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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낮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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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원 Apr 21. 2020

그걸 사랑이라 굳이 부르고 싶다면,

투자에 비해 터무니없는 결과, 그럼에도 우리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

 한때 펭귄을 흉내 낸 적 있어 냉동실엔 얼음이 가득하다. 일어나서 얼음 만들고, 점심 먹고 얼음 만들고, 자기 전에 얼음을 만들었다. 어떤 의도도 없었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부터 나가는 건 천성에 가까웠다. 저지르고 의미를 부여한다. 결과는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지난밤엔 사랑이 뭘까 한참을 생각했다. 서로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고 손등을 스치며 산책을 하다 슬며시 손을 잡고 깍지를 끼고 입을 맞추고 빈틈없이 끌어안고.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높은 확률로 설렘을 느끼고 나아가 운이 좋으면 사랑을 시작하기도 한다. 대상은 앞서 말한 일련의 행위를 수행하는 자라면 누구여도 상관없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고작 이런 걸 두고 사랑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설렘을 느끼기란 쉬운 일이지만 그이에게 오랜 정성을 쏟겠다 다짐을 하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태껏 내게 사랑이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일과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을 병행하기란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이따금씩 애인은 나를 죽은 사람처럼 바라보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떠나는 게 현명한 건지 버티는 게 진실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비참하다는 기분이 자주 들면 이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닌 척 해도 애인은 "너를 사랑해"와 "나를 희생해"가 같은 표현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안한 표정으로 "고맙다"라고 말했으니까. 그 말에 나는 서둘러 우리를 떠났다. 한쪽의 의지만으로 유지되는 관계를 견디기엔 사랑도 보잘것없었다. 고마움이나 받겠다고 참는 고통이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지가 시작된 순간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모호하다. 기쁨이나 분노처럼 어떤 감정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조금은 지나 봐야 말할 수 있다. 그게 사랑에 가까웠는지 아니면 허울만 좋았었는지.


 사랑에 대해 꽤나 오랜 시간 생각했지만 점점 희미해진다. 어쩌면 나는 아무나 사랑할 수 있고, 내가 '아무나'를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아무나'가 아니게 된다. 이런 감정에 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것이지 이렇게 당위나 논리를 찾을 게 못 된다. 실례로 나는 한 번도 이상형인 사람을 사랑해본 적이 없다. 매번 엉뚱한 사람을 사랑했다. 우스갯소리지만 나한테는 참 억울한 일이지. 이렇게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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