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진짜 계곡 백패킹의 성지
마장터로 간다. 국립공원 설악의 북쪽 끄트머리. 인제에서 속초로 향하는 미시령의 초입. 인제군 용대리에서 고성군 도원리로 넘는 옛길이 새이령이다. 마산봉과 신선봉 사이의 샛길이라 새이령이며, 마장터는 새이령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사람과 말이 쉬어가던 마방과 주막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오늘 용대리 쪽에서 출발해 마장터에서 하룻밤을 묵고 되돌아올 예정이다.
영서의 인제에서 영동의 양양 속초 고성으로 향하는 차와 사람들은 각각 한계령이나 미시령 그리고 진부령을 통해서 넘는다. 그래서 새이령은 이제 백팩을 짊어진 트레커들만 걷는 길이다. 새로 난 길로 인해 옛길은 버려졌고 버려진 길은 백패커들에게 천혜의 루트를 제공한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차를 달려 용대삼거리의 '매바위 인공폭포' 인근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미시령 방향으로 1.5Km가량 더 가서 '박달나무쉼터'라는 식당 앞에 주차를 한다. 노부부와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가 운영하는 식당은 마장터로 향하는 백패커들의 관문 역할을 한다. 주차비를 받고 길 안내도 해 준다.
식당 앞 공터를 지나 물을 건너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하지만 아침부터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 건너기에는 위태롭다. 미시령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큰 물을 우회하는 길이 있다는 식당 주인의 정보를 듣고 그쪽으로 향한다. 박달나무쉼터는 해발 400 미터, 마장터는 해발 550 미터의 높이어서 오르는 길이 완만하다. 좁고 낮고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 걷던 길이 끊기면 계곡물을 건너야 다른 길을 만난다. 계곡물에 놓인 돌을 조심스레 밟고 건너면 물이 중등산화의 발목을 넘지 않는다. 그런 계곡물을 여러 번 넘고 건넌다. 그렇게 3Km가량 걸으면 약수터를 만나 목을 축이고 조금 더 오르면 통나무집을 지나는데 이곳이 바로 마장터다. 지도에는 한 시간 거리로 표기돼있지만 백팩을 메고 조심스레 개울을 건너다보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린다.
통나무집 전후로 텐트를 피칭하기 좋은 평평한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큰 계곡물이 합쳐지는 합수점을 지나려면 무릎까지 빠져야 물을 건널 수 있다. 여기서 대간령까지는 약 2Km 거리인데 인공 조림한 낙엽송들이 군락을 이루며 시원스레 뻗어있다. 내리는 비로 물이 불어 우당탕 흐르는 계곡 옆에 텐트를 쳤다. 나무들 사이로 비가 쉬지 않고 내린다. 숲 여기저기에 백패커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울창한 나무들로 인해 마치 은둔한 듯 서로를 볼 수 없어 아늑하다. 흐르는 물소리와 타프에 떨어지는 빗소리만 숲에 가득하다. 오래 기억될 산에서의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