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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Oct 12. 2015

내발로 찾아 간 정신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사면이 흰색 타일로 덮인 벽이다. 폭으로 한 걸음 길이로 세 걸음 너비의 공간. 벽면에 창은 없고 천장에 형광등 한 개만 희미하다. 변기 하나 세면대 하나 그리고 외부로 향하여 난 유일하고 육중한 철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차가운 손잡이를 돌려 보지만 문은 꼼짝을 하지 않는다. 문을 주먹으로 세차게 두드렸다. 문 밖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다시 온 힘을 다해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당겨보지만 역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여긴 베트남 호찌민시의 어느 카페다. 밖에는 함께 온 아내가 앉아있다. 핸드폰은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던 테이블 위에 두고 화장실에 들어 왔다가 갇힌 거다. 다시 온 힘을 다해 문을 두드렸다.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아내의 목소리다. '어떻게 된 거야?' '일 보고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밖에서 아내가 문을 열려고 시도해 본다. 문은 요지부동이다. '사람을 불러와 볼게' '어서 불러와 봐' 아내가 문 앞을 떠났다. 밖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나는 기다린다. 일분 이분 삼분.... 좁은 공간에 갇힌 채로 시간이 흐른다. 아내와 베트남 종업원과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될까. 장비가 와야 되는 건 아닐까. 얼마나 갇혀 있어야 되는 걸까. 점점 호흡이 가빠 온다. 얼굴은 상기되고 손에는 땀이 찬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다리에 힘이 풀린다. 현기증이  느껴져 벽에 기대 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아내와 베트남 직원이 뭔가 얘기를 한다. 손잡이가 덜컥 거리기를 몇 번. 문이 열렸다. 홀 안에서 에어컨으로 식혀진 공기가 밀려 들어 온다. 비로소 코로 숨이 쉬어진다. 화장실 출입문 고장으로 가끔 사람이 갇히는 일이 있다는 종업원의 태연한 설명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겪은 첫 번째 공황장애 증상이다. 아니 공황장애  증상이라기보다는 실제 상황이니 공황상태에 놓여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날의 사건 이후 비슷한 증세가 일 년에  한두 번 꼴로 일어났다. 이스탄불의 호텔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 십여 명의 승객을 제치고 내가 나서서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열고 탈출했다. 내려 보니 엘리베이터는 1층과 지하 사이에 3/4 정도 걸쳐 있었다. 폭설이 내린 어느 겨울, KTX를 타고 서울에  다녀오던 중. 김천을 지났을 때 어떤 이유로 기차가 터널 안에 멈춰 섰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급하게 벗고 열차 뒤쪽을 향해  뛰쳐나가려다 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심호흡을 크게 몇 차례 하고 나서야 진정이 됐다. 어느 여름 운전을 하다가 느닷없이 눈물이 흘렀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지금도 그 대로변 대성통곡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정신과 병원을 찾게 된 건 그런 증상이 최근 일 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일어나면 서다. 평소 치료해 주던 치과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치료용 수건을 얼굴에 덮어 씌운 채 치료를 한다. 치료 시간이 내 예상보다 길어지자 호흡이 거칠어진다. 간호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피와 치아를 갈아낸 부스러기 등 입안의 찌꺼기를 그대로 삼켜버린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간호사가 치료를 잠시 중단하고 나를 진정시킨 후 서둘러 치료를 마무리한다. 며칠 후 딸과 함께 대구 시내에 다녀오는 길. 중앙고속도로가 예상치 않게 정체돼 있다. 내차의 바로 앞에는 대형 관광버스가 벽처럼 서 있다. 느리게 진행하던 차량 행렬이 터널 안에서 아예 멈춰 섰다. 딸아이에게 표시를 내기 싫었지만 쓰고 있던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 던졌다. 올가미로 몸을  포박당한 듯 목을 조이는 듯한 불안감에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잠시 후 차량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터널을 벗어나자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정신과 의원은 겉 보기에 접수 데스크, 진료실, 방사선실, 원무과 등  다른 병원의 인테리어와 흡사하다. 대기실 곳곳에 놓인 양키캔들이 여린 불빛과 함께 희미한 향을 내뿜고 있는 게 눈에 띄는 정도다. 환자들 몇몇이 대기하고 있거나 링거를 꽂은 채 복도를 오간다. 대기자나 환자들의 눈빛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선입견일 것으로 치부하며 그들로부터 시선을 거둔다.  '접수' 자리에 앉은 50 대로 보이는 여직원이 내 준 질문지의 55 개 문항에 체크를 했다. '전혀아니다' '약간그렇다' '보통그렇다' '매우그렇다'의 네 개 항목 중 하나에 표시를 해야 한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이후 가장 신중하게 답(?)을 골랐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질문도 있는 반면에 고르기 애매한 항목도 많다. 가령  '무슨 일을 하든 정신을 집중하기가 힘들다' 또는 '내 인생은 실패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같은 질문은 선택이 쉬운 반면, '불행했다' '우울했다' '슬픔을 느꼈다'같은 항목은 막연했다. 지난주에 질 좋은 소고기를 많이 선물 받아 행복했지만, 누구랑 먹을지를 놓고 두 그룹 사이에 갈등하는 과정은 불행했고, 결국 직원들과 맛나게 먹고 딸아이와 또 먹어서 다시 행복했으나,  설거지하는 동안은 허리가 아파서 불행했으니 이것이 불행인가 행복인가. 위 네 가지 답 중에 대체 뭘 선택해야 한다는 말인가. 어쨌든 최선을 다해 답을 고르는 동안 내 뒤의 환자가 나를 앞서서 진료실로 먼저 들어갔다. '약간' '불행하다'라는 기분이 든다.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실에 들어서서 의사와 인사를 나눴다. 의사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마른 편이다. 아침에 면도를 하지 못한 듯 코밑과 턱수염이 거뭇하다. 청진기나 체온계 또는 다른 의료기기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역시 다른 병의원의 진료실과 다를바 없다. 의자의 색깔이 베이지와 옐로우 계열이라는 점이 좀 특이하달까. 과거와 최근의 증세를 짧게 얘기했는데 의사는 병명을 확신한 듯 공황장애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친절히 설명한다. 공황장애는 경보체계의 고장이다. 인간은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심장의 펌프질을 빠르게 해서 팔다리로 혈액을 보낸다. 뇌에도 혈액을 뿜어 올려 각성 작용을 일으킨다. 초식동물이 사자를 만났을 때의 경우와 같다. 목숨이 걸렸으니 최선을 다해 경계하고 도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공황장애는 실제로 위기상황이 아닌데도 비슷한 환경에 처하면 잘못된 경보를 몸으로 보내는 질환이다. 내가 겪은 증상 외에도 메슥거림, 체한 느낌, 비현실감, 이인감(세상이 달라진 것 같은 이상한 느낌, 혹은 자신이 달라진 듯한 느낌), 자제력을 잃거나 미쳐 버릴 것만 같은 공포스러움, 죽음에 대한 공포, 이상한 감각(손발이 저릿저릿하거나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  오한이나 몸이 화끈거리는 등의 증세가 있다고 한다.  이런 증상 중에서 4가지 이상이 나타나면 공황발작이라고 정의한다.


