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갑자기 정적이 찾아든다면

이제 너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7분

by 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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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늦가을의 토요일이었다.

이미 계절은 서서히 겨울 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며칠 전에는 눈벌레(雪虫)가 날기 시작했다.

공기가 가벼워진 대신 숲은 어딘가 비워진 듯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제 곧 첫눈이 오겠구나...'

요시오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숲으로 향했다.


그가 이곳에서 플라이 낚시를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학입학과 함께 고향 사가(佐賀)를 떠나 상경한 이후 줄곧 도쿄에서 제법시간 동안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며 살던 집이며 주변 인간관계를 무언가 급한 사람처럼 서둘러 정리하고는,

지도에서조차 한참을 찾아야 할 이 홋카이도에서도 변두리 촌동네인 데시카가(弟子屈)로 흘러들어왔다.

주말이면 낚시숍에 모여 함께 술을 마시던 동료들조차 그가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요시오카는 굳이 말하지 않았고, 주변 역시 그런 그에게 애써 묻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날도 그는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임도(林道)를 벗어나 계곡 포인트로 바로 통하는 지름길을 택했다.

낚싯대를 어깨에 걸쳐 멘 채 숲 안쪽으로 드문드문 끊긴 오래된 샛길을 수풀을 헤치며 들어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춤에 매단 작은 종이 울렸다.

숲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달고 다니는 곰을 쫓기 위한 캄파넬라였다.


딸그랑


딸그랑


요시오카는 문득, 이 소리는 무엇인가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장소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금속과 금속이 서로 맞부딪히는 소리는 지나치게 도드라져서,

오히려 숲에게 사과라도 해야 할 만큼이나 시끄럽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길의 끝에는 초창기 홋카이도 개척민들이 세웠다는 통나무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이곳을 찾는 낚시꾼이나 사냥꾼들이 간간이 쉼터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십여 년 전 큰 눈으로 그만 지붕이 내려앉은 뒤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유 없이 관자놀이가 지끈거릴 때면 요시오카는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찾곤 했다.

혼자서 이미 몇 번이나 다녀온 곳이었지만 늘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숲에 들어서기 전 오늘만큼은 왠지 그 근처로 가지 말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그 이유까지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왠지 좀 불편한 그 느낌만큼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자신의 발소리였다.

오늘따라 낙엽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도 또렷했다.

마치 다른 소리들이 하나씩 빠져나간 자리에 그 소리만이 남아 있는 것처럼 들렸다.

숲 속으로 몇 걸음 더 들어섰을 때, 그는 자신만이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새소리도 없었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던 물소리마저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딸랑


캄파넬라가 마지막으로 한 번 울린 뒤, 그 소리조차 숲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꺼진 것처럼 느껴졌다.


숲은 완전히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정적은 갑작스럽기보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요시오카는 깨달았다. 이 정적이 시작된 정확한 시점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부터 조용해졌는지, 자신이 어디까지 걸어왔는지, 떠올리려 할수록 기억은 손에 쥔 눈처럼 흘러내렸다.


요시오카는 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들렸다.

그는 얼마나 깊게 걸어 들어온 것인지, 지금부터라도 시간을 재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이미 재고 있었고, 그 사실을 이제야 떠올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 숲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시오카 씨.”


목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억양도, 호흡도,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 늦게 듣는 것처럼 익숙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같은 목소리가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전혀 입을 열 생각이 없었지만,


“네.”


하는 대답이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왔다.


갑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무언가가 한 겹 벗겨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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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숲이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듣고 있던 것들만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새소리였고, 그다음은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였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것은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던 물소리였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발소리마저 조금 전과는 다른 울림으로 숲에 닿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걷지 않았다. 굳이 멈추려 한 것은 아니었다.

한 발을 내딛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이곳에서는 의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시 시계를 보았다. 초침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정확히 세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이미 숲은 지금 그에게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있었다.

