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lon easy Oct 14. 2021

겨우 이천 년 전

Jerusalem_Ein Karem_Tel Aviv_Israel_2010

성지 순례는 아주 오래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끼게 만든다. 어릴 때부터 반신반의하며 들었던 이야기와 전승의 현장을 직접 만나고 만져보다 보면 그것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님을, 현실처럼 나에게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그 당시로부터 많은 이들의 겹쳐진 시간들이 쌓여 지금까지 이어져온 흔적들은, 어느 순간 모두가 짜고 녹화 세트를 만들 듯 구성한 게 아니라면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 자취를 보존하기 위해 이천 년을 버티고 싸워온 사람들의 존재 또한 그 신빙성을 더한다. 그렇게 만나는 현존에 대한 믿음과 현장감은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를 깊이 이해하게 한다.


구시가에서 바라본 황금돔과 올리브산

올리브산


올리브산은 예루살렘의 동쪽에 위치한 동산이다. 예루살렘 구시가 안쪽보다 올리브산에 예수의 자취들이 많이 있다. 당시 갈릴레아 지방에 살던 그가 예루살렘을 들어오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했고 사람들을 피해 기도하기 위해서 이곳에 자주 머물곤 했기 때문이다.

올리브산 하단엔 유다인들의 공동묘지가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다.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메시아를 기다려온 이들은 구원의 날 메시아와 함께 가장 먼저 일어나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예루살렘의 동쪽 산기슭에 묻히고자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최고의 명당자리이고 석관묘 하나에 우리 돈으로 3,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유일신 신앙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태양과 개념이 연결돼왔기에 해가 뜨는 동쪽이 메시아의 등장 루트로 여겨졌으리라. 지리적 위치 때문에 올리브산을 넘어 예루살렘에 들어와야 했던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메시아로 여겨지는 예수 또한 공교롭게 이 올리브산을 통해 등장하곤 했다.

올리브산 자락에 조성된 유다인 공동묘지

올리브산 가장 밑 자락에 '겟세마니 대성당(주님 고뇌 성당, 만국 성당)'이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당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곳이다. 예수가 바위에 기대어 고뇌하고 기도했던 곳에 세워진 성당이다. '만국 성당', '모든 민족들의 성당'이라는 별칭은 이곳이 전 세계인들의 모금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곳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예수의 고뇌를 기억하기엔 너무 화려한 모습에 압도당하며, 지금 우리도 곳곳에서 그 깊은 의미와 정신보다는 화려한 경배와 치장에 집중해서 정작 바라봐야할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괜시리, 삐딱하게 하기도 했다.

겟세마니 대성당. 예수가 괴로움에 쌓여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바위가 제대 앞에 있다.
겟세마니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순례자 미사

최후의 만찬 후 본인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만감이 교차했을 예수. 성경에 '내가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제자들과 겟세마니에 와서 고뇌 속에 기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장시간의 만찬과 스승의 우울함, 답답한 미래에 대한 걱정 등으로 피곤해서였을까... 예수에게서 조금 떨어져 나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곳에 '겟세마니 동굴 성당'이 있다. 제대 밑에서 두 제자가 아직도 턱을 괴고 자고 있다. 세상의 불의와 억압, 죽음의 문화 앞에서 항상 깨어있어라...라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이야기할 때 자주 굴욕적으로(그래도 제자인데...) 인용되는 장면이다.

겟세마니 동굴 성당

산비탈을 오르다 숨이 턱에 찰 즈음 '주님의 기도 성당'을 만난다. 오래된 수도원풍 건물에 아름다운 정원이 무척 인상적인 곳이다. 정원의 벤치는 산행에 지친 순례객에게 한동안 앉아 쉬도록 유혹한다. 아마 그렇게 쉬듯 머물며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는 뜻인가 보다. 못 외우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담장 벽엔 전 세계 언어로 된 주님의 기도문이 쓰여있다.

주님의 기도 성당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당들 중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 '주님 눈물 성당'이다. 올리브산 중턱에 위치해있다. 눈물을 의미하는 물방울을 형상화한 성당 건물도 인상적이고 제대 뒤편에 예루살렘 전경을 담은 반원형 창이 뭐라 형언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준다. 외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예루살렘과 너무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아마 당시 예수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끼게 해주는 장치이리라. 장차 자신들에게 닥칠 불행을 알지 못한 채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인간들에게 예수가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린 사건은 현재도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주님 눈물 성당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프레임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체험 공간 같은 곳이다.

