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을까?
명확한 외곽선이 있어 허공과 그 자신의 구분이 확실한 물체, 즉 형체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그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다양한 감각과 인지를 통해.
하지만 명확한 외곽선이 없는 것에 대해 인간은 그 존재를 오로지 인지로만 느낄 수 있다. 이것을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대강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개념과 인지 찌꺼기들, 무형적인 것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존재와 비존재의 중간에 걸쳐 있을까?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물체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단 하나 존재하는 생각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방금 막 떠올린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생각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한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생각은 흐르고, 소멸하고, 변형된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각도 완전하지 않고 그렇다면 방금 막 흐른 생각과 지금 내가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생각이 동일한지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인류는 그래서 기록을 발명했다. 기록은 이 오류를 온전히 잡아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어와 개념 또한 이미 세상에 존재하던 것에 인류가 임의로 이름붙인 것에 불과하다. 다시 한번, 우리는 세상의 이치가 인류의 개념 체계에 맞춰 설계된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방금 메모지에 휘갈겼던 ‘하늘’과 지금 머릿속에 떠올리는 ‘하늘’이 같은 하늘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인류의 개념 체계에 대한 약속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할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전 지구에 빨간 레이저를 쏘아 기억과 모든 기록을 조작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까?
때로 브레이크 없는 깊은 생각은, 사실 아주 자주, 근거 없는 음모론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음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