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하고 싶은 게 우선!

생각보다 더 영리한 녀석

by No선생

어제는 체험학습으로 인해 못 보고 목요일 세 번째 만남을 가졌다.

사춘기인지 성격인지 배시시 웃는 것 말곤 좀처럼 목소리 자체를 듣기가 힘들다.

인사할 때라도 목소리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부터 만나고 헤어질 때 인사하는 루틴을 정해야지. 메모메모)


체험학습이 피곤했던 탓인지 유난히 피곤해 보인다.

5교시는 성인권에 대한 수업이었다.

하아...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이럴 땐 난감하다. 특수한 단어들은 아직 빵이 에게는 너무 어렵고, 빠른 속도로 말하는 강사님의 말을 번역해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성 인권'에 대해 요약 설명한다는 것도 수업 중에는 쉽지 않은 노릇.


동남아에서 와서 그런지 우리나라 교실 에어컨은 빵이에게 추운가 보다.

담요를 뒤집어쓰고는 자꾸만 엎드리려 한다. 눈에는 졸음이 조롱조롱 맺혔다.


"피곤해?"


'끄덕끄덕'


졸음이 쏟아내리는 모습은 5교시에 이어 6교시 수학시간에도 똑같았다.


'어제 많이 피곤했나? 왜 이리 졸려하지?'


아!!! 생각해 보니 내가 즐겨보는 베트남 생활 유튜브를 보면 베트남인들은 점심을 먹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낮잠을 자는 모습이 떠올랐다. 회사에서도 다들 돗자리를 펴놓고 낮잠을 즐겼다. 아예 점심 때는 불을 꺼놓고 각자 취침하는 모습이 생각났다. 동남아 쪽 유튜브를 즐겨보길 잘했군.


'아~! 그럼 빵이도 낮잠을 못 자서 늘 졸려 보였구나. 점심 먹은 후에 친구들이랑 논다고 낮잠을 못 자고, 결국 오후 수업에 졸리게 되는 거구나...'


수업을 마치고 둘만의 시간에 오늘 준비해 간 오예스를 슬쩍 꺼냈다.

오예스는 초코 + 빵이니 좋아하겠거니 했는데, 빵이가 한입 먹더니 슬쩍 옆에 밀어내었다.


"맛없어~?"


"...."


목소리 한번 듣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


활동 자료를 모아놓기 위한 파일집 표지에 이름을 쓰라고 했더니, 휘황찬란하게 꾸미기 시작했다.

어제처럼 40분 동안 할까 봐 겁이 나서, 미리 시간을 정했다.


"5분?"


"아니, 6분" (드디어 목소리를 들었다)

파일집에 이름을 쓰는 동안 나는 옆에서 누리에를 칠했다.

파일 표지 꾸미기를 마치더니 누리에를 시작하는 빵이.

그런데 이 아이의 관찰력과 잘하고자 하는 욕구가 보통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이전부터 내가 칠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본인도 유사한 형태로 색칠을 하고, 한술 더 떠서 꼭 뭐라도 하나 더 그리고 완성한다. 다행히 오늘은 누리에도 7분 만에 끝냈다.


"오늘은 카드를 보고 단어를 배울 거야. 그림카드 보면서 우리 이야기해보자."


문득 오늘 점심시간에 나은이와 피아노를 치고 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빵이 피아노 칠 수 있어? 피아노 치고 싶어?"


'끄덕끄덕'


그래서 오늘 그림카드로 단어공부를 마친 후 피아노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이렇게 나의 다재다능함에 감사하고, 지금 딱 필요한 것을 울 엄마가 어릴 때부터 나에게 다 가르쳐 줘서 감사했다. ㅎㅎㅎ


나는 타로카드를 들고 다니는데, 사춘기 온 아이들에게 꽤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카드를 이렇게 중도입국학생 수업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우리가 아는 유니버설카드가 아니라 이너액티브라는 카드에는 재밌는 그림이 많다. 추상적인 그림이 아니라 직관적 그림이라 카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빵이의 어휘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직 가늠이 되지 않아서,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그림에 뭐가 보여!?"


"전화기, 쓰레기통, 새, 나무..."


생각보다 빵이는 많은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을 구경하는 것에 재미가 있는지 카드 여러 장을 골랐다. 그림 중 거지꼴을 하고 있는 사람의 카드를 골랐다.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 같아?"


"....."


아! '거지'라는 단어를 모르는구나. 재빨리 번역기로 거지를 찾아줬다. 이렇게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하니 어떤 단어를 모르는지 찾기가 쉬웠다. 나뭇가지가 부러진 그림을 보면서 '나무'라고 하길래 '부러진 나뭇가지'라고 하며 '부러지다. 부서지다'를 알려줬더니 혼자 그 단어를 되뇌는 모습이 귀여웠다.


정규수업시간은 참 느리게 가는 것 같은데 (이건 이유를 막론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건가?) 둘만의 수업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그렇게 약속한 대로 피아노를 치러 갔다. 학교에 아이들이 맘대로 칠 수 있는 피아노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빵이를 따라 쭐래쭐래 따라갔더니 원목피아노가 한대 있었다. 방과 후 수업 중이라 가운데 페달로 소리를 죽인 후 피아노의 기본인 '도레미파솔라시도'치는 연습을 하였다. 뭐든 척척 잘 따라 하는 빵이.


"피아노로 어떤 곡 치고 싶어?"


"아파트"


그렇다. 우리의 목표가 설정되었다. 로제의 아파트를 피아노로 치기로 결정된 것이다.

그렇게 기본 음계 치기를 연습하고, 빵이에게 집에서나 어디서든 책상 위에 손 올려놓고 건반 치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피아노 배운 게 신이 났는지 계단 난간에서 치는 흉내를 내었다.


참 해주고 싶은 것도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은 제한이 있어서 아쉽다. 이번 주까지는 친해지기 주간이니 이것저것 함께 해 보고, 다음 주부터는 계획을 세워서 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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