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차역에서 지인을 만났다. 5~6년 전에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상사다. 공무원 세계가 좁아 건너건너 내 소식은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안부를 물어보는 인사와 눈빛에 처연함이 가득하다.
”어디, 옮기셨어요?
“아뇨, 그냥 쉬고 있어요.“
“……”
“연락 드릴게요. 밥 한번 사주세요”
“네, 그러시죠”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공유되는 화제가 없는데다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라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좋은 사무실과 적당한 노동, 알맞은 급여를 내게 제공했던 기관이라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기관이지만, 자발적 퇴직자를 위해 더 해줄 수 있는 덕담은 없다.
처음하는 일도 아닌데 퇴사 후 백수 생활은 어쨌든 쉽지 않다. 결심이나 실행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상황이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일단 한 달에 한번씩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들어오던 급여가 사라진다. 게다가 누구를 만났을때 그럴듯하게 내놓을 명함도 없다. 공무원 명함은 나를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게 만들어 알게 모르게 힘이 된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받치고 있던 가장 큰 기둥뿌리가 하나 사리지게 되니까 힘들어지는건 너무도 당연하다.
좋은 점도 없지 않다. 가장 마지막에 다니다가 그만둔 지자체는 업무량에 비해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외하면 여러 모로 힘든 직장이었다. 보람없는 노동, 보이지 않는 비전, 연못에 갇힌 붕어 신세가 연상될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 게다가 사실상 정무직인 자리라 그런지 사내 정치에도 많은 신경을 쏟아야 했다. 힘들다기 보다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 곳을 그만두고 나서는 ‘나’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건 좋은 일이다. 대학교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들과 시간을 조금 더 많이 보낼 수 있는 것도 내게는 다행이었다. 애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남을 위한 글은 더 안써도 된다는 것이다. 보고용으로 써야 하는 글을 쓰지 않아도 되고, 과시욕으로 하는 SNS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오롯하게 ‘나’와 나의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는 지금이 좋다.
그러고보니 평생을 글쓰고 말하는 일을 하며 살았는데 내 글과 내 말이 없다는 서글픈 현재를 마주하게 됐다. 자발적 혹은 등떠밀린 퇴사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시간을 50살 전에 갖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소설가 김 훈 선생의 책 ‘연필로 쓰기’의 서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의 글이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이 짧은 문구에 글쟁이로 살아야 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 반성한다. 나는 내 글로 무언가를 도모하거나 출세를 꿈꾸거나 누군가의 긍정을 기대하지 않았던가. 월급도 명함도 없는 현재의 내게, 글은 그저 글일 뿐이다. 그러니 더욱 자유로워져도 괜찮다.
아침 외출 길에 지인과의 짦은 만남이 내게 이렇게 큰 통찰을 주었다. 나는 현재 월급도 명함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자유롭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