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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 욱 Jun 10. 2021

능력주의

능력주의적 신념은, 사람들이 각자에 재능의 크기만큼 시장에서 뭔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잘 난 사람은 많이 벌고, 못 난 사람은 조금 버는게 당연하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런 능력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와 협력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재능이 많아 성공한 사람들이 왜 덜 성공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뭔가를 제공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개인이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자수성가적 혹은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데 있다. 사회가 개인의 재능에게 준 보상은 오직 능력에 대한 것 뿐이 아니라 행운의 덕이 크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겸손이 필요하다. 겸손함을 갖추고 있다면 사회구성원을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지상주의로부터 한 발 떨어질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은 필요하다. 경쟁의 결과를 누리거나 승복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 할 지라도 행운의 작용에 대한 겸손함을 잃어서는 안된다.


우리사회의 곳곳에 단 한번의 경쟁과 승리로 평생을 누리는 분야가 있다. 대표적으로 공직사회가 그렇다. 젊었을 때 시험 한번 잘 보고 나면 그 다음에 자신이 누리는 혜택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것이므로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이 어떤가. 관료조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무능력하고 이기적이라고 인식된다. 행운에 대한 겸손과 능력의 개발이 부족한 건 아닌가 성찰해야 한다.


이준석의 능력주의는 비판의 지점도 있지만 일견 타당하기도 하다. 능력없는 사람과의 연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개발에 게으른 사람들의 도태를 주장하는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일반적으로 능력주의자는 자신이 개천에서 나온 용이라고 생각하면서, 용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경쟁을 조장하고 좌절을 안긴다. 자신이 용이  때까지 얼마나 많은 행운이 작용했는지 이미 망각했다.


자,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얼만큼의 행운이 결합한 존재인가. 나는 그 행운들에게 대한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부당한 능력주의와 착한 능력주의를 가려낼 수 있는 그 능력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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