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기 전, 금요일 낮의 행궁동 어느 카페_
“청포도 티는 티백만 들어가는 건가요? 그럼 청포도 티 아이스, 얼음은 아주 조금이요.”
날이 더워서 뜨거운 건 마시기 싫고, 그렇다고 얼음이 가득 담긴 찬 걸 마시면 바로 목감기에 걸려버리는 나약한 육신 때문에 찬 음료도 피하는 나는 종종 이렇게 카페 사장님들을 당황시키곤 한다. 살짝 JINSANG 이다.
나의 이상한 주문을 들은 보통의 사장님은 "예? 차를 우선 뜨거운 물에 우려야해서 오히려 너무 미지근할 수 있어요" 혹은 "그럼 음료 양이 줄어드는데 괜찮으신가요?"라 묻는다. 아무렴 다 괜찮다. 오히려 주문을 하곤 사장님의 반응을 살피며 긴장한다. 역시 나의 이상한 주문을 듣던 사장님은 "네~ 얼음 조금이요~" 하고 차분히 답했다.
‘청포도 티 아이스, 얼음 조금’은 기다란 아이스 잔이 아닌 내열유리 찻잔에 담겨 나왔다. 작은 얼음 두 개가 동동 띄어져 있었다. ‘딱 좋다.’ 생각했다. 사장님은 차를 내어줄 잔을 고르고 차를 우리고 얼음을 집으며 ‘청포도 티 아이스, 얼음 조금’을 내내 되뇌었을까? 뜨거운 물에 차를 우리고 부러 시간을 들여 조금 식힌 후에 얼음 두 개를 넣었을까? 특유의 덤덤하고 차분한 배려가 느껴졌다.
차는 상온에 둔 생수처럼 단숨에 마시기 아주 편한 온도였고, 새로 산 신발은 아직 발에 길들여지지 않아 새끼발가락과 발뒤꿈치를 괴롭혔다.
그렇게 난 미지근한 차의 맛과 욱신거리는 발을 느끼며 카페 안 사람들의 말소리, 카페에서 틀어 놓은 음악, 늦은 오후에서 저녁이 되어가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창밖의 풍경 같은 것들을 즐겼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27일 차 _ 청포도 티 아이스, 얼음은 아주 조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