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엄마 안에서 피어날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엄마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TV를 틀어 놓았다. 별안간 TV에서 흘러나온 노랫말이 나를 세게 건드렸다. 눈물이 툭, 하고 터졌다. 맑은 눈물이 얼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러다 입가에 고였다. 밥알과 눈물을 같이 씹어 삼켰다.
날 울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수 김진호였다. 수요일 밤이었고, 마침 유퀴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 게스트였다. SG 워너비 당시 소몰이 창법으로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뱉어내던 그는 어느덧 일상의 단편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있었다. 이전과는 창법도, 추구하는 음악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나를 건드린 그 노래가 배경 음악으로 조금 흘러나오고, 이어서 그는 곡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를 만들게 된 배경을 이야기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맥주를 한잔하는데, 어느 친구가 "우리 엄마 프로필 사진 꽃밭이다."라고 말했어요. 다른 친구들도 모두 "어? 우리 엄마도 꽃밭이야." "야 다 꽃밭이네?" 한 적이 있어요. 전 어머님들이 꽃밭에서 사진 찍는 이유가, 꽃이 피고, 벌들이 찾아오고, 그 안에서 자기가 사랑했던 과거들이 다시 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들. 이런 것 때문에 꽃밭에서 많이 사진을 찍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걸 듣는 나는 코가 또 따끔거렸다. 얼굴을 타고 천천히 흐른 눈물이 이번엔 턱에 모였다가 바지춤으로 툭툭, 떨어졌다. 다시 피어나고 싶은 마음, 청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우리 엄마에게도 분명 있을 것을 생각하니, 엄마의 청춘을 양분으로 먹고 자란 나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래서 눈물이 났나 보다. TV에서 시선을 떼어 바로 옆의 엄마를 봤다.
“엄마, 너무 슬프다..”
“어머? 얘~ 너 되게 진지하게 받아들였나 보다~”
축축한 눈가를 양손으로 연신 닦아내는 나와 달리 엄마는 또렷한 눈으로 TV를 응시하며 밥을 먹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보는 엄마의 눈엔 물음표가 띄어졌다.
중년의 엄마를 둔 자식의 시선에서 쓴 곡이어서 내 감정만 툭, 건드린 건가? 엄마도 나와 같이 코가 따끔거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너무도 건조한 표정과 눈을 보곤 좀 당황스러워 눈물이 살짝 들어갔다.
카톡을 열어 엄마 프로필을 봤다. 엄마 사진엔 언제나 우리가 있다. 엄마가 조금 우울했던 어느 날, 동생이 엄마에게 기분 풀라며 선물했던 꽃, 2년 전 흑백 사진관에서 언니와 남동생과 친한 척 팔짱을 끼고 찍은 삼 남매 사진, 어린 나와 언니가 쌍둥이처럼 똑같은 멜빵바지를 입은 채 꼭 껴안고 있는 모습 같은 것. 엄마에겐 우리가 꽃밭인 건가?
글을 쓰는 지금도 코가 자꾸만 따끔거린다. 요즘 난 어디선가 ‘엄마’라는 말이 들리면 별안간 뭉클해진다. 내방 문만 열고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엄마인데도···. 부모와의 시간이 무한할 것이라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을 벗어난 이제는 그들과의 시간이 언젠간 끝나버리고야 말 거라는 사실을 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나 보다. 그래서 이 시간이 한없이 아쉬운가 보다.
소중한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요즘은 엄마, 아빠와 관련된 기억이 떠오를 때면 일단 글로 꺼내어본다. 그럴 때마다 키보드에 종종 눈물을 떨군다. 그럼 눈물을 잘 정리한 후에, 방문을 열고 나가 TV를 보고 있는 엄마의 옆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인기척을 느낀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엄마의 눈엔 또 물음표가 띄어진다.
“왜?”
“아니야~”
“?”
엄마는 아마 ‘얘가 무슨 고민이 있나? 어디 아픈가? 나한테 뭐 부탁할 게 있나? 돈 부족한가?’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의 꽃밭인 우리는, 앞으로 더 생기 있고 아름답게 피어서 좋은 벌들을 만나면서 또다시 피어나겠지. 우리가 어디에서 피어나도 우린 늘 엄마 안에 있는 것이다. 난 언제까지나 엄마의 꽃밭 안이고 싶다.
|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30일 차 _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