환자들은 대부분 내과 소화기과 신경과 등에서 심장 등 갖가지 검사를 거치고도 호전되지 않을 경우 최후에 정신과를 찾는다고 한다. 공황장애는 넓은 개념이며 폐쇄공포증, 범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이 포함된다. 광장공포증, 우울증, 알콜의존증 등의 합병증을 겪는 경우도 있다. 공황장애는 선천적으로 내재 돼 있다가 어떤 사건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과로, 불면 혹은 주변인의 죽음 등의 요인으로 표출 다. 공황에 대한 취약성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받아 들이고 수용해야 한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외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공황장애는 주어지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의사는 내게 일주일치 약을 주었다. 아침과 저녁에 먹는 약 그리고 공황장애 증세가 발생했을 때 먹는 약 두 종류다. 일주일 후에 경과를 보자고 했으나, 적어도 육 개월은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한다. 근육이완법이나 호흡법 등의 치료와 자신의 증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의사와 소통하는 인지치료가  병행된다. 의사는 다른 건 몰라도 술을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황장애나 우울증 증세는 알코올로 쉽게 완화되는데 우리 몸은 알코올을 약물로 받아 들인다.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서 점점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고 결국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단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공황장애의 극복은, 1단계 무의식적 불안단계로, 자신의 증세를 모르는데서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는 단계다. 2단계 의식적 불안단계로, 약물치료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지만 어설프게 아는 단계로 자신을 통제하고 자신감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3단계 의식적 조절단계로 공황장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어느 정도 대처하지만 완벽하지 못해서, 공황과 부딪치고 극복하는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4단계 무의식적 조절단계는, 공황이 오더라도 덤덤하게 대처하고 감정적 신체적 동요 없이 넘어가는 단게다. 공황이 완치되었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공황을 다룰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난 이중 1단계와 2단계  사이쯤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칠월에 담배를 끊었다. 이제 술까지 끊으면 어찌 되나. 얼마 안 되는 대인관계가 거의 종말을 고하는 거 아닌가 싶다. 대인관계 포기하고 캘리그래피학원 요리학원 필라테스 학원 독서토론회 등등을 전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술 대신 차를 마시고 고기나 회 대신에 빵이나 피자를 뜯어 먹어야 되는 건가. 내 주변의 수많은 주당들은 어떻게 극복을 하는 걸까. 공황장애가 선천적 요인이라니 그들은 선천적으로 공황에 대해 내성을 갖고 살아가는 걸까. 김장훈도 김구라도 이경규도 공황장애를 갖고 살아간다고 한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증세를 가졌지만 정신과를 찾을 용기가 없거나 다른 이유로 불안한 가운데  생활할 거라 생각한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내 일 일지도 모르는 불안감과 슬픔, 남북이 포를 쏘는 과정에서 전쟁에 대한 극심한 공포 등도 증세를  악화시킨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간 원인 모를 통증을 호소하는 아버지, 끊이지 않는 앓는 소리, 가래 뱉는 소리, 혀 차는 소리 등도 내 공황을 자극한다. 언젠가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아 자살충동과 살인충동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던 누군가의 행동 들도 지금의 공황에 영향을 끼쳤을까.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트라우마는 없다고 했다. 과거가 어찌됐는 난 내 증세를 알았고 약물치료와 스스로의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앞으로 난 4단계에 가 있을 게 분명하다고 믿는다. 공황이 선천적으로 내게 주어졌지만, 장애를 극복하는 힘도 내재돼 있음을 나는 안다. 그간의 사건 사고나 태생적인 환경도 모두 지난  일일 뿐이다. 내게는 딛고 있는 현재가 있고 내일이 있을 뿐이다.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 내게 생계를 의지한 직원들이 있다. 내가 써야 할 글이 너무 많이 남았고, 읽어야 할 책들도 보고 싶은 그림들이 무수히 남았으며, 내가 찾아 봐야 할  땅과 담아내야 할 풍광들이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소중한 나 자신이 있다. 공황을 극복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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