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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낮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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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원 Apr 21. 2020

하루쯤은 불편하게 쉬어봐도,

우리의 휴일에겐 동심이 필요하다.

 "이제 사람들은 소비 없이 휴식하는 방법을 잊었나 봐요."


 그녀의 동생이 이런 말을 했더랬다. 눈을 크게 떴다. 깊이 공감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르는 게 아니라 잊어버린 것에 가깝다. 친구와 만나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밥을 사 먹고, 차를 사 마신다. 일종의 코스다.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그렇게 한다. 굳이 돈을 쓰기 위해 만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돈을 쓰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법 또한 모른다. 소비성 휴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비소비성 휴식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로 나오고 나서 소비성 휴식이 유독 짙어진다. 회사에서의 고통을 월급으로 보상받는다는 생각이 소비를 더욱 조장하고 그에 길들여진다. SNS는 일상은 화려한 부분만 붙들고 싶어 한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통근길을 벗어나 예쁘고 힙한 장소를 찾기 시작한다. 물론 이 모든 행위에서 돈은 필수적이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본래 나는 반복적인 일엔 쉽게 권태를 느끼는 터라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싫었다. 어느 날 친구랑 불쑥 아무 버스를 타고 아무 곳에서 내려 산책을 한다거나, 문구점에서 폼 보드를 사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어떻게 하면 색다르게 놀 수 있지 궁리하며 살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엔 단조로움을 싫어할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휴식을 취할 때는 몸의 편안함(이라고 쓰고 나태함이라고 읽어야 한다)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소비에 점차 중독되어갔다. 예쁜 걸 사야 예쁜 사람이 되고, 예쁜 걸 먹어야 예쁜 사람이 되고, 예쁜 곳에 가야 예쁜 사람이 된다는 생각. '이런 어른이 되려고 일을 하는 게 아닌데'하는 자괴감이 들 때면 나는 허겁지겁 낭만에게 가 몸을 풀었다. 돗자리를 들고 반포대교에 가 어둠 속에 잠겨도 보고, 목적지 없는 산책을 하거나, 이름 모를 동네 놀이터의 그네를 탔다. 나는 내가 왜 낭만을 다급하게 찾아다녔는지 몰랐다. 어딘가 불편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동생이 말한 저 한 문장이 나를 여기까지 순식간에 끌고 왔다. 내가 갖고 있던 갈증에 이름을 붙여준 셈이다. 


 그래, 내게도 낭만이 일상을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다. 낭만은 대체로 결핍과 궁핍과 함께 한다. 편리함의 결핍과 적당한 궁핍. 나는 대학시절 내내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고,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용돈이 빠듯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자전거나 도시락이 주는 여유가 좋았다. 감사하게도 이런 나와 어울려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같이 도시락을 먹고, 수업 끝나고 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던 일들. (자폭족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탄 폭주족이라며 도시 끝까지 달리곤 했다.) 한 번은 글을 쓰는 친구랑 학교 근처 산에 올랐다. 아카시아 나무가 가득한 길목 벤치에 앉아 인생에 대해 논하던 스물두 살의 나와 스물한 살의 그 녀석을 기억한다. 후로 녀석은 내게 자신의 글을 담은 편지를 종종 보냈다. 동아리 회장으로 있으면서 이런저런 엉뚱한 짓을 더 많이 했다. 아직도 동아리원들은 내게 그때의 추억거리를 늘어놓는다. 학교 벤치에서 브루스타를 가지고 라면을 끓여먹은 일, 세숫대야를 사다가 20명분의 비빔밥을 만들었던 일, 서른 명 남짓의 사람들과 공원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시를 지은 일. 부티가 나는 일은 아니었을 텐데, 우리는 아직도 그때를 귀하게 기억한다. 연극치료 동아리였는데,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을 같이 보냈다. 나는 매번 두세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동기들은 나를 도와 같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은 그저 이야기와 웃음으로 진행되었고, 기껏해야 필요한 재료는 종이나 펜 정도였다. 사연을 익명으로 적어 라디오처럼 읽어주고 (비난 없는) 피드백을 주고받는다거나,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의 장점 세 가지를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칭찬하는 걸 샤워 물 받듯 맞이하였다. 우리는 자주 웃었고 자주 울었고 우는 모습을 보며 글썽였다. 눈에 선한 장면들을 모아다 새벽 한 귀퉁이에 상영관을 세웠다. 돈이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돈이 상관없어서 행복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비성 휴식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난 카페를 정말 좋아한다. 공간에서 흐르는 잔잔한 음악이 좋고 서늘한 에어컨은 더 좋다. 다만 뭐든 적당한 것이 좋고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 익숙한 것을 선택하지 말고, 편안한 것만 좇지 말고, 즐거운 일을 궁리하기! 돈이 주는 편리함 대신 낭만이 들어갈 수 있게 소비의 빈도를 줄여보자. 동시에 소비의 단조로운 패턴을 바꿔보자. 조금 더 재밌게 놀기 위해 조금 더 불편해질 것. 내일은 친구와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올해 벌써 네 번째 연꽃 구경이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다. 땀이 많이 나겠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다. 모기도 많이 물리겠지만 우리는 한없이 듬뿍 채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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