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usalem_Israel_2010
입사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즈음, 일에 대해 삶에 대해 깊은 고민과 회의가 왔던 것 같다. 열심히는 살아가는데 무얼 해도 부유(浮遊)하는 느낌이 지속됐고, 하고 있는 일들도 그저 루틴으로 겨우 해내고 있었다. 머리도, 가슴도 텅 빈 채로 시간이 흘렀고 열정도 소명의식도 바닥으로 향해갔다. 답답한 일상에서 도망치듯 1년간 화실을 다녀보았고, 지인들의 권유로 2008년 대학원에 진학했다. 저녁과 주말에 공부에 전념하면서 다행히 새로운 목표와 나를 채워가는 재미가 생겼고 다시 진지하게 나에게 놓인 것들에 집중해야겠다는 의지가 살아났다. 지도교수님의 연구년으로 1년 연기된 논문학기만 남긴 2010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스라엘 관광청 지원 프로젝트가 나에게 배정됐고 신나게 자료를 찾고 다양한 조사를 진행한 후, 5월 이스라엘로 향했다.
지나 보면 짧았던 방황의 시간이었지만 깊은 암흑기와 같았던 그때, 흔들렸던 가치와 고민하던 삶의 모순들이 나의 신앙관에도 영향을 미쳤고, 도대체 신은 왜 이 모양인 세상을 방관하는가… 라는 회의도 있었다. 마치 그에 대한 답이라도 해줄양인 듯, 나를 신들의 땅 이스라엘에 초대했다고 생각했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그 착각을 확신했고, 모든 일정을 예루살렘으로 몰아서 짰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표 유일신 종교들의 핵심 성지인 그곳에서 갈등과 공존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관광청에서는 지금껏 예루살렘만 일주일 촬영한 팀은 없다며 의아해했고 뭐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삐딱한 시선을 보였던 것 같다. 어쩌면 판단에 백퍼 확신이 없었던 나의 자격지심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렇게 일주일 내내 예루살렘을 구시가 위주로 속속들이 만났고 떠날 즈음에 시간의 부족함을 느낄 만큼 수천 년간 켜켜이 쌓인 수많은 이야기와 영적인 집중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 기운이 순례자의 발길을 잡아끄는 힘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같은 신에 각자 다른 이름을 붙여놓고 서로 자기의 성지라며 쟁탈전을 벌여온 역사. 신은 왜 보고만 있는 걸까? 인간은 왜 신의 가르침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의지대로 반목하는가? 이 오래되고 답이 없는 질문을 간직한 채 일정을 시작했다. 서둘러 만나고 싶은 성벽 안 구시가에 들어가기 전, 현재 이스라엘인들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신시가지를 먼저 스케치를 했다.
구시가에는 유다인(유대인), 팔레스타인 사람들, 기독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신시가에는 유다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 시장은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 마하네 예후다 시장에서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라는 풍요로운 과일들과 견과류, 생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통 유다인들과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다른 모든 종교처럼 교세가 감소하는 전통 유다교를 홍보하기 위해 거리 선교를 하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과 관광객이 찾는 예술인들의 거리이자 예술학교로 유명한 베짤렐에서 활기찬 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잠깐 지금을 사는 유다인들을 만난 후 역사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구시가(Old City)는 성벽으로 빙 둘러싸여 있고 중간중간에 있는 성문으로만 진입이 가능하다. 그중 규모가 가장 큰 문중 하나인 다마스커스 게이트(Damascus Gate)를 통해 과거로 향했다.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래된 좁은 길들이 이어지고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스침으로 반질반질해진 돌길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교통편이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 다마스커스 게이트 안쪽이어서인지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점들이 빼곡하다. 대부분 아랍상인들이 다양한 상품을 진열해 놓고 팔며 온 세상 언어로 호객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거리와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의 전통 음식을 즐긴 후, 구시가의 가장 유명한 명소를 먼저 찾았다. 유다교와 이슬람교의 핵심 성지 성전산. 지금은 이슬람 사원인 바위사원(황금돔)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바로 옆 서쪽 벽면엔 ‘통곡의 벽’이 있다. 유다인들이 빼앗긴 지성소를 향해 벽에 대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곳. 이슬람 성전 밑에서 유다교인들이 모여 기도하고, 성전산이나 통곡의 벽으로 통하는 문에서 만나는 삼엄한 검문과 곳곳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총 든 군인들의 조합이 빚어내는 생경한 모습에 긴장감과 함께 호기심이 폭발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불편한 채로 살아왔을까…? 그런데 가만 보면, 긴장하는 건 관광객일 뿐 이들은 이 날카로운 긴장 속에서 일상처럼 자신들이 할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코로나19로 생각하게 되는 ‘일상의 허상’을 이때도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평화로움이 지속되는 일상이 가능하기는 한가? 불완전함 속에서 순간순간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삶이고, 일상이란 건 ‘이상(理想)’처럼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리라.
