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외국생활의 첫 번째 덕목 "인내심"

nhẫn nại 인내하다!

by No선생

빵이 와의 둘째 날.

초코빵을 사기 위해 조금 서둘러 나갔다.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배가 불러야 뭐든 된다라는 생각에 아직은 낯선 빵이 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초코빵을 사러 갔다. 초콜릿케이크는 녹을 거 같고, 초코카스텔라를 골랐다.


주차를 하고 교실로 가려는데 누가 뒤에서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내며 쿡 하고 터치를 한다.


"끄오아악"


"앗! 빵아~ 밥 먹고 왔니~?"


나의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후다다닥 친구와 함께 그녀는 떠났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어제 낯설어했던 분위기와 5학년이라 사춘기가 올 나이라 마음을 쉽게 열지 않으면 어쩔까 우려했던 마음이 있었기에, 둘째 날 '아는 척'만 해줘도 기쁜 마음.


교사 시절 저학년이 좋았던 이유는 '세상에 누가 이렇게 나를 반겨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1학년 담인을 맡을 때면, 아이들이 저 멀리서 반가워하며 뛰어오는 모습,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교실로 갈 때면 서로 손을 잡으려고 자리다툼을 하다가 결국 열손가락 하나씩 잡고 걷던 기억. 좀 쉬려고 앉아 있으면 옆에 와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것도 만져보고 저것도 찔러보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버선발로 달려 나가 듯" 맞이하고, 헤어질 때면 늘 먼발치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곤 한다. 누군가 반갑게 맞이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헤어지기 아쉬운 존재가 된다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에너지를 주는 일이라 생각되기에.


학교 현장에서 수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고 나갈 때 선생님의 표정과 말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나를 반겨주는 곳, 매일매일 가야 할 곳이라면 잡다한 일과 해프닝이 있는 것은 둘째치고 그래도 반겨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고 싶은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컴퓨터만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 찡그린 표정, 피곤한 듯한 말투. 마치 내가 불청객이 된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누군가가 환하게 나를 반겨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비타민이 있을까?


빵이 와 둘째 날.

수학수업을 하는데 시작하고 몇 분지 나지 않아서 빵이는 슬슬 엎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설명하는 시간이라 둘이 대화하기도 그렇고 나도 열심히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데 빵이 표정을 보니 이미 '아웃 오브 안중'.


'아~ 뭔 말인지 몰겠네. 뭐 하면서 보내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과 몸의 언어.


엎드리려는 빵이를 살며시 일으켜 세우고 번역기를 돌렸다.

올림/내림/반올림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나조차 한국말임에도 불구하고 참 여럽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념을 알고 나면 난이도가 덧셈 뺄셈 수준이지만 언어로서 개념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까지가 참 어려운 단원이다. 물론 어른의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쉬운 게 어딨 어?' 할만한 단원인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앉아서 설명을 듣고 있자니 내 정신도 아득하다.


빵이의 심드렁한 표정을 보고 마음이 순간 쿵하고 내려앉았다. 한국 아이들도 몇 명은 못 알아듣는 이 말을 이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겨우 이틀 같이 수업을 듣는데 자꾸 수업시간에 체념한 듯이 앉아있는 빵이를 보며 덜컥 겁이 났다. 번역 어플을 켜고 한글로 된 단어를 보여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에는 자꾸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어서, 못 알아듣는 줄로만 알고, 도대체 이 아이의 수학 수준이나 언어 수준을 알 수 없음에 너무 답답했다. 선생님 설명이 끝나고 문제를 각자 풀어보는 시간이 되어서야 빵이 와 이야기를 나누며 올림과 내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오, 신이시여!', 다행히 빵이는 설명을 해주자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냈던 것이다.

'오, 빵이 영리하구나!'

빵이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문제풀이 시간에 정답을 채점하라고 했더니, 시원하게 동그라미를 그려댔다. 나는 연신 옆에서 엄지 척을 보여주기 바빴다.


두 시간의 수학수업을 마치고 다행인 마음 반, 철렁 내려앉는 마음이 반이었다.

생각보다 빵이는 한국의 5학년 교육과정이 뒤처지지 않는다는 마음에 다행을 느꼈고, 이 아이가 학교에 와서 5시간 이상을 혼자서 멍하니 마음과 귀를 닫은 채로 수업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2년만 저 상태로 있는다면 제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바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인도네시아에 있던 시절, 나의 관심사와 어느 정도 영어가 되거나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는 언어라는 게 중요치 않았다. 마음이 열려 있으면 어떻게라도 이해하려 하고 소통하려고 하니까. 그런데 가끔 내가 피곤하거나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할 때면 귀에 자동문이 달려있는 것처럼 알아서 차단이 되었다. 옆에서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나는 내 생각 속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성인인 나는 오히려 이말 저말 다 들려서 피곤한 것보다 그렇게 필요할 때만 열리는 내 귀가 참 편했다.

그러나 빵이의 경우는 다르지 않은가? 학교라는 곳에 와서 적응 전까지 수많은 시간을 혼자만의 세상에서 지내다 간다는 것. 본국에서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일수록 새로운 생활에서 아무것도 꼼짝할 수 없이 오롯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힘이 들까. 물론 아이가 어른보다 적응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말이다.


수업이 마치고 둘만의 시간에 빵을 먹으면서 누리에를 시작했다. 앞으로 누리에를 매일 할 생각이다.


"빵 먹으면서 칠하고 싶은 대로 칠해~ 선생님도 빵이랑 같이 매일 이거 할 거야!"


계획상 첫 주는 서로 친해지기 주간이라 여기고, 누리에 색칠은 20분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나의 계획일 뿐. 빵이는 생각보다 아주 꼼꼼한 아이다. 10분 만에 끝나고 빵이를 기다리는데 이 녀석 좀처럼 끝낼 생각을 안 한다. 힐끔힐끔 내 그림을 보더니 나보다 한수 더 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오늘 빵 먹기/누리에 색칠하기/수학시간 보충하기 이렇게 잡았던 내 계획은 그대로 진행은 되었으나 시간 분배는 계획대로 안되었네. 누리에 색칠하기를 무려 40분 동안 하게 되었고, 추가 5분 동안 수학수업 보충을 하였다. 둘이 있으면 시간이 넘 쏜살같이 지나가서 늘 오버타임이 된다. 아쉬운 마음에 빵이를 학교 밖까지 데려다주며 두 번째 만남을 마무리했다.


*누리에 : 색채심리 치료에 이용하는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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