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속의 뇌

by 물소금

통 속의 뇌 이론. 우리는 사실 전부 통 속에 잠긴 뇌 실험체이고, 우리가 만지고 느끼는 건 모두 통에서 전송되는 전기 에너지로 만들어진 환상이라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이 통째로 거짓이고 아무 의미 없을 수 있다는 공포를 자극하며, 모든 그렇지 않다는 증거는 전기 신호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한 가지로 반박이 가능하다.


이 이론과 더불어 우리의 감각, 인지가 ‘의미 없다’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것이 거짓이거나 인공적일 수 있다는 것이 왜 두려울까? 우리가 의미를 부여했던 것들이 모두 의미 없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은 지금은, 의미가 있나? 의미란 뭘까? 우리 삶의 목적은 뭘까? 우리는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에 그것이 의미 없음으로 분류되는 것을 두려워할까?


그 답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의 가치관 및 인생의 방향성, 삶의 최종적인 목표 등 각자가 부여한 최고의 가치가 최소 하나쯤은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경우란 뭘까?


그것이 사실 절대 실현 불가능한 것임이 밝혀지는 것? 또는 그 가치 자체가 통째로 허울뿐이었던 것임이 밝혀지는 것? 하지만 가치는 원래도 그 형체가 없는 무형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가치는 허울뿐인 것이 아닌가?


취미 활동이나 간식 먹기, 유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보통 장기적으로 인생의 가치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그 순간을 버티게 해 주는 긍정적인 낭비로 받아들여진다. 공부, 연습, 자원과 에너지를 들여 어떤 것에 투자하는 행위는 낭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 있다는 감각의 정체는 뭘까?


공부를 한다면 미래에 돈을 잘 벌 수 있어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연습을 한다면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공부도 연습도 그 양의 어마어마함이 성공으로의 직행 티켓은 아니다. 그토록 명징해 보이는 행위도 페이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다.


모든 행위는 운과 불확실한 부분의 영향을 받는다. 죽도록 공부했어도, 연습했어도 수능 전날, 대회 전날 손목이 부러지거나 교통사고가 나면 그 결과는 좋지 못할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으며 불가피하다. 이럴 때에 우리는 그동안 해왔던 노력이 ‘아무 의미 없었다’는 공포와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모든 것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의미는 그것을 부여하는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이 아닌 조금이라도 미래의 의미는 존재할지 존재하지 않을지 추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기 싫은 것을 참고도 의미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가?


나의 현재도, 미래도 의미가 있어질 확률은 분명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의미가 ‘있어서’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어질 ‘확률’을 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 행위 자체에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바로 이 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행위 자체의 의미. 바로 이 순간에는 내가 이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부여하지 않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된다.


지금 이 행위는 의미가 없지만 미래를 위해 꾹 참겠다는 선택의 공허와 위험에 대해. 그 결과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아마도, 당신이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면, 그 확률을 유의미하게 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도 문제가 있다. 그 방향이 옳은지조차 결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른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죽도록 공부했는데 어느 날 수능 기준이 대폭 바뀌어 올해부터는 필기가 아닌 농구 실력으로 신입생을 뽑겠습니다, 라면 그 모든 노력은 한순간에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의 단단함과 안정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나의 밑바탕이 되도록, 나의 일부가 되도록, 더 ‘내가 원하는 방향’의 내가 되도록 하자는 의미다. 후회 없는 삶이란 그런 것이리라. 한 만큼 결과가, 의미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게 ‘의미’가 있었기에 나는,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다는 감각이 주는 안정감이 여기에 있으리라. 나는 이게 하고 싶어서 했고, 노력했고, 그렇기에 되지 않으면 약간 속상하겠지만, 최선을 다한 나에게 부끄럽지는 않다는 것. 나는 이 이상 더 잘할 수는 없었다는 것.


그러므로 무작정 결과를 올리기 위해 하는 희생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확률을 올리는 희생 및 선택은 그 결과도, 의미도 ‘확실히’ 보장하지 않으므로 그 확률을 올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 행위를 할지 말지까지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후회하지 않는다. ‘선택’이 가지는 의미와 무게가 커지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삶은 의미없나?


다시 한 번. 의미는 어떤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지금 현재 ‘내가’ ‘느끼는’ 것이고, 지금 현재 느끼는 의미만이 개인이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인생이 ‘의미’가 있나? 는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행위가 당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지도,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