이곳뿐 아니라 예루살렘 구시가 전체가 불안한(?), 그러나 오래된 공존의 방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구시가를 십자 형태로 나누어 이슬람, 유다, 그리스도, 아르메니안 구역으로 정해놓았다. 울타리가 있는 건 아니고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자극하지 않으며 함께 살면서 각 종교의 성지를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신을 유다의 야훼, 이슬람의 알라, 그리스도교와 정교회의 하느님(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어리석은 인간들의 우스운 광경 같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온 이들과 지나온 이야기를 만나면서 신이 자신이 사랑하는 피조물 모두를 한 곳에서 공존하도록 독려하며 인류 전체에게 일상의, 아니 ‘평화’의 본질을 이해하게 하려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로 갈라선 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지 신의 뜻은 아니지 않은가…
유다교와 이슬람교가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성지로 성전산을 번갈아 소유하며 지금에 이르렀다면 그리스도교에게 예루살렘은 신의 또 다른 존재인 예수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는 생생한 현장이다.
그리스도 삶의 절정이 박제되어 있는 ‘주님 무덤 성당(성묘성당)’으로 향했다. 그리스도교에 뿌리를 둔 종파들의 가장 중요한 성지다.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무덤에 묻혔던 골고타 언덕 위에 오랜 세월 동안 중첩해서 세워진 건물이다. 이천 년 동안 이곳을 지배한 다른 종교와 이민족들의 박해를 견뎌내며 보존해서 지금에 이르렀고, 이곳 역시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들이 공존하는 규칙인 ‘Status Quo(현상유지법)’을 통해 큰 갈등 없이 전례를 거행하고 역사를 지켜내고 있다. 이슬람이 800년 동안 지배하던 시절 성당 입구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통행료를 받던 전통 때문에 지금도 성당 문지기는 아랍인이 맡고 있기도 하다. 수천 년 동안 전통을 유지하며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갈등을 조정해온 모습과 규칙은, 어리석은 갈등의 시간보다 현명한 공존의 노력이 훨씬 많았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직도 자신의 종교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신앙인들은 고요하지 않고 정신없이 혼란한 순례에 투덜대고 실망한다. 그런 어리석은 태도를 접하며 오히려 신의 존재와 뜻에 대해 더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주님 무덤 성당 안의 수많은 경당과 역사가 아로새겨진 공간들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기도하고 머물며 그리스도의 삶을 느끼고 있다. 그 마지막 코스쯤으로 여겨지는 무덤경당의 둘레엔 줄이 여러 바퀴 둘러져 무덤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좁은 공간이기에 한 명이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음 사람이 들어가는 구조여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곳까지 와서 예수의 무덤을 직접 보지 않을 수는 없으니 모두 긴 기다림을 인내하며 기다린다. 두 사람이 서면 꽉 차는 무덤에 들어가면 작은 제대에 ‘예수는 부활해서 이곳에 없다.’라고 쓰여있다. 머리 뒤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따르는 이들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신앙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이제 가서 사랑하며 살아!’
가장 절정인 곳에서 순례를 시작한 후, 시간을 거슬러 ‘그’가 살았던 현장을 더듬어 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