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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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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영 Mar 26. 2021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벚꽃잎이 흩날리는 어느 봄,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날처럼 손을 붙잡고 호수 공원을 걸었다. 호숫가 둑방길엔 벚꽃나무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바람이 엉덩이를 밀어주어 마침내 나뭇가지에서 툭, 하고 탈출한 벚꽃잎은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공기 속을 유영했다. 그렇게 이리로 저리로 나리며 우리를 스치다 이내 바닥에, 호수 위에 살포시 앉았다.


“그거 알아?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그가 말했다.


난 그의 손안에 포개어져 있던 내 왼손을 그에게서 재빨리 빼내었다. 벚꽃잎을 잡으려 양손으로 허공을 훑었다. 1초에 열여섯 번씩 방향을 바꿔가며 날리는 벚꽃잎을 맨손으로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앗 잡았다, 에이씨 아니네. 아이씨, 를 반복하며 여전히 허공에다 양손을 대고 흔드는 내게 그가 손을 뻗었다.


“잡았다! 손 줘봐”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주먹과 내 손바닥이 아주 신속하고 은밀하게 포개어졌다.


나는 꽃잎이 내 손 밖으로 날아가버릴세라 얼른 동그랗게 주먹을 쥐었다. 내 손 안의 무언가에게선 1g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레 손바닥을 펼치니 내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연분홍빛 벚꽃잎 하나가 바람에 들썩들썩 가볍게 흔들리며 내 손을 간지럽혔다. 벚꽃잎은 곧 나를 떠나 저 앞으로 멀어져 갔다. 또다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어딘가로 차분히 흘러가는 꽃잎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어떤 것을 빌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손을 떠난 벚꽃잎을 보며 즐거워하는 날 보고 웃던 그의 얼굴만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벚꽃잎을 그보다 먼저 손에 쥐었다면, 난 그에게 양보하지 않았을 텐데. 그가 내게 양보한 마음 덕분에, 내겐 벚꽃이 흩날리는 봄의 시작에서, 떠올려보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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