주님 눈물 성당과 제대 뒤 창을 통해 바라본 예루살렘

엔 케렘(Ein Kerem)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8km 정도 떨어진 곳에 낭만적인 시골 마을 '엔 케렘'이 있다. 히브리어로 '포도원의 샘'을 뜻하는 이곳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지고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찾아 예수 잉태와 출산에 대한 상담을 하기 위해 방문했던 곳이다. 자신에게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득 안고 나자렛에서 사막과 산길을 거쳐 130여 km를 달려온 마리아에게 사촌언니 엘리사벳보다 먼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을 것 같은 엔 케렘의 소담스러운 풍경이 여행자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엔 케렘 전경(출처 Google)
세례자 요한 탄생기념 성당
마리아 엘리사벳 방문기념 성당

엔 케렘 외곽 절벽 비탈에 지어진 '세례자 요한의 광야 수도원'을 찾았다. 예수의 존재를 알게 된 헤로데가 맏아들들을 모두 죽이려 하자 엘리사벳이 세례자 요한을 숨긴 곳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후에 세례자 요한이 광야 생활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프란치스코회에서 수도원을 지어 기도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당시 이곳에 머물던 한국인 김상원 신부님의 초대를 받았다. 오래된 수도원 건물과 절벽에 절묘하게 마련된 공간들이 절로 기도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한 일주일쯤 이곳에 머물면 몸도 마음도 정화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치채셨는지 김신부님이 주변에서 이리와 승냥이들이 엄청 울부짖는다고 툭 던져주셨다.

세례자 요한의 광야 수도원

분리장벽


예루살렘 바로 밑쪽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있다. 이스라엘 곳곳에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지가 있는데 가자지구처럼 서로 강하게 충돌하는 곳부터 갈릴레아 인근에 서로 섞여서 사는 곳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루살렘 주변으로는 게이트를 통해 신분과 소지품 검사를 하고 드나들어야 하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분리장벽으로 나누고 게이트를 통하지 않으면 서로 오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다니는 동안 곳곳에서 분리장벽을 쌓는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고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분리를 선택한 이 사람들에게 슬픔과 안타까움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갈등하고 반목하고 혐오하고 존재의 가치를 차등하는 수많은 분리장벽을 쌓고 있잖은가. 저 장벽들이 극명하게 그것들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천 년 전의 사건이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도 올리브산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분리장벽

사해와 지중해


그렇게 일주일간의 촬영을 마친 마지막 날. 텔아비브 공항엔 저녁까지 도착하면 되는 일정이었고 2~3시간 여유가 있었다. 내내 일정에 쫓긴 우리가 불쌍했는지 가이드님이 가까운 사해에 들렀다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 맞아. 이스라엘에 사해가 있었지... 인서트용 전경이나 찍자는 생각으로 들른 사해에서 우리는 그 귀한 시간을 피부에 양보했다. 유기물이 수억 년간 켜켜이 쌓여 피부에 그만이라는 사해 바닥의 진흙을 손에 쥐어 온몸에 바른 후 햇볕에 말리고 식당에서 샤워까지 마치니 시간이 딱 맞았다. 아주 효율적으로 사해 체험을 한 뿌듯함과 뽀송한 피부의 감촉을 느끼며 텔아비브로 향했다.

사해(Dead Sea)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Tel Aviv). 공항을 가기 위해 온 곳이지만 아름다운 해변 풍경이 넋 놓고 있게 만드는 곳이었다. 공항 도착을 최대한 미루며 텔아비브와 지중해를 마음과 앵글에 담았다.

텔아비브 전경
반가웠다. 금성 맥주... LG는 알고 있는가...
지중해의 아름다운 낙조

혼돈 그 자체였던 예수의 삶.

그의 흔적을 만나는 성지가 여전히 혼돈 속에 있는 건 아직도 그 삶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리라. 성지를 만난다는 건, 지난 역사를 전시해놓은 박물관에 간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를 가깝게 느끼는 것.

예루살렘의 일주일은 이후 삶 속 실천 신앙으로서의 나의 믿음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들'의 땅에서 공존을 생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