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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Dec 24. 2015

손글씨를 잘 쓰려면

아마추어의 캘리그래피




스스로 글씨가 정갈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던 내가 캘리그래피에 대한 글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누군가 내 메모를 보고는 '글씨가 예쁘네'라고 말했고 귀가 얇은 나는 그 한 마디에 용기를 얻어 손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관심을 갖고 보니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 각종 SNS에 많은 사람들의 손글씨가 올라와 있었다. 감성을 자극하는 글귀와 내용에 어울리는 캘리그래피를 보고 나는 단박에 몰입했다. 처음엔 캘리그래피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는데 펜글씨를 예쁘게 쓰는 정도로 생각했다. 무슨 취미를 하던 장비부터 구입하는 '장비병' 환자인지라 가지 펜과 노트부터 구매했다. 그리고 남들이 써 놓은 멋진 글씨들을 무작정 따라 쓰기 시작했다.




글씨는 어느 때는 마음에 들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는데, 틈 나는 대로 펜을 이용해서 여러 노트에 글씨를 썼다. 처음엔 남의 글씨를 똑같이 베껴 쓰는 일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필압을 이용하여 획의 두께를  조정하는 일이 어려웠다. 필기구에 문제가 있나 싶어 검색을 해 보니 딥펜의 종류가 무궁무진하게 많았는데 그 역시 되는대로 사 모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필통은 각종 필기구로 넘쳐 났고 각종 잉크 류가 책상을 가득 채워졌으며 다양한 종류의 노트가 쌓여갔다.




어느 정도 글씨에 자신이 붙었을 때 카카오스토리 등 SNS에 글씨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올려 봤더니 지인들의 반응이 칭찬 일색이었다. 생일을 맞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축하 메시지를 손글씨로 써서 보내 주면 디지털 세상에 접하기 어려운 아날로그 감성에  자극받은 상대방은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감사 인사를 전해 왔다. 독서를 하다가 가슴에 와서 박히는 내용들을 노트에 필사를 해 두면 머리에 오래 남았다. 그렇게 써 놓은 내용들은 글쓰기를 할 때 인용하기도 했고, 스캔하여 찍어 둔 사진에 합성하면 씨너지 효과로 글씨와 사진이 모두 돋보였다.




주변 사람들이 내 씨와 사진에 찬사를 이어갔다.  그럴수록 더 많이 자주 열심히 썼고 어느 날 서점에 가 보니 캘리그래피 관련 서적들이 매대 한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야흐로 캘리그래피의 전성시대가 열린 듯 보였다. 마음에 드는 책들을 사서 독학을 하던 나는 한계를 느끼고 대구의 캘리그래피 전문 학원에 덜컥 등록을 해 버렸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차례 3 시간씩  진행됐다. 학원에 처음 가서 당황했던 건 펜을 이용한 글씨를 가르쳐 줄 걸로 생각했는데 붓과 먹 그리고 화선지를 나눠 줬다.



먹을 붓에 듬뿍 묻혀서 화선지에 글씨를 쓰는 형식은 전통 서예와 다를 바 없었다. 서예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캘리그래피에 입문하는데 있어서 훨씬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테다. 서예는 이미 정립된 서체를 그대로 익혀서 재현하는 과정이라면, 캘리그래피는 붓과 먹을 다루는 법을 익혀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캘리그래피는 붓과 먹을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한다. 각종 펜은 물론이고 롤러나 나무젓가락 등 기발한 도구를 이용하여 서체의 한계를 재료의 다양함으로  뛰어넘는다. 사진도 좋지만 간단한 그림과 어우러지면 글씨가 더욱 돋보인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글씨를 잘 쓰는 데는 왕도가 없다. 남의 좋은 글씨를 찾아 보고 많이 써 봐야 한다. 책을 통해 팁을 얻는 것도 도움이 되며, 전문학원에서 몇 달 꾸준히 익히면 실력은 분명히 늘어난다.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좋은 글귀를 찾아 책이나 인터넷을 뒤지면서 얻는 지식은 덤이다. 펜은 가격이나 브랜드와 무관하게 자기 손에 잘 맞는 걸 고르면 된다. 격자형으로 줄이 쳐져있는 노트에 쓰면 가로 세로로 삐뚤어지는 글씨를 바로잡기 쉽다. 좋은 글씨체를 흉내내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면, 같은 글씨체로 다른 내용의 글을 써 보는 연습을 하면 글씨가 더 좋아지며 자기 글씨체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부채나 향초 카드 엽서 머그컵 스탠드 패키지 등 다양한 소재에 캘리그래피를 적용하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기만의 작품을 가질 수 있다. 지인에게 선물을 한다면 기성품을 구매해서 줬을 때 보다 훨씬 큰 정성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 업무나 인간관계에 치어 머리와 마음이 복잡할 때 좋은 시를 찾아 노트에 적어 보라. 잠깐의 시간을 투자해서 평온한 마음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필사만으로 다시 업무나 관계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 글씨를 멋지게 잘 쓴다면 더 좋겠지만 삐뚤빼뚤한 글씨라도 마음과 정성이 담긴 솔직한 글씨는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 오늘부터 가방에 작은 메모장과 펜을 넣고 다니자. 핸드폰을 놓고 글씨를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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