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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Apr 30. 2022

코로나 체험기

약으로 버틴다

이상했다. 목이 간질간질하고 잔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환절기 목감기와는 증상도 기분도 달랐다. 2년간의 거센 코로나 폭풍이 끝날 무렵이었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지침도 점차 완화되던 4 말이었다. 요리조리  피해다녔다고 생각했던 코로나19로부터 마지막 공격을 받았다.


사무실에서 급하게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해보니 두 줄이 확연했고, 인근 병원에서 다시 한번 검사했지만 역시나 양성 확진이었다. 어디서 걸렸는지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약국에서 약을 잔뜩 받아들고 집으로 향했다. 연가 다녀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강제 휴가를 가게 생겼으니 회사에 눈치가 보였지만 그 역시 나중 문제다. 저녁에 차 한잔 하자는 지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차를 몰고 집으로 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서 대중교통을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확진 판정을 받고 나니 몸이 더 아픈 것 같았다.


침대가 있는 작은 방에 또아리를 틀고 누웠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이미 3~4주 전에 한 차례 앓고 지나간 후라 그다지 경계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생활은 따로 하기로 했다. 슬슬 몸에서 열도 나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기침약, 콧물약에 면역력에 좋다는 홍삼까지 그야말로 약을 때려넣었더니 통증은 좀 사그러드는데 잠이 몰려왔다.


하루가 지나니 증상이 살짝 달라졌다. 몸살 기운은 좀 덜해졌는데 가래가 생겼다. 달리 방도가 없으니 또 약국에서 준 약을 때려넣었다. 이렇게 표현하는건 약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별도로 준비한 종합감기약을 함께 먹었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에 대해서 하도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증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약을 많이 먹으면 위가 아프다고 하던데, 다행이 그런 증상은 없었다. 약의 힘으로 버텨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가만히 누워 시간을 보내면 지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코로나는 성벽을 침공하는 병사들처럼 내 몸 이곳저곳을 들쑤셨고 나는 그때마다 방어에 들어가야 했다. 흡사 전투를 치르는 기분으로 5일을 보냈다. 이제 격리는 이틀 남았다. 그러는 중에 실외마스크 의무도 해제되어 5월 첫 근무일에 노마스크로 출근해도 된다고 한다. 이제 진짜 끝인가보다. 


돌이켜보니 상상도 못했던 국가적 재난에도 잘 살아남았다는 자기 위안의 마음이 든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와중에 큰 탈 없이 비켜갔고, 정부가 하지 말라는 일은 안 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살았으니 크게 아쉬움도 없다. 흔히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새로운 일상을 다시 맞이하는 것 뿐이라 달라질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살았듯이 앞으로도 열심히 살면 그만인 것을.


코로나19 방역정책의 막바지에 겪게 된 격리는 지난 2년 여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의미가 있었다. 옷에 붙어있는 마지막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 착장하는 기분도  든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어떤 일이 펼쳐질 지는 모르겠고 몸은 괜시리 으슬으슬 한데도 왠지 모를 설렘과 기대감에 사로잡히고 있다. 


이제,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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