소리, 방향, 거리, 감각. 그리고 아마도 곧 기억의 일부까지.


“요시오카 씨.”


이번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니고, 숲 안쪽도 아니었다.

요시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숲 가장자리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낙엽 위를 눌러 밟는 소리였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그 소리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이어 나무줄기와 잎사귀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들렸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숲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처음의 숲과 같은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요시오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곧 이 숲은 다시 평소의 숲이 될 것이며,

사람들이 들어와도 아무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늦가을의 평범한 숲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걸.

그는 다시 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숫자판의 12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으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조급함은 없었다. 머릿속은 지나치게 맑아져 있었다.

두통도, 불안도,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어지던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때였다.


숲 안쪽이 아니라 자신의 몸 어딘가에서

딱.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초침이 막 칠 분을 세길 때였다.


그 순간, 숲은 완전히 소리를 되찾았다. 바람이 불었고, 새가 울었으며, 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르고 있었다.

요시오카는 더 이상 그 소리들 속에 섞여 있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까지가 요시오카였는지, 무엇이 그였는지 숲은 더 이상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 뒤, 낚시숍에서는 단골 하나가 요즘 통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오갔다.

도쿄에서 왔다던 사람, 말수가 적고 늘 혼자서 낚시를 즐기던 남자.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본격적으로 겨울에 접어들 때쯤 곰 조심 캠페인 포스터가 가게입구에 붙었고, 그걸 본 손님들은 다들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올해에는 바로 이 앞 가까운 숲에서도 곰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샛길 근처에서 누군가 끊어진 종을 주웠다더라는 말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요즘 곰들은 종 나부랭이나 후추 스프레이 같은 건 우습게 보기 때문에, 우리도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의 플라이 피셔들처럼 권총을 차고 다닐 때가 되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쩌다 가끔은 '그 숲'에 들어갔다 오면 이유 없이 머리가 맑아질 때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

낚시에 열중하다 보면 세상 시름을 다 잊게 된다는, 그 증거가 아니겠느냐며 웃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그 얘기를 꺼낸 사람들 중 누구도, 그날 숲에서 무엇을 보고 돌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술자리가 길어질 무렵이면 이따금 그런 이야기들이 농담처럼 흘려졌고,

봄이 돌아와 새로운 한 해의 낚시가 다시 시작되었을 즈음엔,

더 이상 그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숲에 정적이 찾아온다면 너에게 남은 시간은 7분'이라는 경구는 핀란드 타이가 숲의 사냥꾼, 낚시꾼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 주변에 '험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현상?을 어느 생물학자가 실제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밝혀냈는데, 포식자나 블리자드 등 어떤 위험이 닥쳐왔을 때 벌레나 새, 다람쥐, 토끼 같이 작고 약한 동물들은 일종의 경고 페로몬을 방출하고, 이 경고는 곧바로 연쇄적으로 주변으로 퍼져나간다고 한다. 위험을 감지한 동물은 약 7분 동안 더 이상의 활동을 멈추며, 이때의 심장박동 또한 60%선으로 감소하더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인간의 미약한 감각으로선 주변의 이 경고를 세밀하게 캐치해내지는 못하지만, 예민한 사람일수록 어딘가 모를 불편한 기분을 느끼게 되곤 한다고.

실제로 핀란드 산악 순찰대에서는 숲이 조용해지면 즉시 개활지나 주변의 높은 곳으로 이동하라는 행동지침이 있다고도. 북미 애팔라치아 산악지대에서 살아가던 원주민들 사이에도 비슷한 오랜 경구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작년 11월께 이 이야기를 듣고는 갑자기 필 받아 시작했다가 내내 처박아 두었던 글을 어저께서야 겨우 완성했다. 개인적으로 좋아라 하는 플라이 낚시와 배우 요시오카 히데타카, 그리고 미지의 홋카이도라는 곳에 바치는 일종의 팬픽... 같은 거랄까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