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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Sep 28. 2015

5만 원으로 한 달 버티기

가족에게  착취당하는 민수의 가을

하루 30,000 킬로그램의 무게를 매일마다 드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온전히 자신의 팔뚝과 허리 그리고 다리 근육만을 이용해서 그 무게를 들어 옮긴다. 30,000 킬로그램이면 18 킬로그램 짜리 원단 약 1,700 절에 해당하는 무게다. 대여섯  살짜리 어린아이 천칠백 명을 매일 들었다 놨다 하는 셈이다. 그토록 고된 노동의 대가로 자신에게 쓸 수 있는 돈이 한 달에 5만 원에 불과하다면 어떻겠는가.

남자는 우리 회사에 근무하는 제품 출고부서 직원 민수다. 나이는  서른아홉이며 미혼이다. 입사할 당시에는 장애인 등급을 받았는데 현재는 장애 등급이 없다. 지적 장애가 있다고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고 아무런 장애도 없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서 있는 친구다.

니트 원단을 제조하는 우리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민수의 손을 통해 운반용 수레에 실리고 다시 트럭에 실린다. 컨베이어와 지게차 등의 자동화 설비가 있지만 개별 제품을 모으는 일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만한다. 워낙 고되고 단순한 일의 반복인지라 어떤 신입직원도 몇 달을 못 버티고 그만두는 자리지만, 민수는 벌써 6 년째 근무 중이다. 재작년 겨울, 육중한 무게의 운반구 바퀴에 발등을 다쳐 나오지 못한 때를 제외하고는 결근한 번 없을 정도로 성실 하다.

민수의 아버지는 경남 남해에서 작은 배 한 척으로 고기를 잡는다. 민수바로 아래 남동생이 아버지의 뱃일을 돕는다. 민수의 어머니는 몇 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둘째 남동생은 작년에 필리핀 여성과 결혼식을 올리고 분가해서 살고 있다. 집안의 막내인 여동생은 채 성년이 되기 전부터 출산을 시작해서 이제 아이가 셋 딸린 미혼모다. 아이 셋은 별거 중인 아이들의 아빠와 남해의 친정부모 그리고 여동생 본인이 각각 나누어 맡아 키운다. 민수는 바로 이 여동생과 함께 기거한다.

민수가 여동생과 함께 지내는 까닭은 민수 혼자 보다는 여동생에 의지하는 편이 마음이 놓일 부모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동생으로부터다. 여동생은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데 수입이 들쭉날쭉하다. 여동생은 민수가 셈이 흐리다는 이유로 민수가 받는 월급 모두를 자신이 관리하기로 했다. 몇 년간 민수의 월급을 관리해 온 여동생은 민수의 명의로  대출받아 주택을 구매했다. 얼마 전에는 역시 민수의 명의로 중형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해서 여동생 본인이 타고 다닌다. 생활비로 사용하고 남는 민수의 월급은 여동생이 보험에 가입해 두었다는데 민수 본인은 보험계약증서를 본 적이 없으며 어떤 보험에 가입했는지도 전혀 모른다. 또 얼마간은 예금해 두었다지만 예금주인 민수 본인은 그 통장 역시 본 적이 없다.


민수가 여동생으로부터 받는 용돈은 한 달에 단돈 5만 원이 전부다. 당연히 그 돈으로는 밥을 사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른 직원에게 식권을 빌려서 식사를 하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밥을 굶은 경우도 허다했다. 보다 못한 경리팀 직원이 급여 외에 별도로 지급되는 식비를 민수의 다른 통장으로 넣어 주면서부터 민수가 끼니를 거르는 일은 줄어 들었다. 하지만 단지 식사 문제만 가까스로 해결되었을 뿐, 계절에 맞는 옷을 사 입거나 간식을 사먹거나 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졌다. 신발을 구매할만한 여력이 없는 민수는 여전히 여름에 신던 슬리퍼를 신고 있다. 무거운 짐을 옮기고 밀고 힘을 쓰기 위해서는 튼튼한 신발로 바닥을 지탱해줘야 한다. 민수가 신은 슬리퍼로는 발바닥이 미끄러져서 운동화를 신었을 때 보다 힘이 곱절로 들어간다. 민수를 내차에 태워 운동화 매장에 데려 갔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골라보라고 하니, 제대로 된 신발을 사 본 적이 없는 민수가 선뜻 고르지 못한다. 지금 신고 있는 슬리퍼는 지난 봄에 3천 원을 주고 샀다고 한다. 튼튼해 보이는 신발로 내가 대신 골라 주고 계산을 했다. 민수가 내게 고맙다는 소리를 연발한다. 현장에 돌아가서도 새 신발이 좋아 웃음을 참지 못하더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민수가 신어 본 신발 중에 가장 좋은 운동화가 아닐까.


땀 흘려 번 소득을 민수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되도록 돕고 싶지만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민수의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들로부터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 민수 자신도 스스로가 돈 관리를 잘 못해서 헤프게 써 버릴 수 있으므로, 여동생이 관리해 주는 편이 좋다고 믿고 있다. 마땅히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노총각 민수의 서늘한 가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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