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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협상 타결, '선방'인가 '양보'인가

15% 관세율과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의 명암

by 동 욱

예상보다 이른 협상 타결, 그 의미는?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빠르게 결론이 났다. 결과 또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존 25%에서 15%로 인하된 관세율은 일본, 유럽과 동일한 수준이다. 한국이 별도의 페널티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 협상 결과를 단순히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한국이 미국에 투자를 약속한 3,500억 달러는 한화로 약 470조원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1년 예산의 70% 가량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여기에 농산물 시장 개방, 에너지 수입 확대 등 대가도 치러야 한다. 이번 협상은 한국에게 득이 될까, 실이 될까?


15% 관세율, 적정선인가 과도한가


관세율 15%라는 숫자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다. 애초 트럼프가 협박 카드로 제시했던 25%에 비해서는 낮아졌고 초기 거론되던 45%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일본과 유럽이 동일하게 15%를 적용받는다는 점에서 한국만 차별받지 않았다는 의미가 크다.적어도 일본, 유럽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는 있게 됐다.


문제는 이 15%가 한국 제조업에 미칠 실질적 영향이다. 한국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7~8% 수준으로 보면 15%의 관세는 이 두 배에 해당한다. 결국 미국의 수입업체와 한국의 수출기업이 이 비용을 나눠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1기 때의 경험을 보면 대부분 한국 기업이 마진을 깎아서라도 기존 가격을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수출 기업의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 부담이 고스란히 중소·중견기업에게 전가될 가능성이다. 대기업들이 15% 관세 부담을 감내하기 위해 협력업체들에게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예상된다. 이미 어려운 상황에 놓인 중소기업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될 수 있다.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의 양면성


이번 협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이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는 한국의 조선업 경쟁력을 활용한 전략적 선택으로 봐도 좋겠다. 한-미 양국 모두에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투자 규모 자체는 부담스럽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2~3배 정도 큰 일본이 5,50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으니,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투자 규모가 과도해 보일 수도 있다. 더욱이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이미 상당한 규모의 미국 투자를 단행한 상황에서 또다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것은 국내 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해외 투자 확대가 한국 경제 구조에 미칠 장기적 영향이다. 대기업들이 해외 법인을 통해 생산한 제품의 수익은 현지에 유보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기업 중 의미 있는 수준의 해외 법인을 운영하는 곳이 약 330개에 달한다.


이들 법인에서 발생한 수익이 모두 국내로 유입된다면 환율과 경제성장에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대부분 현지 재투자나 글로벌 경영 전략 차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내로 유입되는 외화가 제한적인 이유다.


이는 일본이 1980년대 엔고 대응책으로 해외 생산기지를 대거 구축한 후 겪었던 '공동화 현상'과 유사한 패턴이다. 기업은 성장하지만 국내 고용과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우려된다.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는 트럼프와 한국 정부 간 해석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서 "완전 개방했다"고 발표했지만,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추가 개방은 없다"고 설명했다. 두 협상 파트너가 결과를 놓고 전혀 다른 워딩으로 발표를 했다.


실제로는 이미 한국이 미국산 농산물의 최대 수입국 중 하나라는 점에서, 기존 관세 장벽 제거가 실질적인 추가 유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우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계속 한우를 구매할 것이고,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자는 이미 수입 쇠고기를 구매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농산물에 있어서 국내산과 미국산의 시장이 명확하게 양분되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의 '완전 개방'도 한국 정부의 '추가개방은 없다'도 맞는 말이다.


1,000억 달러 규모의 LNG 등 에너지 제품 수입 확대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조건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어차피 필요한 에너지를 미국에서 구매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특히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에 여러 국가가 참여하기로 하면서, 실제 생산 가능성도 높아졌다. 트럼프의 '봉이 김선달' 식 판매 전략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윈-윈할 수 있는 조건으로 평가된다.


한국 조선업은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LNG선 건조는 물론 대형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에서 중국과 일본을 압도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한국의 기술과 투자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한국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조선업의 경우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정밀한 협업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라는 점에서, 미국이나 다른 국가가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영역이다. LNG선과 선박용 엔진 등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기업 간 협력체계 재구축 필요


향후 과제는 이러한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과거 한국이 WTO 체제 출범 당시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지원했던 것처럼, 새로운 통상 환경에 맞는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경유착에 대한 우려로 소원해진 정부-기업 관계를 국익 차원에서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에 노출되지 않는 전략적 소통을 통해 실질적인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한미 관세협상 결과는 '선방했다'는 평가가 적절해 보인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고, 한국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 기회를 확보했다.


하지만 3,500억 달러라는 막대한 투자 약속과 해외 투자 확대로 인한 구조적 변화는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과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부담 전가를 막고, 해외 진출이 국내 경제 공동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번 협상을 계기로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선업과 반도체, 원전 등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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