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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릇 Oct 08. 2023

휴먼의 가치

AI가 휴먼을 고통에서 해방해 줄까? 아니면 휴먼의 고통을 이용할까?

점심시간은 휴먼 고유의 영역이다.

삼삼오오 각자 파르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를 먹으며 테라스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AI가 휴먼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가 오갔다.


파르페의 의견은 AI가 휴먼을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찌 되었든 AI를 활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확실히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뉴럴링크와 같은 시도에도 긍정적인 편이다. 이유는 결국 기술은 인간을 고통에서 해방하기 위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노동이 될 수도, 질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아의 의견은 “사람은 노동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기계에 종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노동(勞動)의 정의를 살펴보면 사람의 생계·생존·생활을 위한 모든 것들 또는 그것으로 바꿀 수 있는 화폐를 얻기 위해서 특정한 대상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AI 또는 기계가 노동을 대체한다는 것이 곧 생계·생존·생활에 위협이 되어, 결국 쓸모없는 휴먼으로 전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 AI로 인해 여가 시간이 늘게 되면 실업 신경질환으로 공허감이 생길 수 있을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은 삶의 의미를 노동에서 찾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언가를 꼭 성취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것은 누구의 목소리일까?

어쩌면 무언가를 바라는 욕망 자체도 사회나 기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이미 휴먼의 역량을 뛰어넘는 AI가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는 AI를 활용하여 기회를 찾아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시대에, 휴먼의 역량만으로 대응하려고 할 때쯤이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다. 거대 빅테크 기업의 움직임 자락 끝에라도 매달려 있어야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휴먼 고유의 능력만으로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여 지식을 강화하는 수준의 초인공지능을 제어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AI가 휴먼의 욕구와 고통을 악용 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걱정과 함께 조심스러운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이 가져올 실업에 반대해 기계를 파괴했던 러다이트(Luddite) 운동처럼, 아무리 거부해도 시대의 흐름에 대항할 수 없고, 노동이 아닌 다른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가 시간이 늘게 되면 실존적 공허감이나 다른 욕망이 생길 것이다. 그걸 포착하는 것 또한 중요한 시점이다. 지금 파르페와 아아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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