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북가좌동

그때 이야기 - 1

by 물푸레

보름달이 뜬 밤 겨우 아랫목만 따뜻한 방에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누우면 코끝이 시렸다 헛기침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자 찬바람이 먼저 들어 단칸방을 채웠고 아버지 어깨에 둘러멘 봇짐이 문밖의 커다란 보름달을 가렸다 봇짐에는 아동복이 가득 들었는데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도매로 사서 어느 동네 골목골목을 돌며 팔다가 남은 옷들이었다 윗목에서 누런 봉투를 풀로 붙이던 엄마는 안쓰럽게 아버지를 맞았고 난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보름달 빵을 아동복을 팔아 조금 남긴 돈으로 사다 준 보름달 빵을 졸린 눈으로 먹었다


빵을 먹고 잠든 새벽 꿈인지 생시인지 엄마가 뺨을 때려 나를 깨우려 했지만 쥐오줌에 얼룩진 천정이 뱅그르르 돌아갈 뿐 잠이 깨지 않았다 엄마는 왼팔로 나를 안고 오른팔로 동치미 국물을 억지로 내 입에 흘려 넣었고 얼음장 같은 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는 아궁이에서 타다 만 연탄을 빼서 마당에 던져 놓았고 날이 밝으면 구들장 새는 곳을 쎄면으로 막아야겠다고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북가좌국민학교로 올라가는 길목은 진흙탕이 됐고 손이 시린 아이들의 발목은 가난처럼 흙탕물에 빠졌다 학교에서 돌아와 빈집 방문을 열면 아침에 차려 놓은 밥상에 신문지가 덮였다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 둔 미지근한 밥공기를 꺼내 멸치나 김이나 찬 김치를 씹으며 혼자 앉아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점심을 먹었다 밥상 끝에는 십 원짜리 두 개가 올려져 있었는데 밥을 먹는 내내 그걸로 라면땅을 사 먹어야 할지 달고나를 먹어야 할지 쫀득이를 먹어야 할지 몰라 언제나 고민이었다


그날 밤 찻길 건너 언덕에 있던 기타 공장에서 불이 났고 동네 사람들 틈에서 아버지와 나는 불구경을 했다 소방차는 한참이나 지난 뒤 도착했고 밤하늘을 밝히며 타는 목재의 불꽃이 따뜻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