹으면 장에 가스가 차 배가 부글부글거린다. 위엔 좋은데 대장엔 안 좋은 식재료도 있다. 내가 해야 할 건, 레시피 공부가 아니라 식재료 공부였다.
요즘은 이렇게 내게 해가 되지 않는 식재료를 찾고, 그 식재료 위주로 어떻게든 혼자 요리를 해 먹는다. 간을 아예 하지 않거나 극소량으로 하기 때문에 이맛도 저맛도 아닌 극강의 슴슴한 맛이 대부분이지만, 아무렴 내가 '맛'을 즐기며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맛있게 느껴진다. 언젠가 내게도 음식이 더 이상 임상실험의 대상이 아니라,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겠지?
P.S 내게 좋다는 식재료들로만 만든 요리 세 가지를 소개한다. 양념은 들기름, 올리브 오일 외엔 거의 하지 않고, 양념이 필요한 음식도 아주 슴슴한 맛으로 양념한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재료로 간도 약하게 요리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에서 비슷한 맛이 나기도 한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32일 차 _ 내게 밥을 먹는 일은 마치 임상실험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