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빵이 만났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말로만 전해 듣던 그 아이와의 첫날이다.
짙은 초록색에 하얀 땡땡이가 박힌 원피를 차려입었다. 뭔가 가장 부드럽고 어여쁜 선생님의 복장이랄까?
수업 시작 전 미리 가서 인사도 나누고 내 소개를 하고 싶었으나, 그녀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어서 쉽사리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베트남어로 편지를 써 갈까 생각도 했는데, 그날 무엇 때문인지 여유롭지 못한 아침을 보내고 시간을 재촉하며 그녀를 만나러 갔다.
간단히 번역 어플을 이용하여 "안녕! 나는 너를 도와줄 사람이야.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나에게 말해줄래? 만나서 반가워"라고 쓰고 번역기를 돌렸다. 그 문자를 보여주자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번역이 잘 못됐나? 이해가 안 갔나?'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란 너무도 어려웠다.
첫날이니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나에게 다짐을 하면서도, 내심 처음 보는 상대에 대한 궁금증은 어쩔 수가 없었다.
교실 앞에서 수업 진행을 하던 사람이, 졸지에 그녀와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국어 시간이라 모둠별 신문 만들기 진행을 하는데, 당최 그녀는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눈치에다가, 또래 아이들 역시 그녀를 조별 활동에 참여시키는 부분은 낯설기만 하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그녀에게 친절하다는 것. 물론 그날 처음 등장한 내가 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이 안돼서, 최대한 부담 없는 그리기 영역으로 접근하였다. 마침 '플랜더스의 개'를 주제로 모둠신문을 만들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그녀는 파트라슈를 그려서 신문에 붙이는 활동이 어떠냐고 제안했고, 모두 오케이를 했다. 그녀는 무엇을 하는데 주저함은 없었고, 보기보다 완벽주의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색칠 하나 하는데 꼼꼼 그 자체였으며, 눈치도 빨라서 번역기를 굳이 돌리지 않아도 척척 해내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단 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대뜸 그녀는 내 앞에서 훌라후프를 돌리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고 잘한다 잘한다"를 외치며 "얼마나 돌릴 수 있는지 시간을 재어줄까?"라고 했더니 신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우와~ 4분이나 돌렸다. 대단한데!!??"
그렇게 우리의 단둘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내 이름은 Soo야. 앞으로 SOO SAM이라고 부르면 된단다."
"소"
" 푸하하.. 소가 아니라 수!! 수!!!"
"소 소"
"아.. 수가 발음이 안되나? 수"
"슈우"
"그래 소던 슈던 수던.. 상관없어. 소 하지머"
"넌 뭐라고 불러줄까? 불러줬으면 하는 닉네임이나 단어가 있어?"
"......."
"혹시 이름 대신 불렸으면 하는 닉네임이 있으면 종이에 적어줘"
잠시 후 그녀는 종이 위에 "빵"이라는 단어를 적어줬다.
"빵??? 방? 먹는 빵?"
"빵 히히히.. 초코빵"
"빵 좋아해?"
"빵 초코빵"
그렇게 첫 만남의 날
나는 그녀의 소가 되었고, 그녀는 나의 빵이 되었다.
그리고 좀처럼 말하지 않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초코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꾸만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천천히 가자고 내 마음을 다잡았다.
뭐든 때가 되면 열릴 테니까.
'너무 애쓰지 말자'라는 나의 인생 시즌2에서의 모토를 다시 한번 되뇌며, 빵과 소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