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이면

by 물소금

반면, 다른 맥락으로 회자되는 낭만이 있다. 이는 일상이 아니라 주로 작품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에 띈다.

굶는 이들을 위해 몸의 황금을 모두 떼어준 행복한 왕자. 연인을 위해 죽은 수많은 영화 속 연인들. 불길 속에서 아이를 구한 소방관. 텍스트에는 전부 담을 수 없는 수많은 희생들.

이 맥락에서 낭만은 낭만이 오로지 자존감과 관련된 맥락이라는 이론을 정면으로 박살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보통 타자화되어 있고, 타인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하지 않은 행위에서, 타인에 대해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예시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자기희생적인 태도이다. 자신의 손해를, 때로는 목숨이라는 거대한 손해를 감수하고도 타인을 위하는 그 거대한 이타심. 우리는 이런 감정에서 왜 긍정적인 기분을 느낄까?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본능적 경외? 무언가를 이루어낸 영웅을 향한 동경? 나도 저런 상황에서 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하는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

명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영웅’들에 대한 존경을 놓지 못한다. 그리고 그 기분은 때로는 낭만이라는 감정으로 불린다. 그들의 희생에 대한 내용을 가볍게 다루려는 것이 아닌, 본능적인 감각이다.

그들의 삶은 왜 낭만적으로 보일까? 어쩌면 타인을 향한 그토록 맹목적인 이타심은 본인의 자존감이 이미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는 일정 부분 일리 있지만 너무한 비약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또한 상당수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자존감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해 볼 수 있을까? 마땅한 답변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의 선의를, 그 거대한 이유 없는 선의를 받을 수 있는 존재에 그 자신도 해당될 수 있다는 안도감/소속감 때문에?

이는 이기적이어 보이지만 꽤나 일리 있는 생각이다. 인간의 이기심을 구태여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밀어낼 필요는 없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태어났으므로 본능의 영역에서는 일정 부분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이기심을 이타적인 방향으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웅들을 위하여.

어쩌면 우리가 본능적으로 원하는 어떠한 인생상을 대신 살아준 이들에게 느끼는 감정일까? 낭만은, 그런 자기만족에 의한 감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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