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언론중재법, 범람하는 혐오에 붙여…
방역당국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내 나이가 신청할 수 있는 날 몰리는 시간을 피해 신청했고 시간이 흘러 지난주에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신청할 때도, 중간에 리마인드 메시지를 받을 때도, 아파서 찾았을 때보다 더 친절해진 접종병원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 엄혹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뒤에서 애써주고 있음을 깊이 느꼈다. 그리고 백신을 맞고 나오다가 비록 1차 접종이고 수많은 변이들의 위협이 존재함에도 뭔가 모두 함께 가는 안심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작은 주사기 안 몇 방울의 액체에 위안받을 수 있는 건 개발에 땀 흘린 전문가들 이외에 본인의 몸을 대상으로 위험을 감수한 수많은 사람들의 선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어릴 때 부모님이 밥알 흘리지 말라고 하면서 농부들의 땀과 정성 어쩌고 하던 말이, 가난이 몸에 밴 구시대의 고리타분한 훈계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나이를 먹어서인가…
결국 혼자서는 아무런 일상도 영위할 수 없음을 알고 인정하는 것에서 사회를 유지하는 신뢰와 연결성의 확보가 시작되는 것이리라. 모두는 서로 얽히고 얽힌 협력적이고 보조적이며 보완적인 관계라는 깨달음이, 이런 위기 속에 역설적으로 얻게되는 긍정적인 효과다. 내가 금전적인 목적 이외에도 내 일을 지속해가는 이유와 의미가 있듯이 모든 이들도 단지 생계를 위해서만 자신의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것. 또 감사하게도 인류의 역사 위에서 후세에게 삶의 모델이 되고 맨땅에 헤딩하지 않고 길을 갈 수 있도록 험난한 첫 도전의 발자국을 내준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또 다른 깨달음은, 사람들을 집단으로 볼 때 느껴지는 부정적인 면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주할 때는 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라가, 세상이, 회사가, 한국인들은, 요즘 애들은, 나이 먹은 것들은… 등으로 시작되는 말들에 부정적인 서술이 쉽게 따라 붙지만, 그 집단 속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가까이 만나게 되면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 집단은 대체 무엇의 집합체인가? 상대적으로 ‘나는 좀 달라.’라는 말을 하고 싶어 만들어내는 실체가 불분명한 허상은 아닌가? 수많은 의사 표현의 장이 펼쳐져 원활한 소통시대를 열었으나 서로 나뉘어 퍼부어대는 혐오가 넘쳐난다. 반복적으로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배설의 즐거움으로 자기 존재감을 성취하는 이들과 그들에게 공감하며 사악한 간신(보기에 따라 ‘신실한 충신’)처럼 재잘대는 이들조차도 마주 앉은 술자리에선 세상사를 걱정하고 삶에 진심인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더라.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소중한 역사와 이야기가 있고 그 바탕엔 반짝이는 빛이 있다고 믿는다.
“삶이 이야기가 됩니다… 수많은 목소리와 메시지의 혼돈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해주는 휴먼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세상과 세상일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이야기, 우리가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들려주는 이야기, 우리가 서로 연결된 실타래처럼 엮여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그러한 휴먼스토리입니다… 인간은 늘 성장하는 여정에 있기에 이야기꾼입니다. 인간은 일상의 삶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풍요로워집니다… 저마다 놀라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0년 홍보주일 담화 중]
‘호명(呼名)’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와서 꽃이 되듯, 모든 이에게 있는 놀라운 이야기를 불러내고 들어줄 때 꽃이, 빛이, 놀라운 휴먼스토리가 되리라.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을 뿐…”
영화 [신과 함께 2] 성주신(마동석 분) 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