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산소가 없으므로 살아 있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이 이상하게 거슬렸다.
생명체 전체가 산소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전제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산소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를 생명체라고 이름붙인 것일지도.
그렇다면 첫 이론은 성립한다. 산소가 있어서 살아갈 수 있는 것 = 생명체는 우주에는 없다. 우주에는 산소가 없으므로. 그러나 이 문장은 콩나물은 콩나물이다라는 말처럼 당연하고 알맹이나 정보값이 없다.
그렇다면 숨을 쉬지 않는 것, 산소가 필요없는 것을 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돌은 생명체인가? 우리는 돌이 움직이지 않기에 생명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떠한 신진대사 작용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나무가 있다. 나무는 일정 부분 호흡이 필요하지만 인간보다는 덜 필요하다. 하지만 돌보다는 더 필요하다. 나무의 대사는 인간보다 훨씬 느리다.
돌의 대사도 나무와 비슷하다면 어떨까. 아주 느리고, 인간의 인식 체계에서 인식할 수 없지만 아주 느린 대사가 돌아간다면, 그래서 돌들의 입장에서 인간은 아주 커다란 먼지처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조금 거슬리고 불결하지만 크게 신경 쓸 존재는 아니라면 어떨까.
또한 먼지가 인간을 돌처럼 인식하고 있다면 어떨까. 아주 크고, 아주 느리고, 그래서 거의 관찰할 수 없어서 무생물로 인식된다면.
인간은 인간의 인지 체계와 시간 감각밖에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 밖의 다른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는 것은 가능하고, 그건 굉장히 신선하다.
그렇다면 과학은 완전한가?
인간이 인간의 흐름밖에 관찰할 수 없다면 진리를 탐구하려는 움직임은 결국 모래사장에서 모래알 하나를 붙들고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이 의미가 있나?
과학은 학문이다. 학문은 인간 사이의 약속과, 이론과, 삶을 더욱 편리하게 하기 위한 카테고리이다.
과학은 진리를 향한 학문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 우주/차원/인지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층위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해도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우주에는 영향을 미침이 틀림없다.
그래서 모든 작은 움직임과 변화가 그들 개인의 삶에서는 의미 있듯, 인간도, 인간의 과학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