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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박하림 Sep 05. 2020

유통기한이 있는 삶

딱, 7년





오늘 건강보험공단에서 우편물이 한 통 도착했어요. 그 내용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지만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살피던 엄마가 불현듯 ‘너 나랑 같이 건강검진 받자’고 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싫어’하고 대답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도 놀랐습니다. 그렇게 대답해버린 이유가 갑자기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만성우울증을 앓은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울증환자들에게 어떠한 유대감도 느끼지 않아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번째로는 동족혐오의 정서가 짙은 것이 가장 클 것이고, 두번째로는 ‘내가 우울증을 이유로 남에게 응석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울증으로 인한 증상들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으려는 이들이 대해서는 동질감, 연민, 애착 같은 걸 느끼지만, 그런 이들은 필연적으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게 때문에 ‘관계’란 걸 맺을 만한 계기가 없어요. 같은 항성 주위를 도는 행성들처럼,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고 또 서로에게 일정한 중력을 미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죠.


돌아보건대 나의 우울증이 정점을 찍었던 시기는 스무살-스물한살 때였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때 내가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깔끔하게 죽을지 깊이 생각을 한 것만 서너달이었어요. 지금은 끊었지만 당시 나는 담배는 물론 대마도 엄청 피워댔는데 일부러 동시에 술도 진탕 마시고는 했습니다. 나는 담배도 술도 안 맞는 체질이니까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때 내가 죽지 않았던 건 나랑 대마를 오지게도 피워댔던 남자가 건네 준 책 한 권 때문이었어요. 그 책의 제목이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우울증 걸린 여자가 자살하기 전에 1년만 더 살아보자고 마음 먹고 1년 동안 하고 싶는 거 다 하고 살다보니 살고 싶어졌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그 남자랑 대마를 피우고 같아 집 앞 광장에 세워진 커다란 트리를 보고 들어오는 길에 ‘딱 1년만 더 살아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일 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기 위해 유학생활를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버렸죠. 이 같은 내막은 지금도 아무도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니 귀국 당시 누구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건 당연했겠죠. 지금도 나는 비싼 돈 탈탈 털어 보내준 유학을 뭉개고 돌아온 철 없는 탕자 포지션을 맡고 있네요.



그렇게 돌아와 참 다사다난하게 지냈고 일부러 그런 길들만 골라서 걸었습니다. 덕분에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 어언 8년 가까이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생의 유통기한이 필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온갖 지랄을 다 하며 살았는데, 아직 남은 지랄이 있나봅니다. 그걸 다 풀어내기 전까지는 내가 정말 이 생을 살고 싶은 건지 아닌지 모를 것 같아요. 나는 스물한 살때와 크게 달라진 바 없이, 여전히 왜 이렇게 피곤하기만 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감이 안 오거든요.



물론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죽고 싶었던 사람이 언제나 살고 싶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윤수가 살고 싶어졌다고 고백했던 건 애초에 그가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꼰대스러운 생각도 해봅니다. 모르겠어요. 나는 윤수 같지가 않은 걸요.



한두 해 전만 해도 나는 나를 살고 싶게 만들어줄 사람을 절실하게 찾았습니다. 남자친구를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했지만 그에 대한 사랑이 나를 살고 싶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살고 싶게 만드는 인연이 반드시 연인 관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기대를 걸고 사람을 만날수록 나는 인간관계 파괴자가 되어갈 뿐이었어요. 주체할 수 없는 전기톱을 양손에 들고 제발 나 좀 멈춰달라고 다가가며 피를 튀기는 형국이었죠.


그래서 사람을 찾아다니길 멈췄습니다. 이미 내게 주어진 인연을 살뜰히 챙기기로 했고  그것도 그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분명히 행복을 느끼고 있고, 주어진 것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행복과 감사를 경험할 가능성이 장래에도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꿋꿋이 살아갈 의욕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내게는 그들과의 행복보다 내 미래를 사랑할 가능성이 필요한 것이고, 내 미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만끽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세상은 아무리봐도 만끽하며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 같단 말이죠.


나는 내 인생을 개조해서 인위적으로 만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생각입니다. 7년 전 나의 자살을 막았던 그 방법을 응용해서 나 자신에게 7년의 유예기간을 주려고 합니다. 나는 딱 7년만 더 살면 되니까, 그 기간 동안 불사르자. 그리고 안 풀리면 스스로를 폐기처분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속깊이 교감하는 인연을 찾지도 않을 것이고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미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많이 미안할 것 같아서요. 장기적인 관계는 맺지 않고 그냥 애정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싶습니다. 또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이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내 남은 지랄들을 가능한 한 빨리 소진시켜 결단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건강을 너무 살뜰히 챙기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그냥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죽어버릴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검진은 안 받을 생각입니다. 행여 내 몸 속에 이미 10년 후에 터질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데 굳이 그걸 제거하면 골치 아픈 일들을 피할 기회를 날려 버리는 셈이 되는 거잖아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칼부림이나 그에 상응하는 사고가 터질 일은 없을 거에요. 나는 민폐 끼치는 게 정말 죽기보다 싫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선택이 내게 꼭 맞는 선택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결심를 하고 이렇게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해질 수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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